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장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을 위한 조금은 부끄러운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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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상장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을 위한 조금은 부끄러운 제언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4.28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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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부끄러운 얘기를 좀 해보려 한다. 이 회사에 들어온지 어느덧 8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언론고시에 연신 낙방해 낙담과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들여다보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회사였다. 일단 먹고살자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보냈고, 며칠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면접 당일 회사 주변을 거닐며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당시 회사는 시사지로 분류되는 언론사였고, 그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선배들에게 사정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지도도 낮았다. 그래도 '일단 먹고살자'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이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 2~3년 동안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를 출입했다. 배정받은 정당과 상임위원회에 출입 등록을 했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각 의원실에 명함을 돌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응답해주는 의원과 보좌진보다는, 무시하고 괄대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같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없었던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자부심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이는 취재 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시사오늘의 아무개 기자입니다'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시사○○의 아무개 기자입니다'라면서 사명을 명확하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났다. 취재원들은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다른 언론사로 오인하면서 더 잘 대해주고, 더 많은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참 요긴한 취재법이라고 생각하며 더 사명을 뭉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언론사에 대한 자부심 없이, 취재원들에게 일종의 사기까지 치면서 쓴 기사가 과연 가치가 있을까, 이렇게 하면 회사 인지도는 답보 상태가 될 것이고 조직이 성장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의 성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해지기로 했다. 가슴을 펴고 명함을 돌렸고, 사명을 뭉개지도 않았다. 무시와 괄시를 당할 때는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마음으로 더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인정해주는 취재원들이 적게나마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독자로부터 '좋은 기사 잘 읽었다'는 전화를 처음으로 받은 것도 그때쯤이었다. 이는 자신의 성장뿐만 아니라 회사 규모 확대와 인지도 제고로 조금씩 이어졌다. 현재는 업계에서도 시사지가 아닌 '종합 온오프라인 미디어'로 분류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회사와 함께 커가고 있다는 기분에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8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생뚱맞은 얘기를 너무 많이 늘어놨다. '상장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을 위한 조금은 부끄러운 제언'을 이제부터 좀 해보려 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코스피 상장작업에 본격 착수했다고 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에 '정의선 체제'가 확고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의선 회장의 보유 지분이 많은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고, 이를 활용해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직상장을 하느냐, 아니면 현대건설과의 합병으로 우회상장을 하느냐, 또는 직상장 후 현대건설과 합병하느냐 등 방법론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을 뿐이었다. 이 가운데 현대차그룹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일단 직상장 방식을 택한 것이다.

상장을 통한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 제고는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몸값 10조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현대엔지니어링은 충분히 좋은 회사고, 매년 우수한 실적을 내는 업체다. 최근에는 모회사인 현대건설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기록할 정도다. 상장을 통해 '1군 건설사 도약에 나선다'는 보도도 있는데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미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1군 건설사 중 하나고, 시공능력평가 순위 7위에 자리한 10대 건설사다. 최근에는 한국전력기술, 보국에너텍 등과 환경에너지사업 공동추진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ESG 경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장에 앞서 몸집 부풀리기를 위한 포석을 둔 셈이다. 현대엔지니어링과 모회사인 현대건설, 그리고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 모두가 만족할 만한 IPO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런데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 건설사로서 진정한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 꼭 수정해야 할 게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입찰에 나선 여러 수주전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현장에 동원된 직원들, 그리고 외부인력인 OS들이 '현대엔지니어링'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현대'라고만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심지어 '현대건설'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알리는 장면도 종종 목격했다. 설명회에서 마이크를 든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현대엔지니어링'이라고는 서두에 짧게 뭉개듯 소개하고 이후부터는 '우리 현대', '우리 힐스테이트'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니 '그래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에게 지지를 받는다'고 했다. 현대건설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현대엔지니어링이라고 소개하면 못 알아듣는 조합원들도 있으니 전략적으로 일부러 뭉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시공권을 확보하고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면 참 좋은 일이지만, 중장기적인 회사 인지도와 기업가치 제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또한 상장사는 주주와 사회에 깊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상장 후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을 '현대건설'로 호도하는 건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의 주거 브랜드인 '힐스테이트'와 '디에이치'를 수십억 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쓰고 있다. 10대 건설사 가운데 단독 브랜드가 없는 건 현대엔지니어링이 유일하다. 같은 비(非)상장사인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SK건설도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다. 상장이 이뤄지면 현대엔지니어링만의 브랜드를 선보이는 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장 업체인 만큼 브랜드 사용료를 타 업체에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게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도 든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곧 주관사 선정을 마치고 오는 하반기를 목표로 상장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설사로서, 그리고 상장사로서 진정한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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