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목소리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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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목소리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12.21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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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 실타래]-'안녕'
‘산울림’은 우리 가요사에서 20장이 넘는 많은 음반과 음반마다 히트곡을 낸 독보적인 그룹이다. 산울림을 가장 잘 표현하는 노래를 딱 한 곡만 고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안녕’을 꼽고 싶다.
 
1987년 정규 11집에 수록됐고 같은 해 발매된 ‘김창완의 새로운 여행 TV드라마음악’ 음반에도 수록됐다. 넉 장으로 구성된 히트곡 모음집에도 들어 있다.

산울림 음악의 핵은 ‘어린아이다움’이 아닐까 한다. 그 어린아이다움은 때론 익살기로, 때론 서정성으로, 때론 순진성으로 나타난다.
 
▲ '안녕'이 수록된 '김창완의 새로운 여행 TV드라마 음악' 음반     © 시사오늘 박지순

 
1980년 대에 ‘산할아버지’, ‘개구장이’, ‘외계인 ET’를 부르며 자란 세대는 산울림의 익살기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줬는지 기억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모’, ‘어머니와 고등어’ 등에서 전해지는 감정의 순수·순진성은 산울림 음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이다.

산울림 음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들이 어떻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됐는지 산울림의 ‘전사(前史)’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분명한 연도는 기억이 안 나지만 기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1979년 쯤인 것 같다. 겨울에 동네 형들이 부르는 노래를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는데 ‘아니 벌써’라는 가사가 재미있어서 ‘아니 벌써, 아니 벌써…’라며 반복했고 뒤의 가사는 발음만 대충 듣고 따라했었다. 틀린 가사가 웃겼는지 동네 형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겨울이었다.

동네 형들이라고 했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5,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가요를 부르고 다니기에는 어리기는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열 살이 조금 넘은 동네 아이들이 부르고 다녔다면 대단한 히트곡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 벌써’가 수록된 산울림의 1집 음반은 1977년 12월 15일자로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됐다. ‘아니 벌써’가 발표되자마자 가요사에 유례가 드문 폭발적 인기를 끈 사실을 생각하면 기자가 동네 형들을 따라 ‘아니 벌써’를 불렀던 때는 1979년이 아니라 1978년 1~2월 겨울이 맞는 것 같다.
 
▲ 산울림 1집. '아니 벌써'로 가요계를 강타했다.     © 시사오늘 박지순


산울림 1집 LP 뒷면에 보면 3형제 멤버들인 김창완, 창훈, 창익(막내 동생 창익은 지난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세)의 얼굴 사진과 함께 산울림의 음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사연이 소개돼 있다.

김창완이 삼촌한테서 선물 받은 JVC 포터블 녹음기로 데모 테입(정식 음반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임시로 녹음한 테입)을 들고 이흥주 성음사 사장을 찾아갔다. 서울시내에 있는 여러 레코드사 중에서 84번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가는 위치에 성음사가 있어서였다고 한다.

이 사장은 김창완이 들고 온 데모 테입을 듣고는 마치 AFKN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외국 팝음악을 대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창완 자신도 ‘데모 테입 사건’의 정확한 일자를 기억 못 하는 것으로 2003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아마도 1977년 봄에서 여름 사이였을 것이다.

산울림의 1집 이후의 음반 발매 속도를 따져 보면 음반 제작 기간도 대략 산출이 되는데 초기에는 석 달 정도의 준비기간만으로도 한 장의 음반을 내놨다. 산울림은 모두 13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고 10집이 나온 것이 1984년이다.
 
그러니까 10장의 음반을 내는데 7년이 걸린 셈이다. 이후에는 발매 속도가 떨어져 1986년에 11집, 1991년에 12집을 냈고 마지막 음반인 13집은 1997년 발표했다.

10집까지는 2년마다 석 장의 음반을 발매한 꼴인데 대외 활동 기간을 빼면 음반 제작에만 투입된 시간은 한 장 당 3개월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화산 같은 창작에너지가 분출되던 시기다.

1970년 대 이후 등장한 가요 뮤지션 중에서 정규 음반만 10장 이상 발표한 경우도 드물거니와 산울림 처럼 빠른 속도로 그러면서 완성도와 독창성을 동시에 갖춘 음반을 선보인 예는 조용필이 유일하다.
 
조용필은 1980년에 1집을 낸 후 1994년 15집을 냈다. 데모 테입을 들고 갔을 때 산울림의 창작 에너지와 의욕을 감안하면 어쩌면 한 두 달 만에 1집이 나왔을 수도 있다.
 
▲ '안녕'은 산울림 히트곡 모음집에도 실려 있다.     © 시사오늘 박지순


산울림은 13장의 정규 음반 이외에도 동요와 디스코, 발라드 곡만을 모은 다수의 기획음반을 보유하고 있고 대부분 상당히 고가로 거래되는 수집가들의 표적이다. 음반이 워낙 많다보니 산울림의 음악적 장르를 어느 한 편으로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데뷔곡 ‘아니 벌써’는 락의 범주 안에 있지만 ‘너의 의미’, ‘회상’,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같은 발라드 명곡도 음반마다 한 곡씩은 꼭 들어가 있다. 연주 시간이 20분에 가까운 괴물 같은 대곡 ‘그대는 이미 나’라는 곡도 있다.

 
‘안녕’은 서정적인 발라드곡이다. 어린이들의 합창으로 시작해 김창완의 독창이 이어진다. 어린이들은 고음부와 저음부로 나뉘어 훌륭한 화성을 들려준다. 김창완의 독창 부분은 어린이들의 합창 부분과 곡이 같다.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순수하고 천진하면서도 어른이 부르는 것 이상으로 구슬프고 진지하기도 하다.

산울림의 동요들에서 느낄 수 있는 익살기가 담겨져 있지는 않지만 ‘안녕’은 산울림 음악의 정수를 가장 온전히 표현하고 있는 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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