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④] 유방외과 첫 진료, 대장정의 시작
[슬기로운 환자생활④] 유방외과 첫 진료, 대장정의 시작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5.0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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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두려움 속 주치의 만남
겨드랑이 림프 절제술 시행키로
암 타입 ‘삼중음성’…당황·착잡
유방암 가족력에 유전자 검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바야흐로 길고 긴 대장정이 시작됐다. 진격의 닻을 올린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가정법은 인생에서 별 의미와 소용이 없다. 하지만 언제든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처음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몇 개월, 급박한 현실에서 도망 다니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암 진단받고서는 곧바로 각성, 지금이 가장 빠른 시점이란 현실을 인지하고 서둘러 치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비록 애매모호한 검사 결과를 손에 쥐었지만, 암이란 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물망초. 어둠과 혼돈속에서 벗어나 희망과 기대감으로 암 치료를 향해 진격했다. ⓒ정명화
물망초. 어둠과 혼돈속에서 벗어나 희망과 기대감으로 암 치료를 향해 진격했다. ⓒ정명화

평정심을 되찾다

진단받기까지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헤맸다. 암 선고를 받은 후엔 한동안 답답하고 심란했는데, 머지않아 수용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거기엔 유방암을 앓은 친정엄마를 보며 겪은 간접 경험이 혹독한 예방주사로 작용한 측면이 있었다. 아직 나의 정확한 병기나 총체적인 전이상태가 나오지 않았지만, 엄마보단 병증 진행이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고 여러 여건이 낫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몇 년 전 친한 친구 두 명이 차례로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던지라, 암이 저 멀리 딴 세상에 있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닌, 누구든지 암환자가 될 수 있고, 그저 이제 내 차례구나 하며 거부감 없이 순응했다. 또 내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내공이 쌓여,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들이닥친 삶의 역경에도 비교적 의연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보통 ‘Why me’, 왜 하필 내가 암이 걸렸을까 하며 원망하고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생과 사를 가르는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그 어느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불안하고 우울하고 초조한 게 당연한 감정인데, 다행히 그런 불편한 심기가 날 짓눌러 괴롭힐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치료를 향한 첫 발자국을 내딛는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유방암 이야기’라는 네이버 유방암 환우 카페에 가입하여 자세한 치료과정 공부를 시작했다. 다양한 투병기가 올라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겨드랑이 림프 전이가 있는 경우 사이즈가 크면, 선 항암 즉 먼저 항암치료를 하고 암 사이즈를 줄인 후 수술할 것으로 예상됐다. 부작용이 심한 항암 치료라 걱정이 됐지만, 엄마 투병 시 항암 효과가 컸기에 나 역시도 약발이 잘 듣겠지 하는 기대가 날 안심시켰다. 

첫 진료, 두려움과 기대

먼저 유방외과 간호사실 안내에 따라 준비사항으로 진료의뢰서와 외부에서 찍은 각종 검사 자료를 다 챙겼다. 병적 상태를 나타내는 결과물을 신줏단지 모시듯 안고 항암 치료할 태세를 갖춘 채 주치의 만날 날을 기다렸다. 대부분 환자들이 의사와 대면 시 긴장하듯, 대기 중 나 역시도 첫 만남이라 유난히 떨렸다. 그리고 어떤 말이 오갈지, 어떤 치료가 진행될지 매우 궁금했고 주된 관심사였다.

담당 의사의 진료, 나를 치료해줄 거란 기대와 신뢰 그리고 두려움,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의 어둠과 혼돈 속에서 벗어나 희망을 안고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멍울을 발견하고 몇 개월을 방황하다 드디어 만난 자리였으니 긴장감과 설렘도 함께였다. 주치의는 먼저 나의 확실한 병소인 왼쪽 겨드랑이를 확인한 후,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 수술 먼저 한다고 치료 방향을 알려줬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항암치료가 아니라 수술 먼저 한다고? 그렇다면 일단 안심이 됐다. 환우 카페에서 환우들 얘기로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항암치료에 비하면 수술은 속된 말로 껌이라고 했다. 하긴 응급으로 복통, 요통에 시달렸지만 난소낭종 수술 후 컨디션이 다소 저하된 것 외엔  부대낌도 그다지 없이 회복도 빨랐다.

그 다음,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친정 엄마가 유방암이었다고 하자 유전자 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명료히 첫 진료가 끝났다. 이어 간호사 안내에 의하면 기존에 지방 병원에서 가져간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일부 검사 결과는 재 판독하고 검사 몇 가지 추가, 그리고 다음 진료에서 최종 검사 결과를 보고 차후 치료 스케줄이 정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관건은 유전자 검사였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브라카’라는 암 유전자 양성 판정을 받고, 양측 유방과 두 난소를 예방적 전 절제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알려져 유명한 일이다.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그리고 40세 이하 유방암 환자인 경우 유전자 검사는 거의 필수에 가깝게 권유한다. 그만큼 양성 확률이 높다. 첫 진료 후 바로 들어간 유전자 검사, 결과는 2개월 후에나 확인 가능했다.

두 번째 진료에서 검사 결과 전체를 살펴본 다음 7월 하순 수술 일정이 나왔다. 입원일은 바로 62세 내 생일날, 이틀 후 수술하기로 스케줄이 정해졌다. 8월 예정인 유전자 검사 결과는 겨드랑이 수술 후 알 수 있는 것이다. 겨드랑이 림프 절제술 먼저 하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가 양성인지 음성인지에 따라 나중에 추가 수술을 하거나 치료 방향 재설정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수술에 이어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진행될 거란 치료 개요를 알게 됐다.

삼중음성 암 타입 확인, 착잡

보통 환자들은 긴장하고 당황하여 짧은 주치의 면담에서 제대로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수동적으로 간단히 듣기만 하다가 진료실을 나오곤 한다. 진료실을 나오고 나서야 궁금한 것을 놓쳤다고 아쉬워하는데,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하얘서 멍하게 있다가 한 가지는 겨우 물었다.

“저기… 제 암 타입이 무엇인지요?”

“삼중음성이네요.”

주치의는 내 검사 자료가 입력된 모니터를 쭉 훑어보더니 담담히 답했다. 

“…그건 나쁜 거잖아요.”

“그렇죠….” 

암이 나쁜 것인데 거기다 내 암 타입이 더 나쁜 것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듯이 암에는 상대적으로 착하고 순한 암과 나쁜 암이 있다. 즉 공격적이냐 아니냐, 재발 전이율이 높은지 낮은 지를 가늠하는 기준에 따라 좌우된다. 병증의 진행을 나타내는 1, 2기 하는, 암 크기와 전이 정도에 따른 기수의 위험도와 함께, 암 타입에 따라 또 심각성의 정도가 달라지고 치료 방향이 정해진다.

유방암에는 암 타입이 크게 호르몬 수용체 양성과 음성으로, 그리고 허투 단백질 양성, 음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유방암 환자들이 해당되지 않았으면 하고 제일 기피, 두려워하는 암 타입이 삼중음성이다. 이는 호르몬 반응에 음성이고 허투 단백질에서도 음성으로 유방암중 전이 재발률이 높은 암 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치료법이 한계가 있는데 내가 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삼중음성 유방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가자면 영어로 Triple negative breast  cancer(TNBC)라고 불린다. 암세포가 호르몬 두 수용체(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에 발현하지 않는 음성, HER2 (유방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단백질)도 음성인 유방암이다. 국내 환자 중 약 10%가 삼중 음성 유방암으로 이 경우 호르몬 치료, 표적치료가 불가능하고 일반 항암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한다.

다른 성질의 유방암에 비해 공격적이고 치료가 어렵다고 평가받으나, 다행히 조기치료 시 완치가 가능하며 여타의 다른 암에 비해서도 치료가 잘되는 암이다. 그러나 타 장기로 전이된 경우는 완치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대개 계속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표적치료제도 없고 행동양식 자체가 공격적인 경우가 많아 예후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나의 암 타입이 삼중음성이라…. 가슴이 답답하고 착잡했다. 그 점은 지금도 신경이 쓰이는 지점이다. 환우 카페에 따로 삼중음성 밴드가 있을 정도로 유방암 중 구분되는 암 타입이다. 그래도 삼중음성 유방암은 항암치료 효과가 좋다는 점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장점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쪽으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무서운 가족력

한편, 모든 질병에서 가족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암 그것도 유방암은 가족력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엄마의 유방암 병력은 나와 절대적인 연관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장차 모든 치료를 주관할 주치의와의 진료를 끝내고 수술 스케줄 예약 후,  또 다른 상담사와 체크할 사항이 있었다.

그건 가족력에 대한 문제로 친외조부모님, 부모님부터 고모 이모 삼촌 그리고 사촌까지 암 병력을 가계도를 그려놓고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큰아버지 간암, 아버지 위암, 남동생 위암 그리고 엄마 유방암. 사촌 오빠와 사촌 동생의 암 병력까지 나열하면서 내가 암환자란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게 가족력의 사슬이었다. 유전성의 현안이 촉발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첫 진료부터 가족력이 주된 화두로 등장하면서, 20여 년 전 나와 비슷한 나이에 발병한 엄마의 유방암, 너무나 지난한 시간을 보냈던 그때가 떠올랐다. 정말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지만 20여 년 전 그때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내가 엄마의 발병을 알았을 때는 통증이 심할 정도로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유방암 4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충격 그 자체였다. 이를 어떻게 하나….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블랙홀 같은 깊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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