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위안부’ 역사 판결, 일본은 진정성을 보여라
[이병도의 時代架橋] ‘위안부’ 역사 판결, 일본은 진정성을 보여라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1.01.16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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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주권 위에 있다”는 울림
첫 피해 배상판결 이행 파장 주목
법원, 일본측 ‘주권면제’ 주장 부인
日 정부, 판결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일 양국 외교로 후속 해법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새해 초부터 한·일 관계가 격랑을 맞았다. 한국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역사적 판결을 내리자 일본 측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더 냉각되고 있고, 법원 판결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는 정치·외교적 해법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판결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가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반인도 범죄의 책임 소재를 법적으로 못박고, 피해자에게 실질적 정의 회복의 길을 튼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에 반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재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항소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피해자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집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후에는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재산을 강제 매각해 손해배상을 이행하는 절차를 놓고 큰 마찰이 예상된다.

한국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역사적 판결을 내리자 일본 측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뉴시스

준엄한 역사적 심판

이번 한국 법원의 판결은 과거사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 판결처럼 기업에 책임을 물은 게 아니라 일본 정부에 직접 책임을 물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이번 판결에 따라 국내의 일본 정부 자산이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피고가 일본 정부가 되다 보니 해결이 훨씬 난해할 수밖에 없다. 판결 수용 불가로 즉각 반응한 일본 정부의 반발 강도는 갈수록 세질 전망이다. 

일본 측은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 즉 ‘국가면제’ 원칙을 주장해왔다. 이번 재판은 반인도적 범죄는 '국가면제'의 예외란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적잖다. 

인권이 국가의 주권에 앞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전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범죄로 보고, 엄중히 단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간 우여곡절이 보편적 인권과 정의에 관한 사안은 정부 간 합의로만 될 일이 아니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빠진 화해와 치유는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이번 판결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준엄한 역사적 심판이다.

일본, 과거사 속죄 관건

앞으로의 파장이 주목된다. 만일 법원이 배상금 확보 수단으로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자산 압류·매각을 추진할 경우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게 뻔하다. 이 경우 양측이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경제·안보 협력을 놓치게 된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 “한국이 국가로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겠다”며 “한국의 재판권에 복종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1심에서 패소한 판결에 항소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엄중히 경고하고, 인권과 정의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또 다른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한·일 분쟁이 아니라, 끔찍한 전시 성폭력이라는 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려 세계 시민들의 양심을 깨우고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죄다. 일본은 이제라도 위안부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만이 과거사를 깨끗이 속죄하는 길이다.

능동적 해법(解法) 찾아야

판결 내용은 실로 역사적이다. 상세 내용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우리 국내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 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매우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일본 외무성은 남관표 주일대사를 초치해 강력 항의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문제가 이미 마무리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청구권 협정에도 개인 청구권까지 사라진 건 아니고, 위안부 합의도 피해 당사자가 배제된 졸속 합의란 점에서 진정한 해결과 거리가 멀었다. 문서가 역사를 덮을 순 없고, 합의가 진실을 가릴 수도 없다.

원고 중 일부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깝지만 늦게라도 피해자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건 다행이다. 일본으로서도 진정성이 담긴 사과와 반성이 먼저라는 국제 여론에 귀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아사히신문 등의 보도도 있었다. 우리 법원의 판결에 항소도 제기하지 않고 국제법으로 맞서겠다는 태도다. 

한국 정부도 법원의 판결에만 기대지 말고 능동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강제 징용 문제도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해법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제법적 근거로 도출한 법 해석

판결의 과정과 내용을 중시해야만 한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이 사건 행위가 일본 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 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어서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를 내세우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재판부는 “(‘위안부’는) 당시 일본제국이 비준한 조약 및 국제법규를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소 헌장에서 처벌하기로 정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해당한다”며 “국가면제 이론은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그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류 보편의 인권을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현대의 국제법적 근거에서 도출한 지극히 상식적인 법 해석이다.

위안부 사건을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국제 범죄로 규정하고, 보편적 민사 관할권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즉, 증거와 자료, 변론의 취지를 종합할 때 피고의 불법 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이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며 피해를 배상받지도 못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일제 강점기 때 폭력과 속임수로 위안부로 차출돼 학대에 시달렸다는 호소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2013년 8월 청구 조정신청이 접수된 지 무려 7년 5개월 만이다. 일본이 한국 법원의 사건 송달 자체를 거부해 조정이 이뤄지지 않자 원고들의 요청에 따라 법원은 2016년 1월 사건을 정식재판에 넘겼다. 재판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돼 배 할머니가 2014년 세상을 떠났고 공동 원고인 김군자, 김순옥, 유희남 할머니 등도 별세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일관계 악재 추가…창의적 해법 모색을

이번 판결로 한일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일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악재가 추가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판결을 이행하기 위해 한국 내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해 압류 등 조치를 취할 경우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징용 판결보다 훨씬 큰 파장이 예상된다.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확정판결보다 더 큰 파장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징용 배상판결은 일본 개별기업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이번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일 양국이 상호 대사 교체를 발표한 날 판결이 나와 대사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간극이 오히려 넓어지는 분위기이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출구는 있기 마련이고 찾아야 한다. 

한·일 양국은 협력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곧 출범하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므로 한·일관계 정상화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일 간의 난제인 과거사와 북핵·경제 관련 협력을 별개 차원에서 다뤄나가는 투트랙 접근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양국이 절제된 대응으로 창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래야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 수 있다.

가해자인 일본의 무책임

양국간 해법을 위해서는 일본의 자세 시정이 선결과제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했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에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안부 합의 이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등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로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억지다.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느냐를 놓고 국제사회에서 논란도 분분하다. 유엔의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 및 가이드라인’에는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피해를 본 개인이 국가나 법인, 개인 등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대표적 반인권 범죄인 위안부 관련 합의가 피해자 동의 없이 이뤄진 만큼 양국 합의는 국제법상 무효가 될 수 있다. 그런 부실한 합의를 근거로 배상을 외면하는 것은 자국의 반인륜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가 먼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꿔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한국에) 강하게 요구해 나가겠다”며 한국에 공을 떠넘기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양국 관계 개선을 어렵게 할 뿐이다. 

개인 구제 국제법 세계적 합의 추세

앞으로도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을 앞세워 국제사회에 호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피해자 변호인단이 마지막 변론에서 밝혔듯, 국가 중심으로 국제법 질서가 편제됐던 과거와 달리 점차 국가의 위법행위로 피해 입은 개인에게 적절한 구제가 있어야 한다는 세계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도 독일 나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면제론이 배척당했다. 인권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국제사회의 흐름이다. 

국제법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인류가 성취한 인권·정의의 가치에 발맞춰 변화해야 한다. 게다가 전범국으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 배상 노력을 기울여온 독일과, 아무런 사과도 공식 배상도 하지 않은 일본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한일관계 개선이 고차방정식 풀기가 된 만큼, 강창일 신임 대사의 언급대로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해법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판결 취지를 살리며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배상을 보장하고 양국 정부의 명분도 살리는 쪽으로 해법을 찾는 노력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 할 때다. 일본 정부는 고자세를 고수한다면 한국 내 반일 감정 악화로 협상 공간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접점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그 바탕에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자리 잡아야 한다.

승소한 피해자들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살아야 했느냐. 1억원도, 3억원도 싫다”며 일본의 사죄를 원한다는 억울한 심경을 다시 피력했다. 한국 사회와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일본의 사과를 받아달라는 피해자들의 일생을 건 호소에 부응해야 한다.

역사적·법적 책임 인정 후 미래지향적 관계로

공교롭게 판결이 내려진 그날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가 공식 임명됐고 일본도 새 주한대사를 발표했다. 멀어진 한일 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양국이 외교력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일본 정부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더는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길 기대한다. 

일본이 피해 당사자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졸속 합의로 문제 해결을 더 꼬이게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열린 자세로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안보와 경제 등 측면에서 협력이 불가피한 이웃 나라다. 동맹관계 복원을 천명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대중, 대북 정책 등을 놓고 한미일 3각 공조 체제를 더욱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사 문제를 넘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역사적·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 전환 없이는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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