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우리는 언제쯤 노동을 귀히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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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우리는 언제쯤 노동을 귀히 여길까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1.02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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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목숨을 귀히 여기는 사회를 꿈꾸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이런 나라에서 도대체 누가 기업 하겠나.” - 한 댓글 中

“대표자가 구속되면 중소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규제입법을 막아야 한다.” -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걔(구의역 김군)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사고로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아들(김용균) 이용하려는 생각은 버려라. 세월호가 생각난다.” - 한 댓글 中

네 개의 글과 말에는 공통적으로 ‘노동’이 빠져있다. 오직 기업만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하며 산다. 그러나 스스로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진 않는다. 조금 더 노동하기 좋은 세상을 향한 법안은 ‘기업을 망하게 할’ 규제입법이자, ‘사회주의로 가는’ 정책으로 치부됐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러하듯, 재해 원인을 노동자 개인에게서 찾았다. 더욱이 유가족을 향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경영과 안전 중 균형을 안전으로 한 발짝 옮기는 법안이다. 세명대학교 강태선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둘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만, 한국은 균형이 경영에 있다”고 지적했다. 비용을 아끼면서 빠르고 편리한 ‘경영’에서, 고비용에 느리고 불편한 ‘안전’으로 가는 법안은 일견 불합리해 보인다. 어느 댓글처럼 ‘이런 나라에서 기업을 하기’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는 책임 있는 주체는 오직 기업뿐이다.

중대재해법의 의의는 기업이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라는 데 있다. 이윤만큼이나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 역시 지난 21일 “누군가 죽거나 다치면 그것 자체가 기업의 ‘리스크(risk)’가 되어야 대표이사가 사람 목숨 귀한 줄 알게 된다”며 “그러한 인식이 상식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껏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일했듯, 기업 역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운영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껏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일했듯, 기업 역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운영할 때다.ⓒ뉴시스

그럼에도 28일 전달된 정부안은 여전히 경영의 편에 있다. 정의당 노동본부는 이를 “최악의 안”으로 평가했으며, 19일 째 단식을 이어오던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너무 허술해서 기가 막힌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제가 되는 내용은 법안의 범위와 적용 시기다. 정부안에는 ‘동시에 2인 이상 사망으로 하거나, 처벌 수위를 낮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담겼다. 그러나 사망 당시 스물넷이었던 김용균 씨는 2인 1조 작업을 홀로 근무했다. 열아홉의 구의역 김 군 역시 인력과 시간 부족으로 혼자 일하던 중이었다. 유가족 김 씨는 “많은 죽음이 거의 혼자 일하다 일어난다”며 “혼자 일하다 벌어지는 재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죽음을 막지 못 한다”고 비판했다.

적용 시기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안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법안이 적용되지만, 50인 이상 100인 미만은 2년, 50인 미만은 4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이에 정의당은 “중대재해 85%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그런 중소기업 중 50인 미만 사업장이 98.8%”라며 “이런 상황에서 이번엔 100인 이하 사업장의 유예를 추가하자고 하는 것은 아예 법 제정의 효력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라 지적했다. 심상정 의원 역시 “매년 2천여 명의 죽음을 당분간 더 방치하자는 것”이라 꼬집었다.

지난 12월 16일 30여 개 경제단체가 중대재해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을 열자, 청년유니온 이채은 위원장은 회견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킨다. 때론 아침도 먹지 못하고 바삐 집을 나섰을 테고, 감정 스위치를 꺼두고 하루의 모진 순간을 견뎌냈을 터다. 그러는 사이 몸과 마음의 생채기가 하나 둘 생겼으며, 원치 않은 일을 감내해야할 때도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은 오직 노동을 위해서다. 이는 故 구의역 김 군과 김용균 씨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2021년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닌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이미 스러져간 노동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간 홀대해온 노동을 이제라도 귀히 여기는 일이 아닐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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