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신라와 고려의 망국과 국민의힘의 과거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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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신라와 고려의 망국과 국민의힘의 과거단절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1.24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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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단절 없이 국민의 선택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과거와의 단절 없이 국민의 선택을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진제공=뉴시스
과거와의 단절 없이 국민의 선택을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정권교체기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혜성같이 등장도 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신라와 고려의 망국 과정은 유사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신라는 망국 과정에서 마의태자 정도나 저항했지만 고려는 최영과 정몽주와 같은 충신들이 조선 건국 주체세력들과 치열한 정쟁을 벌이기도 했다. 고려는 죽음으로써 왕조를 지키고자 했던 사수파가 있었다.

한민족 5000년 역사에서 최초의 민족 통일국가는 고려로 본다. 신라의 통일은 고구려 멸망 직후 고구려 유민들에 의한 발해의 건국으로 진정한 통일로 인정하지 않은 시각 때문이다.

고려가 신라와 후백제, 발해 유민까지 포용하는 통일 국가를 수립한 덕분에 한민족 단일 국가로 본다. 고려의 통일 과정을 보자. 신라가 하대에 들어서면서 지배층의 분열로 왕권교체가 잦아졌다. 신라의 왕족들은 민생을 저버리고 왕권 장악을 위한 혈전에 나섰다. 

서라벌이 권력투쟁에 빠지니 지방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호족들이 서라벌을 대신해 지방 통치에 나섰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고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하지만 신라는 천년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충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신라는 견훤에 의해 서라벌이 짓밟히는 치욕을 당하면서 고려에 나라를 헌납하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마의태자 정도가 반발했다고 하나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신라의 유신들은 신라를 위한 미래가 아닌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고려를 선택한 셈이다. 

조선의 건국 과정을 보자. 고려는 신라와는 좀 달랐다. 최영과 정몽주를 비롯한 온건파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하고자 했다. 이들은 고려 왕실이 제 기능을 못한 세월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새로운 왕조를 인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성계와 정도전의 혁명파는 고려 왕실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했다. 고려 왕실은 부패한 권문세족과 타락한 불교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고려 왕실의 존재는 썩은 과거와의 타협이었다. 혁명파는 과거를 거부하고 미래를 선택했다. 과거와의 단절이 시대정신이었다. 

혁명파는 최영과 정몽주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생각이 다르고 포섭이 안 되면 제거가 최선이다. 최영은 위화도 회군으로 제거했고, 정몽주는 암살로 해결했다. 후일 역사는 혁명파의 무력사용을 비난하지만 이들의 선택은 희망이 없는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제1야당 국민의힘이 무기력하다. 정당은 정권 장악이 최우선 목표다. 현재 국민의힘은 오는 4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몰입하고 있다. 이번 선거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전초전이다. 하지만 후보군의 난립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양상이다.

지금 국민의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국민의 눈에는 지난 2017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와 현재의 국민의힘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 과거와의 단절 없이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낸들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와의 단절 없이 국민의 선택을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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