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노조탄압 ①> 삼성 무노조 장벽의 5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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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노조탄압 ①> 삼성 무노조 장벽의 50년 역사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3.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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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2012년, 사회의 99%를 자처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한 노동자들의 결의와 더불어 이번 총선의 여야 공약도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기존 노동정책에 대한 여야의 대립양상과 달리 이번에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액션을 취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의 단일화 조항을 폐지할 것을 밝혔다. 새누리당 역시 이를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노동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이로써 복수노조 시대에도 여전히 숙제로 남겨진 노동조합 결성 문제가 드디어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지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지금은 ‘무노조 경영’의 상징이 된 삼성그룹에서 노조 결성을 위한 노동자들의 몸부림은 어떠했는지 노조 투쟁의 지난한 역사를 되짚어봤다.

▲ 지난 2008년 4월25일 오후 경기 용인 기흥 삼성반도체 앞에서 열린 삼성 무노조경영-노동탄압 분쇄 결의대회에서 300여명의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

사실 삼성 내에 노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이 삼성노동조합(삼성노조)을 결성하기 전에도 상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삼성에스원 등 삼성 계열사 9곳에 노동조합이 있었다. 하지만 노동계는 삼성노조 이전의 노조에 대해서는 진정한 노조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노조설립을 막기 위한 ‘어용노조’, 혹은 특정 업체가 삼성 계열사로 인수·합병되는 과정에서 저절로 딸려온 노조 등이라는 이유다. 때문에 삼성은 여전히 ‘무노조 기업’으로 간주돼 왔다. 실제 7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삼성의 지위와 영향력에 비해 현재 노조의 위치는 그간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대변한다.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1977년 제일제당 미풍공장(김포) 사건 이전에도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존재했다. 1950년대 제일제당 노동자들이 농성투쟁을 벌였고,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 제일모직 대구공장의 노동자들도 노조 민주화투쟁을 벌였다.

1977년에는 드디어 김포 제일제당 미풍공장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투쟁이 있었다. 삼성일반노조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제일제당 미풍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초임은 월 2만176원이었다. 여성근로자 1인 최저생계비가 월 4만5035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월등히 낮은 금액이다. 이러한 작업환경 속에서 김광숙 등 13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전국화학노동조합 제일제당 김포공장지부 조직을 결성한다.

이들은 10월24일 서울시에 지부설립신고를 마치기도 했지만 사측의 압력으로 노조결성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노동계에 따르면 당시 사측은 노조의 해체를 위해 감금, 협박, 회유 등 갖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사측은 신문보도를 막기 위해 분주했고, 실제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일간지에서는 당시 제일제당 노동자들과 사측의 충돌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주간신문이었던 ‘주간시민’만이 ‘이병철 회장은 노조를 싫어한다’는 제목으로 해당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이후 주간시민은 무기 휴간됐다고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던 이병철 전 회장의 발언도 바로 이 시기 등장했다.

민주화 바람은 부는데…

노조설립을 위한 노동자들의 열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에도 이어졌다. 1987년 6·10민주항쟁이 있은 두 달 후, 전 지역과 모든 업종에 걸쳐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투쟁이 있어났다. 7월5일 현대엔진의 노조결성과 16일 현대미포조선의 노조서류 탈취사건으로 촉발된 노동운동은 삼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해 8월 삼성중공업 창원 2공장의 노동자들은 창원시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 다른 노조가 신고필증을 받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신고서는 반려됐다.

이듬해인 88년 4월에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노동자들이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역시 이미 접수된 노조가 있어 반려됐다. 그 후에도 노조 결성 시도는 거듭됐고, 노동자들보다 한 발 앞서 신고하는 ‘노조’로 인해 노동자들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는 오늘날 노조 설립 예방을 위해 사측이 조성한 ‘어용노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삼성노조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은 그보다 앞선 ‘누군가’의 노조 신고로 실패를 거듭했다. 또 노조 설립을 계획했던 노동자들은 사측과 ‘면담’을 하거나 ‘출장’을 가거나, 혹은 해고당해야 할 만한 ‘사유’가 생겼다. 그러나 삼성 측이 내세우는 면담, 출장, 해고 등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노조 결성을 시도한 노동자들에 대한 미행, 휴대폰 위치추적 등 사례가 밝혀지면서 삼성 측의 ‘무노조 경영’과 그를 위한 ‘탄압’은 공공연한 사실로 자리 잡았다.

삼성 측의 주장대로 노동자들의 높은 만족도가 노조의 필요를 없애주는지, 혹은 노동계의 주장대로 노조의 필요가 무시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시대에도 자유롭지 못한 노조의 활동, 또 여전히 노조 결성을 위해 부글대는 노동자들의 의지는 그 답을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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