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미래를 포기한 조선의 위기관리와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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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미래를 포기한 조선의 위기관리와 국민의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2.07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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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단위 선거 4연속 패배라는 치욕에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전국 단위 선거 4연속 패배라는 치욕을 당하고도 과거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사진 제공=뉴시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다고 한다. 즉 위기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불행과 행운을 결정할 수 있다. 한 국가의 대표적인 위기는 전쟁이다. 역대 세계를 주름잡던 최강국들은 전쟁을 국가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스·로마 제국도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면서 서양사의 첫 주역이 됐다. 영국과 프랑스도 대서양과 인도양을 양분하면서 제국주의의 선두주자가 됐다. 미국도 태평양 시대를 주도하면서 20세기 이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동양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통해 국력을 신장시켰다. 이 시기에 한족과 북방민족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와 같은 사상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달성했다. 오늘날 중국이 G2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배경은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끊임없는 발전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선진국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을 통해 쓸데없는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를 견지했던 덕분이라고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한민족 최후의 봉건왕조인 조선의 역사를 보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519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유지한 왕조의 최후가 이민족의 식민지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한다. 

조선 역사 중 큰 전쟁은 7년 조일전쟁과 정묘·병자호란이다. 양대 전쟁의 시간 격차는 불과 50년이 안 된다. 7년 조일전쟁이라는 조선 개국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고도 위정자들은 미래를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조일전쟁은 중병에 걸린 조선을 대수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조선의 암덩어리 신분제의 폐단인 양반의 특권과 적서차별을 제거할 수 있었다. 조세뿐만 아니라 군역도 양반에게 부담시킬 수 있었다. 대동법과 속오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기득권층의 반발로 시행도 더뎠고, 점차 흐지부지됐다. 후일 이 개혁안은 오히려 백성을 수탈하는 또 다른 병폐가 됐다.

병자호란을 보자. 청군은 앞선 정묘호란 당시 단점을 보완해 조선 왕실이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하게 신속기동부대를 편성했다. 수군이 빈약하고 기병 위주의 청군은 조선 왕실이 강화도에서 항거할 시 장기전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청군은 정묘호란을 제대로 복기한 셈이다.

청군의 신속기동부대는 인조의 강화도행을 막았고, 이에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게 됐다. 결국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했고, 인조는 청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삼전도의 치욕을 겪으며 조선 최초로 외적에 항복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대목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조선의 서인들이 제대로 된 방어책도 마련하지 않고 청과의 결사항전만을 떠들었다는 점이다. 청군은 인조의 강화도행 저지를 1차 작전목표로 삼았는데 조선의 위정자들은 말로만 결사항전을 떠들며 강화도행을 위해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은 없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포기한 조선의 위정자를 가진 백성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제1야당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탄핵정국 이후 변한 것이 없다. 전국 단위 선거 4연속 패배라는 치욕을 당하고도 과거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당내에는 야권 후보단일화를 놓고 적지않은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군에는 지난 총선 낙선자도 포함됐다. 새로운 인물이 안 보인다. 미래를 포기한 듯하다.

과거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혁신 없는 국민의힘이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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