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박정희에서 김영삼으로…보수의 패러다임 시프트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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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박정희에서 김영삼으로…보수의 패러다임 시프트 일어날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3.15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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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박정희 생가 찾았던 황교안, 정치 재개 첫 걸음은 YS 생가에서…보수 내부 변화 징조일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강성보수가 주도권을 쥐었던 보수 내에서 변화의 징조가 포착된다. ⓒ시사오늘 김유종
강성보수가 주도권을 쥐었던 보수 내에서 변화의 징조가 포착된다. ⓒ시사오늘 김유종

2019년 2월 9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습니다. 당시 황 전 총리는 2·27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당한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고자 했다”며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2021년 3월 10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정치 재개를 선언한 그의 첫 행선지였습니다. 황 전 대표는 YS 생가 방명록에 “김 대통령님의 3당 통합 정신으로, 대통합을 완성하여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적었습니다.

2019년 황 전 대표의 목표는 당대표 당선이었습니다. 2021년, 그가 욕심내고 있는 자리는 국민의힘 차기 대선주자입니다. 당대표나 대선주자나, 당원의 지지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황 전 대표의 행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겁니다.

1990년 ‘3당합당’ 이후, 영남과 보수는 사실상 동의어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의 성향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TK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독재정권의 지지 기반이었던 반면, PK는 군사독재정권과 평생을 싸워왔던 YS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까닭입니다.

때문에 TK와 PK의 결합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형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사적 대사건이 터지자 PK가 ‘보수 대연합’에서 이탈했던 건 이런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보수가 강성보수의 TK와 중도보수의 PK로 분리되면서, 보수 정치인들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내몰리게 됩니다.

이에 보수에서는 ‘확장성 논쟁’이 시작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를 보내주는’ 강성보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뒤 그 힘을 바탕으로 반문(反文) 세력을 흡수해야 한다는 쪽과, 강성보수를 품으면 중도 확장이 어려우니 애초에 중도보수에 깃발을 꽂고 자연스럽게 강성보수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는 쪽이 대립한 겁니다.

황 전 대표는 전자에 속하는 대표적 정치인이었습니다. 애초에 친박(親朴)의 세력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황 전 대표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박근혜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27 전당대회에서도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고요.

그랬던 황 전 대표가 정계 복귀 첫 행선지로 YS 생가를 택한 건 의미심장합니다. 강성보수의 힘을 바탕으로 당권을 잡았던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아닌 YS 생가에서 정치 복귀 첫 걸음을 뗐다는 건 보수 내부에서 ‘주류의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당원들의 성향 자체가 변한 것이든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든 간에, 강성보수로는 정권 탈환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제19대 대선과 제7회 지방선거, 제21대 총선에서 연달아 참패한 보수 내부에서는 꾸준히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강성보수의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내놓는 후보로는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조금씩 힘을 얻어온 겁니다. 그 예로 최근 국민의힘은 ‘강성보수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나경원 전 의원과 이언주 전 의원 대신, ‘중도 확장성’을 강조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박형준 전 의원을 각각 4·7 보궐선거 서울·부산시장 후보로 낙점했습니다.

심지어 보수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구속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한국갤럽>이 9일부터 11일까지 수행해 12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자의 64%가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선거 경쟁력’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동안 보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예’를 자임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박정희’보다 ‘김영삼’의 이름이 더 자주 불리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성보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중도보수의 상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힘 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선 결과와 윤 전 총장의 부상, 황 전 대표의 움직임이 정말 ‘패러다임 시프트’의 신호라면, 보수의 헤게모니가 ‘중도보수’로 옮겨가고 있다는 징조라면 차기 대선은 생각보다 치열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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