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신중해야 하는 이유
[기자수첩]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신중해야 하는 이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2.10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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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기검열은 결국 약자의 피해로 이어져…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과 인터넷 포털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과 인터넷 포털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과 인터넷 포털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민주당 미디어·언론상생특별위원회(TF) 단장인 노웅래 최고위원은 9일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기존 언론이 포함되느냐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데 오늘 회의를 통해 기존 언론도 포함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한 6개 언론법 개정안을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입니다.

노 최고위원의 주장처럼, 최근 언론에서는 ‘클릭 장사’를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 또는 자극적인 정보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번 보도가 되면 오보(誤報)로 밝혀지더라도 책임질 부분이 크지 않다 보니, 노 최고위원 표현대로 ‘쓰레기 같은 기사’가 양산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론이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공감합니다.

다만 그 감시와 견제가 ‘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가짜뉴스’라는 개념의 정의부터가 문제입니다. 제20대 국회 때만 가짜뉴스와 관련된 법안이 20건 넘게 발의됐는데요. 이 법안에서 나타난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는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만큼 가짜뉴스를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민주당 측도 가짜뉴스를 규제하겠다고만 할 뿐, 무엇이 가짜뉴스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정의가 애매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어떻게 될까요. 언론은 가급적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 보도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특히 정부나 정치인, 대기업처럼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소유한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사권이 없는 언론이 정부나 정치인, 대기업의 비리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획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웬만하면 이들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기자가 자기검열을 하게 되면,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이 ‘갑질’을 한다고 해도, 언론은 눈을 감을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갑질은 도덕적 문제는 있으나 법적 문제는 없는 사안들입니다. 도덕적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요. 그렇다면 갑질을 한 주체는 일단 ‘갑질이라는 건 가짜뉴스’라며 언론사를 고소할 테고, 기자는 굳이 법정 싸움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약자들의 피해를 보도하려 하지 않겠죠.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할 우려도 있습니다. 노 최고위원은 본 법안이 통과되면 가짜뉴스에 대한 판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가 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 구성에는 정부여당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적잖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기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건 언론의 책임이 5할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이미 자정 기능을 잃었으며,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를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하면,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이 약해지고 그 결과 오히려 사회적 을(乙)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법제화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불필요한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소음을 없애려다 보면, 반드시 있어야 할 신호까지도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법이라는 ‘쉬운 길’보다는 수고스럽더라도 ‘어렵지만 더 나은 길’을 찾는 정부여당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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