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칠천량 패전과 위기에 빠진 한국 배터리-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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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경제] 칠천량 패전과 위기에 빠진 한국 배터리-반도체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3.28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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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 참패, 최고 함대 가졌다는 자만심이 빚은 비극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칠천량 참패는 최고의 함대를 가졌다는 자만심이 빚은 비극이다. 칠천량(사진 좌), 폭스바겐(사진 우) 사진제공=뉴시스
칠천량 참패는 최고의 함대를 가졌다는 자만심이 빚은 비극이다. 칠천량(사진 좌), 폭스바겐(사진 우) 사진제공=뉴시스

원균은 조일전쟁 당시 조선 수군 최초이자 최후의 패전인 칠천량 해전의 패장이다. <선조실록> 선조 30년 7월 22일 기사에 실린 칠천량 해전 당시 현장에 있던 선전관 김식(金軾)의 보고에 따르면,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매복과 기습에 걸려 대량 학살을 당했다.

“(중략) 적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마침내 우리나라 전선은 모두 불에 타서 침몰되었고 제장과 군졸들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모두 죽었습니다. 신은 통제사 원균 및 순천 부사 우치적과 간신히 탈출하여 상륙했는데, 원균은 늙어서 행보하지 못하여 맨몸으로 칼을 잡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신이 달아나면서 일면 돌아보니 왜노 6∼7명이 이미 칼을 휘두르며 원균에게 달려들었는데 그 뒤로 원균의 생사를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원균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은 조일전쟁 개전 이래 일본군에게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함대였지만 단 한 번의 해전으로 전멸했다. 원균의 무능력이 낳은 비극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칠천량 패전의 진짜 죄인은 선조다. <선조실록> 선조 30년 7월 10일 기사에 따르면, 선조는 원균 함대의 출전을 독촉하는 비변사의 건의에 대해 “원균에게도 아울러 말을 만들어 하유하기를, ‘전일과 같이 후퇴하여 적을 놓아준다면 나라에는 법이 있고 나 역시 사사로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라”고 명령했다.

전선 상황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군주의 무책임한 독전 명령이 아닐 수 없다. 선조는 민심을 지배한 이순신 제거에만 몰두한 나머지 일본의 계략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눈엣가시같은 이순신을 제거하고 자신에게 충성할 존재인 원균을 대체재로 생각했다. 전선의 지휘관의 역량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반면 일본은 이순신 제거와 조선 수군 궤멸에 목표를 두고 전력을 다했다. 일본은 그동안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참패에 대한 보복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따라서 칠천량 패전은 이미 일본의 계략에 의해 예정된 참패였다. 일본은 정유재란을 일으키면서 이순신 제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임진년 당시에 이순신의 존재를 몰랐다는 중대한 실책을 만회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이순신 제거는 곧 조일전쟁의 기본 전략인 수륙병진작전의 성공이었다.

마침 일본에겐 조선 정부에 유력한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선조였다. 선조는 일본의 계략에 빠져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시켰고, 후임자로 원균을 임명했다. 선조의 독촉에 쫓긴 원균은 일본에 미리 준비한 덫에 걸려 함대뿐만 아니라 조선의 운명도 잃을 위기에 빠뜨렸다.

원균도 패전의 책임이 크다. 이순신이 조련한 최고의 함대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 이순신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적정을 사전에 철저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전술을 준비하고 훈련시켰다. 하지만 원균은 정반대로 적에 대한 정보가 무지했다. 선조의 독촉에 무작정 전장에 나섰다. 그 결과가 칠천량 참패다.

더 큰 문제는 선조와 원균, 아니 조선이 갖고 있던 자만심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무시하고 조선 수군을 과신해 일본 수군이 반격을 준비할 것이라는 경계심이 없었다. 지휘관을 교체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일본은 지난 6년간 이순신 함대에 유린당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사실 조선과 일본의 차이점은 이순신의 존재 여부였다. 일본이 이순신 제거에 적극 나선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 결과가 칠천량 대승이었다.

최근 한국이 주도하는 배터리와 반도체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LG에너지솔류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사생결단식의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독일의 폭스바겐이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발표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자체 생산 계획도 밝힌 점이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파우치형’을 외면하고 경쟁자로 나서겠다는 선전포고다. 

또한 반도체 매출 세계 1위 인텔이 미국 현지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 직접 진출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삼성전자의 텃밭에 미국 기업이 치고 들어오겠다는 비보다. 미국 정부도 국가전략 차원에서 파운드리 지원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닌 국가 간의 대결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물론 배터리와 반도체 시장이 만만한 영역이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수십년 가까이 닦은 시장이다. 하지만 폭스바겐과 인텔의 반격이 예사롭지 않다. 전기차가 차세대 자동차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테슬라가 세계 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전통의 자동차 강국인 독일이 이 시장을 그냥 놓아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도체 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아시아가 주도하는 시장에 맡겨 놓으리라는 판단을 했다면 큰 오산이다.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면 EU, 중국, 일본도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글로벌 경쟁은 시간문제다.

우리 기업들이 배터리와 반도체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자만심과 아직 우리 기술력을 따라오기엔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오판을 한다면 칠천량 패전은 재현될 것이다. 칠천량 참패는 최고의 함대를 가졌다는 자만심이 빚은 비극이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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