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노조탄압 ③> 삼성 ‘일회용 종이컵’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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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노조탄압 ③> 삼성 ‘일회용 종이컵’의 반란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3.27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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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 피해제보 137명, 사망 53명
발암물질 검출에도 “인체피해 없다”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책임져야 할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삼성은 거짓말을 했다. 노조가 없어 이런 문제가 생겼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씨 아버지의 말이다.

황씨의 아버지 황상기(57)씨는 딸의 5주기 기일인 지난 6일, 딸이 당한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며 삼성 측에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했다. 더불어 딸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에 노조의 부재가 있다며 노조의 필요성을 제고시켰다.

고 황유미씨는 2003년 10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2005년 백혈병이 발병했고 1년9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2007년 3월 6일 23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황유미씨와 기흥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이숙영씨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 노동자들 중 처음으로 황유미씨와 이숙영씨 2인에 대해 산재를 승인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마저도 불복, 오는 29일 항소 2심을 앞두고 있다. 

▲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고(故) 황유미 씨의 추모기일인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딸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뉴시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삼성전자 계열사에는 두 사람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상당하다. 삼성일반노조 등에 따르면 2012년 3월 기준 삼성전자 계열사 직업병 피해 제보자는 137명, 사망자는 53명이다. 이들 모두 사측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특히 황 씨와 유 씨 외에 산재관련소송을 진행했던 김옥이, 송창호, 고 박지연씨 3인은 근거 불충분을 이유로 소송이 기각됐다.

‘직업’과 ‘병’은 무관하다더니

백혈병 등 노동자들의 질병과 산업재해로 여겨지는 여러 정황에도 그간 노동자들의 질병은 작업환경과 관련이 없다고 결론지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안전보건 컨설팅회사 ‘인바이론(Environ)’사에 작업환경 조사를 맡기고 연구결과를 근거로 ‘백혈병과 업무 사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관계자는 “연구결과에 대해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나 이 회사가 환경오염을 일으킨 기업들이 규제나 소송에 맞서기 위해 고용하는 대표적인 컨설팅 회사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달 6일 그간 작업공정에서 발암물질의 가능성을 적극 부인하던 삼성 측의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1급 발암물질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산보연의 발표에 따르면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의 일부 공정에서 백혈병 유발인자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부산물로 발생했다. 특히 피부암이나 폐암 등을 일으키는 비소는 노출기준을 초과해 발생하기도 했다.

웨이퍼 가공라인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11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논문은 작업 공정에서 부산물로 벤젠, 페놀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발생하고 작업자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에 이어 이번 산보연의 발표는 웨이퍼 가공라인 뿐 아니라 반도체 조립라인에서도 발암성 유해화학물질이 발생함을 확인시켜 줬다.

또 이번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이 아닌, 생산과정의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발견됐다. 이는 백혈병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확인해준다. 부산물은 조립과정에서 사용하는 수지가 공정온도에서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그동안 삼성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에만 초점이 맞춰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 1급 발암물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이밖에 이번 연구는 자동화된 작업환경에서 이뤄진 만큼 작업환경이 비교적 열악했던 과거에는 발암물질 노출 정도가 비교적 심각했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반올림은 성명을 내고 “백혈병과 림프종이 발병한 피해당사자들이 작업할 당시(1990년대와 2000년 초중반)에는 최근 자동화된 작업환경과 달리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했던 수동의 열악한 작업환경이었고 환기시설도 열악했다”며 “과거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는 더욱 많은 양의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물론 이번 발암물질 노출에 대해 산보연은 “노출기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삼성 역시 “측정된 부산물의 양은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종업원의 건강과 관련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검출량이 ‘극미량’으로 사실상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정부와 삼성 측의 주장과 달리, 발암물질은 노출기준 미만이어도 작업환경이나 노출 경로 등에 따라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전독성 발암물질은 독성을 나타내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역치(threshold)’가 없고, 다만 일반적으로 용량이 증가할수록 염색체에 미치는 손상도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발암물질 한 분자로도 유전적 변이가 유발될 수 있고 종양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노출기준’에 대해서도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돼도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농도일 뿐”이라며 “안전농도와 위험농도의 경계치가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지난해 6월23일 황유미씨와 이숙영씨의 산재를 인정한 1심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판결은 과거 삼성반도체 공장(기흥공장)에서 사용된 벤젠, tce, 전리방사선 등에 노동자들이 노출허용기준 미만으로 노출됐어도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보고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책임’이 필요한 때

때문에 정부와 삼성의 모습이 사실을 은폐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산보연은 연구보고서 전문은 공개하지 않은 채 반도체 사업장 일부에서 발암물질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만을 배포했다. 더욱이 보도자료는 제목에서부터 ‘발암물질이 극미량 부산물로 발생’ 이라는 문구를 삽입해 발생 정도가 심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또 조사 대상 기업과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공장이 어디인지, ‘삼성’ ‘하이닉스’ 등 업체의 이름은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

또 삼성은 발암물질 노출이 확인됐다는 산보연의 발표 이후에도 과거자료를 인용, ‘근무환경과 직업성 암 발병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멕시코 칸쿤(Cancun)에서 열린 국제산업보건위원회(ICOH: The International Commission on Occupational Health) 2012년 학술대회에서 2010년 인바이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삼성은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산보연의 발표 이후 뒤늦게 ‘그룹 차원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표명했지만 실제 어떠한 해결노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것은 지금은 말할 상황이 아니고 조금 기다려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삼성이 대책을 마련해도 지난해 8월 대놓았던 대안처럼 미봉책일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삼성은 당시 ‘퇴직 임직원 암 발병자 지원제도’를 발표하고, 반도체 등의 공정에서 1년 이상 근무, 2000년 1월 1일 이후 퇴직한 임직원에 한해 백혈병, 림프종 등 14가지 암으로 투병하는 이들에게는 10년간 최대 1억원의 치료비를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소란을 잠재우려는 눈속임으로, 특수건강검진 대상자에게만 지원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반올림 측은  “이는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전체 반도체 사업장에 대해 특별한 관리방침이 제시돼야 하고, 과거 열악한 환경 속에 백혈병 등이 발병한 피해자들은 즉각적으로 직업병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산재는 근로복지공단이지 우리가 인정할 부분은 없다”며 “삼성에 의해 산재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은 ‘백혈병 피해노동자’ 문제와 관련, 지난 1월27일  ‘세계에서 가장 나쁜기업 3위’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날 그린피스 스위스 지부와 시민단체 베른선언(Berne Declaration)은 “전 세계 연인원 8만8천여 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삼성은 1만9014표를 받아 나쁜 기업 3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삼성이 ‘나쁜기업’ 후보로 오른 것은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들을 책임지지 않고, 50년 간 노동조합을 탄압한 역사가 있다는 이유다. 가장 나쁜 기업을 뽑는 ‘퍼블릭 아이 어워드’(the Public Eye Awards)는 삼성을 소개하며  “한국의 최고 부자 재벌은 공장에서 금지된 극독성물질을 노동자에게 알리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노동자 140명 이상이 암을 진단 받았고, 적어도 50명 이상의 젊은 노동자가 죽었다”며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그 책임을 부정하고, 환자와 사망자 및 그들의 친지들의 명예를 실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삼성전자는 주최측에 서한을 보내 “삼성은 종업원의 복지를 매우 중요시하며 세계 수준의 안전보건 환경을 유지하고 있고, 이 분야에 대해 특별히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문제들을 검토해왔다”며 그 근거로 2011년 발표된 인바이런사의 연구를 인용, “암 사례들과 작업장 노출 사이의 연관성은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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