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③] 유방암, 심증은 있고 물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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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환자생활③] 유방암, 심증은 있고 물증이 없다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5.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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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발부위 찾아 삼만리
사례 적은 희귀한 케이스
원발, 유방으로 범위 압축
결국 유방외과 문 두들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산 넘어 산이었다. 암 환자가 된 것도 기막힌 일인데 이 무슨 상황인지. 암 진단으로 1차 충격, 그리고 원발 불명 암이란 사실로 2차 충격이 날 강타했다. 대부분 암이 처음 어느 부위에서 생겼는지 분명히 안다. 그래서 위암, 폐암, 유방암, 대장암 등과 같이 암이 먼저 생긴 장소의 이름을 붙여 암 진단명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나의 경우 겨드랑이 림프 멍울이 암이 처음 생긴 장소를 모르는 전이암이라니, 처음엔 어두운 터널에 갇힌 듯 갑갑하고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나의 암은 어디에서 시작해 다른 곳에 씨를 뿌려 놓고 종적을 감춘 것일까. 이웃에 더 큰 집을 지어 놓고 사라진 그 고약한 암세포의 행로를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디로 가서 어떻게 원발 부위를 찾아야 할지, 모든 게 의문과 혼돈의 도가니였다. 암 진단을 받았지만 또 다른 고뇌의 시간이 기다렸다. 나는 뿌옇고 어두운 길 위에서 방황하며 애태우는 외로운 신세였다.

그렇다면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원발부위를 찾기 위해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등등 계속 다른 추가 검사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유방 초음파를 병리과 다른 의사가 또다시 시행해도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언제까지 숨바꼭질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다 난소 수술 받은 지방 병원에서 원발 부위를 찾느라 이 검사, 저 검사하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발 암세포는 어디에 꼭꼭 숨었을까. ⓒ정명화
원발 암세포는 어디에 꼭꼭 숨었을까. ⓒ정명화

잠재성 유방암 환자로

전이암이 먼저 발견되는 경우 보통 원발부위가 매우 작거나 숨어 버리거나 소멸되거나 진단하기 어려운 부위여서, 끝까지 암이 발생한 장소를 찾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예전 췌장암이나 폐암 등 몸속 깊은 곳에 생긴 암을 진단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진단기술의 발달에 의해 원발 불명 암의 비율은 줄어드는 추세다.

나처럼 전이 부위의 암이 더 커진 상태에서 발견되면, 원발부위를 찾아내기 위한 검사에 시간을 계속 투자하기보다는 원발 불명 암 그 자체로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원발부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후의 경과 등을 통해 원발부위가 자연스레 밝혀지는 사례도 종종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최종 목적은 치료인데, 어떤 진료과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 서울로 올라가 가정의학과를 찾아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잠자는 일도 전폐할 정도로 밤새 인터넷 자료를 집중 검색한 결과, 가까스로 여성의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는 유방암을 의심하며 7~80% 유방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를 찾았다.

물론 유방암일 가능성을 열어뒀을 뿐으로 심증만 있는, 유방에서 암세포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물증이 없는 희한한 상태였다. 그래도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유방외과 문을 두들기기로 방향을 잡았다. 원발부위가 확실하지 않더라도 대개 유방암으로 분류, 치료하는 게 보편적이라고 해, 그 정보를 믿고 치료의 길을 찾아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제부터는 잠정 유방암 환자가 된 것이다.

유방암에 나타나는 증상들

진정 원발부위가 유방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남으면서도, 그럴 경우를 상정해 유방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 유방 종괴 : 유방에서 딱딱한 혹이 만져지는 것으로, 유방암 증상 중 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증상이다.

- 유두 분비 : 유방암 증상 중에서 유방 종괴 다음으로 흔하지만 유두 분비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유방암은 아니다. 다만 유즙이 아닌 피 등의 다른 분비물이 유두에서 나오면 병원을 찾아 상의해야.

- 유방 통증 : 여성에게 매우 흔한 증상 중 하나로, 만약 유방 통증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며 유방 한 부분에만 나타난다면 유방암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문의 진찰 필요.

- 유두 함몰 : 유방암에 의해 유두가 아래쪽으로 끌려가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유방암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유두의 증상 중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다. 선천적인 유두 함몰이 아닌데, 최근에 유두가 함몰되었다면 유방암 의심.

- 유방에 나타나는 피부 변화 : 피부 함몰, 피부 궤양, 피부 부종, 피부 결절 등이 있다. 그리고 피부 궤양과 피부 결절은 유방암이 피부를 침범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며, 피부 부종은 유방암이 피부의 림프절을 침범했을 때로 피부가 귤껍질처럼 변한다.

- 겨드랑이 림프절 멍울 : 겨드랑이에는 많은 림프절이 존재하지만 보통 림프절은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염증이나 외상, 암 등에 의해 림프절이 커지면 혹처럼 만져지기도 한다.

-기타 증상

유두의 습진, 요통, 체중감소 등 다양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증상별 환자수 비율>

통증이 없는 유방 종괴 - 18,973명/66.4%
통증이 있는 유방 종괴 - 2,201/7.7
무증상 - 2,264/7.9
유두 분비 - 1,318/4.6
유방 통증, 불편감 - 902/3.2
유두 함몰 - 779/2.7
겨드랑이 종괴 - 663/2.3
유방의 피부 변화 - 529/1.8
기타 - 963/3.4
합계 - 28,592명/100.0%

출처 - 한국중앙암등록사업, 2005.5
 
도표에서 보이듯 유방암 증상 중 7~80% 가까이가 유방에서 뭔가 만져져 알게 되고, 대부분 유방에서 다양한 형태의 징후를 보인다. 그에 반해 겨드랑에서만 증상을 발견하는 경우는 100중 3의 수치에 그치고 있어, 나 같은 상황이 드문 케이스다. 그러니 나의 병증이 간, 폐 같은 타 장기로까지 전이된 위중한 상태는 아니지만 희귀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방 초음파나 MRI에서 정상이라 하더라도 유방 절제술 후 잠재성 유방암이 44∼80%의 환자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이렇듯 유방 절제술 후 조직 검사에서 제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병적 징후가 없는 유방을 무작정 절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차 앞으로 만날 의료진을 믿어 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런 경우 환자들은 보통 제2기 유방암 환자들의 예후와 동일하다고 전해진다. 대개 치료는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술을 시행한 후, 다른 제2기 유방암 환자들과 유사하게 항암 화학요법과 유방에 방사선 치료를 시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나처럼 유방에서 병증을 확인하지 못하고 겨드랑이 전이암의 형태로 나타난 사례수가 많지 않고, 홍길동도 아니고 유방암을 유방암이라 부를 수 없는, 예측만 할 뿐이지 확실한 유방암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 장차 나의 치료 과정에서 발목을 잡는다.  

유방외과 예약으로 진통 끝

한편, 전이암이라는 최종 결과를 들은 날이 토요일이라 병원 측과 연락이 닿는 월요일 까진 시간이 까마득히 저 멀리 느껴졌다. 급한 마음에 유명 병원 두 군데 연락을 취했더니 주말 저녁이라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내 상황을 전해들은 친구는 일단 몇 군데 주요 병원 홈페이지에 인터넷 예약을 하라고 권유해 방문 기록을 남겼다.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수밖에, 그동안 산부인과 응급 수술, 외과 검진과 청천벽력 같은 결과로 인해 피로감이 몰려와 잠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부모님이 나타났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부모님 생각이 간절히 났을 정도로 내 심경이 비감했었던 것 같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휴대폰이 울렸다. 내가 남긴 번호로 S병원에서 확인 전화를 한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 홀로 외로이 외딴섬에 버려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는데, 내가 SOS를 친 것에 누군가가 응답을 해 오니 마치 어두운 망망대해 저 멀리 빛나는 등대의 불빛 같았다. 곧바로 내 몸의 나쁜 존재들을 모두 없애줄 것 같아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러나, S병원 상담자는 원발 불명 상태일 경우 교수진이 아닌 일반의사 진료 예약만 가능하다고 했다. 따라서 S병원은 일단 보류하고 결정을 못한 채 고민하고 있던 중, 다음날 월요일이 되자 병원 홈페이지에 남긴 나의 초진 예약 의사를 확인한 S대학병원 유방외과에서 연락이 왔다. 혹여 이곳에서도 나의 암세포 본적지가 불분명하여 거절당할까 봐 가슴 졸였는데, 다행히 겨드랑이 멍울만으로도 유방외과 교수진 의사의 진료가 가능했다.

어떤 질병이든 간에 모든 환자들이 완벽한 치료를 위해 최고 명의를 찾고자 고군분투한다. 병원 몇 군데 더 들러서 자신의 상태에 대한 치료방법을 비교, 확인 절차를 밟기도 한다. 인생의 매 순간이 마찬가지지만 이렇듯 치료 전 단계에서도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었다. 최종 병원과 주치의를 정하기까지 며칠간 숙고 후 마침내 S대학병원 유방외과 예약을 마쳤다. 그동안 조바심에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첫 진료 예약만으로도 치료가 반 이상 된 듯 심리적으로 진정이 되고 한시름 놓게 됐다.

드디어 2019년 6월 중순으로 첫 진료일이 잡혔다. 정면 돌파하지 못한 나의 소심함과 미련함으로 시간이 지체됐지만, 멍울 발견 후 4개월 만에 유방외과 전문의와의 만남이 정해진 것이다. 한시도 바쁜, 촌각을 다투는 응급 상황에서 느긋함인지 무모함인지, 하여튼 몇 달 동안의 방황과 진통은 끝나고 제 궤도로 진입했다. 그렇다고 과연 이게 끝일까. 장차 어떤 인생 여정이 기다릴지 알 수 없다. 이제 본 게임으로 들어가는,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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