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②] 원발불명 암환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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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환자생활②] 원발불명 암환자가 되다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4.25 08: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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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우리의 삶에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기다린다. 그중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경우엔 무엇보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겨드랑이 멍울과 복부의 불룩한 존재, 처음엔 너무 당황스럽고 불가항력적이라 아예 손을 놓고 말았다.

불길한 실체와 맞닥뜨리자 무기력감에 자신의 현주소에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그건 현실 부정에 가까웠다. 그 당시 난 전문가의 검진을 받는 적극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두려움에 병적 조짐을 외면, 회피하고 있었다. 

일단 이상 징후로 인한 답답하고 불안함을 애써 누른 채, 가족들이나 그 누구에게도 일체 내색 못했다. 발설하는 순간 악성 가능성 추정이 기정사실화 될 것 같은 어리석은 생각이 날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나의 번민과 상관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시간은 냉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갔다.

먼저 약속한 큰아들 네 손주들을 돌봐주러 다니면서, 4월 초 둘째 아들 결혼식이나 지나고 보자 싶었다. 만에 하나 나쁜 것일지언정 예정된 인륜지대사를 치른 후 병원 검진을 받겠다고 맘먹었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축하해 준 지인들께 감사 인사를 하며 어영부영 또 한 달을 보냈다.

갑작스러운 복통, 사경을 헤매

그 사이 불청객들은 내 몸에서 더욱 확실한 지분을 차지, 굳건히 자리매김해 있었다. 눈에 띄게 사이즈가 커지는 것 같지 않았으나 멍울의 위협감은 강렬했다. 또한 감기는 확실히 나았는데 언덕을 오르면 예전보다 숨이 차고 종종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나타났다. 거울에 비친 얼굴도 부은 것인지 푸석푸석 원래의 나 같지가 않았다.

병증이 예사롭지 않는데도,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국내 유명 대형 종합병원이 세 군데나 있건만, 나는 그저 지나칠 뿐 병원을 찾을 엄두를 못 냈다. 이렇게 정작 중요 문제는 미뤄두고 5월 초, 병원 대신 몇 년째 오가며 생활하던 시골집으로 향했다.

고속버스가 서울을 출발한 지 30여 분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구토와 아랫배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물론 그날 아침부터 오심 증세가 있긴 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겠지 하고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으나,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고속버스만큼이나 복통, 요통도 멈춤 없이 같이 달렸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매몰차게 통증은 날 괴롭혔고, 고속버스 맨바닥에 드러누워 계속 구토를 하며 사경을 헤매는 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야에 어렴풋이 섬진강 물줄기와 5월의 초록 물결이 나부꼈다. 바깥세상은 계절의 여왕인 5월로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나는 여기가 지옥이지 않을까 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행복은 저 멀리 달아나고 나의 심신은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종점에 도착하면 바로 병원으로 가자는 동행한 남편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며 난 혼미해졌다 깨어났다를 반복했다. 드디어 네 시간의 끝없던 복통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쓰러질 듯한 몸을 겨우 가누고 지방 버스 터미널 앞 개인 병원 내과의를 만났다. 간단한 진료 후 초음파 모니터엔 상당한 크기의 난소 낭종이 두둥 형체를 드러냈다.

“이렇게 커지기까지 어찌 병원에 가지 않았어요.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의사의 긴급하고 단호한 일갈이었다.

까칠한 밤송이처럼 나쁜 존재가 몸속에서 날 찌르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정명화
까칠한 밤송이처럼 나쁜 존재가 몸속에서 날 찌르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정명화

응급 난소 낭종 수술, 양성 판명

진료의뢰서를 받고 서둘러 2차 병원 응급실에 도착, “너무 아파요. 빨리 수술해주세요” 절규에 가까운 나의 외침에 복부 CT 등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곧바로 응급수술을 시작했다.

오전 11시 서울에서 출발한 난, 밤 10시경 지방 소도시 병원 회복실에서 깨어났다. 다행히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복통은 완전히 가라앉고 평온 속에서 눈을 떴다. 무통 주사 덕에 수술 후 전혀 통증이 없어 언제 지난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증상이 가라앉았다. 30대에 한쪽 난소 낭종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한 후, 30여 년 만에 다시 반대편 난소의 낭종이 생겼던 것으로, 그 상당한 크기의 낭종이 꼬이면서 복통이 그토록 심했던 것이다.

언제부터 복부에 낭종이 생기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만큼 정기 검진한 지가 까마득히 오래됐다. 철저하고 슬기로운 건강관리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셈이다. 나에겐 아버지의 위암과 어머니의 유방암 병력의 가족력 핸디캡이 있던지라 정기검진이 필수였건만, 완전히 도외시한 생활을 해왔다.

결국 인내의 한계를 느낀 낭종이 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진 신고하며 공개적으로 존재감을 표출했던 것이다.  폐경 후 난소 낭종은 난소암일 확률이 높다는 일반론적 가능성에 혹시나 하며 우려가 컸었다.

난소의 신체부위 특성상 주로 어느 정도 병증이 진행이 된 후 발견되는 사례가 많고, 난소암의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인식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양성으로 판명 났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의사는 조석으로 회진하며 내 상태를 체크했다. 그리고 특별한 불편사항이 없는지 물어왔다. 난 분명 주치의와 의논해야 할 중대 사안이 있지 않나. 입원기간 동안 차일피일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지내다, 퇴원일이 다가오면서 마침내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제법 큰 겨드랑이 멍울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겨드랑이 멍울, 전이성 암 진단받아

그렇잖아도 주치의는 내가 산부인과 검진을 오랫동안 받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일침을 가했는데, 겨드랑이 멍울을 확인하곤 너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일단 퇴원 후 그 병원 유방외과에서 검진을 받기로 예약했다. 멍울을 발견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유방외과 여의사의 꼼꼼한 촉진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방에서는 전혀 조그마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X-ray와 초음파 그리고 보다 정밀한 MRI 검사에서 조차도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처음엔 겨드랑이에 만 멍울이 존재하니 유방외과의는 6개월 후 보자고 했지만, 초음파를 통해 확인한 겨드랑이 림프절에 4cm 가까운 크기의 멍울과 작은 몇 개의 존재가 석연치 않아 조직검사를 단행키로 했다.

결과를 기다리던 중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모양새였다. 문제가 없다면 더 정밀한 검사를 실행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는 분명 나쁜 것일 가능성이 컸다. 까칠한 밤송이처럼 몸속 어딘가 나쁜 녀석이 서식하며 날 찌르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예상을 어느 정도는 했으나 그 한통의 전화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가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며칠 동안 애끓는 기다림의 시간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고 안절부절못하며 공포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악성 림프절이라면…. 그렇다면 임파선암일까를 의심하며 기다리는 동안 조급증에 림프종 환우 카페까지 가입, 갖가지 정보와 치료법을 검색해 봤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 동안 나는 이미 림프종 환자가 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드디어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찾은 유방외과 의사는 뜻밖의 차가운 소식을 전했다.

“겨드랑이 멍울이 암입니다. 그런데 전이성 암입니다” 하는 거였다.

“네??? 무슨 말입니까?”

속칭 멘붕에 빠졌다. 암 확진이란 청천벽력 같은 사실로 충격에 휩싸임과 동시에 겨드랑이 멍울의 존재가 전이암이라는 상황에 더 당황스러웠다. 다시 말하자면 겨드랑이 멍울이 악성인 암인 건 확실하고, 림프 부위가 원발이 아니고 어딘 가에서 전이되어 나타난 암이라는 거였다.

원발 부위는 암이 처음 생긴 장소를 말한다. 모든 암은 원발 부위가 있다. 그러나 조직학적으로 암을 진단한 후 여러 검사를 시행해도 원발 부위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원발부위 불명 암(Cancer of Unknown Primary Site)이라 일컫는다. 통계상 모든 악성 종양의 2~6%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림프절 멍울이 어디에서 출발해 전이가 된 건지, 즉 원발 부위가 어디며 그걸 어떻게 찾아야 할까. 또 다른 고민과 선택의 시간이 주어졌다. 바람 잘 날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참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참담했다. 이정표를 잃은 난 홀로 불안하고 외로운 길에 섰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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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11:56:16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