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광해군 몰락의 주역 이이첨과 성난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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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광해군 몰락의 주역 이이첨과 성난 민심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5.02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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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뒤집을 수도 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영화 '광해'(사진 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사진 우) 사진제공=뉴시스
영화 '광해'(사진 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사진 우) 사진제공=뉴시스

이이첨은 광해군 몰락의 주역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광릉참봉이라는 말단 관리로 일하던 중 세조 능의 위패를 무사히 보전하는 공을 세워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이첨은 미천한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세자 광해군을 주군으로 삼았다. 

이이첨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를 선택했다. 대북파 영수 정인홍의 문하에 들어갔고, 허균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선조가 이이첨의 야망을 방해했다. 조일전쟁이 끝나자 선조가 후계 문제를 놓고 혼선을 자초했다. 전란 중에는 광해군을 세자로 내세워 자신의 안위를 도모했지만 전란이 끝나자 영창대군을 염두에 뒀다. 광해군도 속이 탔지만 대북파의 속은 뒤집어질 정도였다. 광해군 집권의 좌절은 곧 죽음을 뜻했다.

대북파는 광해군의 대권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덕분에 이이첨은 선조의 미움을 사 귀양을 떠나게 됐는데 갑자지 선조가 죽었다. 시중에는 이이첨이 선조를 독살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드디어 광해군의 시대가 열렸다. 또한 이이첨과 대북파의 천하도 함께 펼쳐진 셈이다. 권력 장악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반대파 숙청, 정치보복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이첨은 소북파 숙청을 단행했다.  

광해군 재위 시절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옥사’의 시대였다. 대북파에 맞서는 세력은 누구나 형장에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유영경 등도 유배 후 처형됐다. 

이이첨이 기획한 광란의 칼날은 왕족도 피해갈 수 없었다.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을 역모죄로 강화도에 위리안치시켰다가 사사(賜死)했다. 광해군의 조카인 진릉군도 바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권력의 비정함이 혈육의 정도 매정하게 끊었다. 

이이첨이 저지른 정치보복의 극치는 계축옥사다. 광해군의 최대 정적 영창대군이 최종타깃이었다. 이이첨은 1613년(광해군 5년) 서양갑과 박응서를 사주해 인목대비의 부친 김제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해 역모를 꾀했다는 자백을 유도했다.

이른바 계축옥사가 터졌다.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안치시킨 후 죽게 만들었다. 김제남도 사사했다. 부친과 자식을 잃은 인목대비가 恨을 품은 것은 당연지사. 이이첨은 1617년 정인홍과  폐모론 여론몰이에 나섰다. 결국 인목대비는 유폐됐다. 이이첨의 과잉충성이 빚은 비극이다. 민심은 돌아섰다.

이이첨의 광란의 정치보복은 인조반정의 빌미가 됐다. 서인은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서모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광해군을 패륜아로 몰아 반정의 구실로 삼았다. 민심은 서인을 지지했다. 이이첨은 반정 후 이천으로 도주했다가 체포돼 참형됐다, 정치보복의 화신이자 광해군의 사냥개였던 민심을 외면한 권력자 이이첨의 최후는 비참했다.

4·7 보궐선거는 민심의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썼다. 불과 일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은 지리멸렬한 야권을 심판해 여권에 180석의 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조국, 윤미향, 추미애 등 각종 의혹으로 시작해, LH 사태까지 겪으면서 이번 보궐선거는 집권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심을 읽고 새로운 국정 운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TK 출신 김부겸 전 의원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고, 비문계인 이철희 전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손꼽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군에서 낙마했다. 특히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척점에 섰던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낙마는 충격에 가까운 반전이라고 볼 수 있다.

민심을 항상 자기 편이라고 오판하는 자에게는 더욱 가혹한 심판을 받았다. 내년 대선에서 성난 민심이 어디로 향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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