고질적인 재개발·재건축 ‘부패 사슬’ 못 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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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재개발·재건축 ‘부패 사슬’ 못 끊나
  • 차완용 기자
  • 승인 2009.12.14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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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강동 등 8곳 ‘28억 뒷돈 커넥션’
뒷거래 막을 처벌규정 미흡, 대책 절실


‘재개발·재건축 = 비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사법처리가 많이 되고 있지만 고질적인 부패사슬은 브레이크 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15일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은 잠실 재건축 단지를 두달간 기획수사하면서 인허가와 시공업체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합장 등 9명을 구속기소하고 21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또 구청 직원은 조합 설립을 인가해주는 조건으로 조합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경찰은 브로커 역할을 하며 뒷돈을 챙긴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은 창틀제조업자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가 있고, 브로커 및 공무원ㆍ경찰ㆍ감사 등도 1억원 내외의 돈을 챙겼다. 이 외에도 유명 건설사 두 곳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재건축 재개발에는 항상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송파·강동 등 8곳 재건축에 ‘28억 뒷돈 커넥션’
2008년 7월 서울 잠실의 한정식집, 수서경찰서 지능팀장인 김모(40) 경감과 창호업자 기모(45)씨가 만났다. 기씨는 “전임 조합장이 구속돼 부탁할 사람이 없다. 재건축 사업 중인 잠실 2단지 상가의 일반 분양분을 한꺼번에 매입해 웃돈을 붙여 팔고 싶다”며 쇼핑백에 담긴 1억5000만원을 건넸다.
 
전임 조합장을 비리 혐의로 구속했던 김 경감은 돈을 받은 뒤 후임 조합장에게 5000만원, 조합의 고문변호사에게 7500만원을 전달했다. 자신은 2500만원을 '수수료'로 챙겼다. 조합 비리를 수사했던 현직 경찰이 브로커로 변신한 것이다. 전임 조합장 구속 과정에서 관계자들과 쌓은 친분을 활용했다.

아파트가 밀집한 잠실의 재개발·재건축 과정에 비리가 만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 임원뿐 아니라 경찰·공무원·변호사·대기업 간부 등이 줄줄이 얽혀 있었다. 서울 동부지검은 잠실의 재건축·재개발 단지 등 8곳에서 28억원의 뒷돈이 오간 사실을 밝혀내고 김 경감 등 9명을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전문 브로커들이 재개발 현장 곳곳을 돌며 돈 거래를 주도했다. 이 중 강모(38)씨는 잠실 1~3단지에 이어 성남 단대지구 등 4곳에서 경비용역 관리회사 선정에 관여해 2008년 1~8월 5억원을 챙겼다. 브로커 김모(42)씨는 잠실 2단지의 관리·창호업체 선정에 개입해 2억2000만원을 받았다. 특히 조합 임원들이 직접 공사업체 등에서 돈을 받는 대신 '다단계'처럼 여러 브로커를 통해 돈을 받는 수법이 동원됐다. '검은 돈' 거래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잠실 시영단지의 경우 관리·경비업체 부대표인 양모(43)씨가 2008년 2~6월 다른 하청업체 3곳에서 4억2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이어 창호업자 김모(50)씨와 인테리어 업자 김모(57)씨 등에게 돈을 줬다. 이 돈은 다시 조합장 고모(61)씨에게 건네졌다. 중간 브로커들의 수수료를 떼고 최종적으로 조합장 고씨에게 건너간 돈은 1억원이었다.

비리의 사슬엔 대기업과 공무원도 끼어 있었다. D건설 이모(47) 부장은 지난 2월 송파구 거여동 재개발 단지의 시공사로 선정된 뒤 조합 총무 김모(39)씨에게 대가로 2억원을 건넸다. H건설 이모(45) 부장은 지난해 9월부터 올 5월까지 강동구의 고덕 1단지 조합장 김모(52)씨에게 인테리어 무료 시공 등 3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줬다. 송파구청 지역개발과 공무원 김모(53·6급)씨는 2008년 2월부터 올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거여 재개발 단지의 조합 설립을 인가해주는 대가로 1700만원을 받았다.

이런 비리 구조의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뒷돈이 오고 가면 최종 분양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실 2단지의 한 조합원은 “입주 가구당 수백만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이중희 형사6부장은 “이번에 밝혀진 28억원에 대해선 추징보전 명령을 내렸다”며 “다만 입주가 끝난 피해자들이 이미 낸 분담금을 돌려받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장들이 빠지기 쉬운 비리
최근 한 언론사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재건축·재개발 조합장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리에 연루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건축ㆍ재개발 조합장은 법적 사업시행자로서 주민들 이익을 위하여 활동해야 하는 ‘공무원’ 신분으로 분류되지만, 조합장들의 뇌물수수는 금액에서 공무원을 훌쩍 뛰어넘는 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 서울 상도 제11지구 재개발조합 비리사건에서 조합장 최모(66)씨가 S건설사로부터 받은 금액은 8억원이 넘었다. 최씨는 이 돈 중 일부를 갖고 조합의 핵심 임원인 총무 및 추진위원들에게 2000만원에서 8000만원까지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상가 재건축조합장 이모씨는 시행사로부터 시가 7000만원에 달하는 렉서스 승용차를 받았다.

그렇다면 많은 조합장들이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신문은 사업 논의 단계부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재건축 사업의 특징 때문에, 조합장들이 비리에 연루되기 쉽다고 전했다. 전직 건설사 임원인 현 모씨(62)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추진위원장이나 조합장은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법률분쟁이 잦아 법률자문 비용만 해도 족히 수억 원이 넘게 된다”며 “이 밖에도 각종 회식비용도 그렇고 정비업체든 건설사든 `스폰`이 없다면 사업이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으로 대다수 재건축 조합장들의 말로가 `범죄자`로 끝나고 있지만, 조합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재개발?재건축 비리, 피해는 조합원에게
그렇다면 재개발 조합이 비리를 저지르면 투자자에게 어떤 피해가 생기는 걸까.
우선 쉽게 말해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에서 조합과 조합원은 동반자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주식회사의 주주 개념을 넘어 무한 책임을 함께 해야 하는 셈이다. 조합은 조합원을 대표해 사업을 진행하게 되며 조합이 행한 각종 행위들은 조합원들의 이익과 손해에 직결된다. 조합원은 개발 사업에 토지와 건축물을 출자하고 조합은 조합원들을 대표해 출자된 자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일반 투자자도 마찬가지.

흔히 일반분양자(청약자)의 아파트 배정 권리에 대한 명칭을 '분양권'이라 부르는데 이는 공급자인 조합과 일반인간의 채권계약인 분양 계약에 의해 성립된다. 반면 조합원의 아파트 배정 권한은 '분양대상(자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조합원들이 출자한 자산인 종전 토지와 건축물을 새로 지어질 아파트로 바꿔 주는 과정으로, 조합원간의 합리적인 배분을 위한 것이다. 분양계약에 의한 것이 아닌 출자한 자산인 물건에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다.

또 투자자라고 해서 일반분양자들과 같이 단순히 시공사로부터 '분양권'을 받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일반분양자들은 조합과의 분양계약에 의한 소비자적인 개념의 접근이지만 조합원들은 해당 사업의 성패를 함께 해야 하는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사업 성패에 대한 책임과 권리가 없지만 조합원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 조합과 관련된 비리의 발생은 조합원들 스스로가 분양권이라는 표현을 쓰며 일반분양자들과 동급으로 본인들을 취급하며 조합원의 권리를 망각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조합원을 대표해 업무를 진행해야 할 조합 집행부가 조합원들과 대립해 유관 업체의 대변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조합원 권리의 망각에서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 관련법령에서는 조합(추진위원회)의 업무진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인터넷으로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조합원의 권리 행사를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해당 사업에 대한 업무 흐름을 파악하고 조합의 사업 추진 상황이 조합원의 이익에 반하는지 잘 감시해야 한다.
 
◇공공관리제도 돌파구 될까?
이러한 재건축?재개발 비리를 막기 위해 그리고 조합원들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서울시는 지난 7월 공공관리제도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공관리제도는 정비사업이 투명하게 추진되도록 구청장이 지원하는 제도다. 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조합, 정비ㆍ철거ㆍ설계ㆍ시공업체의 먹이사슬을 끊어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사비를 절감하면서 기간단축까지 이루겠다는 것이 주요 목표다.
 
공공관리자인 구청장은 재개발ㆍ재건축 진행을 지휘한다. 공개경쟁을 통해 정비업체를 선정하고 주민 선거를 통해 추진위원장과 감사, 위원 선출을 감독한다. 공공관리제도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비용부담 완화다. 사업시행주체에 불법자금이 유입되지 않도록 공공에서 자금을 융자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또 이전까지는 조합설립 단계에서 내역서 등 세부설계가 작성되지 않아 향후 공사비 증가의 단초가 되기도 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설계자를 추진위원회 구성 이후 한번만 선정하게 했다. 단순히 '평당 얼마'식으로 계약했다가 조합 설립 후 마땅한 근거 없이 평당 가격을 올려 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이 외에도 서울시는 재건축ㆍ재개발 비리 근절을 위해 클린업시스템을 구축해 추진위원회와 조합의 정보업무공개도 지원하고 있다. 정보공개는 기존 참여업체 선정 계약서나 회의록 등 7개 항목 외에, 월별 자금 유출입 내역, 사업비 변경내역 등 8개 추가항목이 공개돼 있다.
 
◇공공관리제도가 낳는 문제점
공공관리자제도는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자문단이 장고 끝에 내놓은 재건축ㆍ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프로세스를 변화시킬 중요한 제도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도 상당하다.

지난 9월 서울시 의원회관에서 열린 '뉴타운 재개발 정책, 변하긴 변하나?'라는 토론회에서 강성균 전국뉴타운 재개발 비대위연합 공동대표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며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송재영 민주노동당 민생본부장 역시 "서울시가 정비업체와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사업비를 상세히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이것으로 유착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토해양부의 재건축 재개발 제도개선과 상충되면서 실효성을 거둘지도 미지수다. 지난 2월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지자체가 정비계획 수립비용과 안전진단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정비기금 및 공공의 융자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기반시설 설치비 국고지원 의무화, 정비업자 부조리 방지, 주민 대표기구 투명성 강화, 추진위 등 자료공개 의무화, 세입자 보호 강화 등이다. 공공관리자제도와 상당부분 겹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간 부담금의 차등이 초래되면서 형평성 문제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역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개발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공공관리제도 시범구역인 성수나 한남 구역 등지에서 상당부분 로비를 통해 정비업체가 선정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서울시가 공공관리자제도를 시행했지만 기존의 정비업체를 선택할 때만 금융혜택을 주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임이 실패로 끝난다면 공공관리제도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오 시장이 지지부진한 뉴타운 사업의 성과를 위해 공공관리제도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판단이라는 해석이다. '뉴타운=비리'라는 공식을 깨기 위해 내세운 서울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개발ㆍ재건축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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