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안 졸속 제정,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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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법안 졸속 제정,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1.11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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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 미쳐…철저한 준비 선행돼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회 문턱을 넘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뉴시스
국회 문턱을 넘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졸속 입법 논란에 휩싸였다. ⓒ뉴시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이로써 산업재해나 사고로 노동자가 숨지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상 벌금으로 처벌받게 됐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오늘날 일어나는 대부분의 산업재해 사건이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와 안전 불감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업이 경제적 이익보다 근로자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야 산업재해가 줄어든다는 논리 하에,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의 책임을 강화한 결과가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죠.

실제로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근로자의 안전 관리를 ‘비용’으로 취급하고,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근로자의 안전을 희생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근로자를 비용으로 보는 전근대적 기업 문화 개선을 법으로 강제했다는 점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 국회의 ‘졸속 처리’ 행태가 반복됐다는 점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20대 국회 때인 2017년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않다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도층 표심 잡기’ 일환으로 정의당에 협조를 약속하자 다급해진 더불어민주당이 곧바로 화답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계산으로 ‘다급하게’ 입법된 법안이 촘촘하게 만들어졌을 리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무리한 감이 있는 과도한 처벌 조항, 이 문제점을 감추기 위해 ‘꼼수’를 부릴 수 있도록 열어 놓은 예외 조항 등 최종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 법은 노동자 보호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기업의 반발만 샀습니다. 여론의 눈치만 보다가 ‘대충 만든’ 이 법의 피해자는 물론 국민일 테고요.

비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날 통과된 이른바 ‘정인이법’도 현장 인력 부족, 학대 아동을 수용할 만한 공간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무턱대고 법안만 통과시켰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인기를 끌겠다’는 용도였으니, 꼼꼼한 검토를 통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포함됐을 리 만무하죠.

법은 국민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때문에 법안을 다루는 국회의원에게는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까지도 예상하는’ 수준의 철저함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요즘 국회를 보고 있자면, ‘국민의 삶’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 ‘국민의 표’를 유혹하는 법안 만들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듯합니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한다고 하죠. 눈 앞의 인기에 매몰된 ‘정치꾼’이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로 가득한 국회를 기대해 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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