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의 돌풍’ 기대하는 유승민에게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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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의 돌풍’ 기대하는 유승민에게 필요한 것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4.16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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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표상 된 윤석열·‘복지’ 대명사 이재명…‘유승민 브랜드’ 구축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유승민계가 국민의힘 내 최대 계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유승민 전 의원의 지지율은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뉴시스
유승민계가 국민의힘 내 최대 계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유승민 전 의원의 지지율은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 솔직한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지지율은 의미가 있다. 다만 그건 현 시점의 지지율이다. 과거 원내대표를 관둔 직후 지지율이 훅 오른 경험도 있다. 이제 시작이다. 각 당 후보가 정해지는 과정에서 적어도 두세 번은 출렁거릴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1~2%에서 시작했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유 전 의원 본인에게도 ‘치고 올라갈’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유 전 의원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4·7 재보궐선거만 봐도, 오세훈 후보가 당선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보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경선에서도 ‘언더독(underdog)’으로 지목됐습니다.

그러나 오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확장성’과 ‘시정 경험’을 무기로 바람을 일으키자, 유권자들의 시선이 오 후보에게로 쏠렸습니다. 그 결과 당내 경선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던 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18%포인트 차이로 완파하며 서울시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유 전 의원이라고 이 루트를 밟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죠.

다만 유 전 의원이 ‘1% 돌풍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 계속 출마, 수차례 낙선하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도 탈권위적이고 인간적이라는 긍정적인 평을 듣고 있었고요. 노 전 대통령이 지지율 1%의 군소후보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축적된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이미지가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시장은 강성보수가 당을 장악하고 있던 2019년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면서도 ‘강성보수 이미지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중도보수 이미지를 지켜냈습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강성보수에게 구애하기보다는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 확장성 있는 후보’를 밀어달라며 중도보수 이미지를 고수했죠.

이런 중도보수 이미지에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장으로 일하면서 구축한 ‘오세훈 브랜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권 심판론’이 결합하자 오 시장의 지지율은 치솟았습니다. 지지율 1% 후보의 돌풍은 확고한 ‘브랜드’가 있는 후보가 시대정신과 결합할 때 벌어지는 일종의 당위론적 결말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유 전 의원에게 이런 ‘브랜드’가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며 ‘할 말은 하는 정치인’ 이미지를 얻었던 때도 있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런 이미지는 거의 희석돼버렸습니다. 오히려 ‘대구의 아들’을 강조하며 지역주의에 기대는 듯한 모습, ‘배신자’ 이미지를 벗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외치는 모습으로 자신의 최대 강점인 ‘합리적 중도보수’ 색채마저 상실한 느낌도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과 오 시장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지켜냈고, 그것이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진 시점에 도약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고수한 끝에 ‘공정’의 표상이 되며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고요. ‘복지’와 ‘기본소득’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후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반면 ‘정치인 유승민’의 브랜드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제21대 총선과 4·7 재보궐선거를 통해 ‘유승민계’가 힘을 얻게 됐지만, 여전히 유 전 의원의 대선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얼마 전 기자와 만난 한 노정객(老政客)은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누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지는 안다”며 “어떤 정치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면 그 사람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차기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유 전 의원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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