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남녀 갈등과 정치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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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남녀 갈등과 정치인의 역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5.08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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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갈등, 가부장 문화 부조리 드러내는 순기능…정치권, 악용 말고 조정해 발전 계기로 삼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남녀 갈등이 우리 사회 부조리를 개선하는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하려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뉴시스
남녀 갈등이 우리 사회 부조리를 개선하는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하려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뉴시스

전통적으로 인간은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조직 내부의 갈등은 구성원간의 조화를 방해하고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이상신호로 받아들여졌죠. 때문에 조직의 최대 목표는 갈등의 발생을 ‘막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갈등의 순기능에 주목합니다. 수많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의 발생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갈등이 전혀 없는 조직은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진 정태적(情態的) 조직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갈등을 적절히 분출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데 대다수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벌어지고 남녀 갈등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랜 기간 차별을 받아왔던 여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문화 탓에 정형화된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받았던 남성들이 불만을 분출하는 건 사회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남녀 갈등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지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국민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울 수밖에 없으니, 사회적 갈등을 갈무리해서 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죠.

그런데 남녀 갈등 이슈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 마치 ‘편 가르기’에 혈안이 된 듯한 모습입니다. 남녀를 갈라놓고 누구 편을 들어야 자신의 당선에 도움이 될지 계산하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집단의 목소리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듣고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기는커녕,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투사’처럼 싸우기에 바쁩니다. 갈등을 조정(調停)해야 할 정치인들이 도리어 갈등을 조장(助長)하는 꼴입니다.

갈등이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놓기 위해서는,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할 줄 아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 ‘누군가’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은 물론 정치인들이고요. 때문에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은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됩니다. 그 끝은 분열과 파탄일 테고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영·호남 갈등을 불러일으키자, 정치인들은 이를 해결하는 대신 이용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영·호남 지역감정은 ‘망국병(亡國病)’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 사회를 괴롭혔습니다. 만약 정치인들이 남녀 갈등을 사회의 모순을 표출하는 선에서 갈무리하지 않고 악용하는 길을 간다면, 이들은 지역감정 이상의 병폐를 생산한 역사의 죄인으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개혁가였던 제임스 클라크(James Freeman Clarke)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남녀 갈등 이슈를 대하는 이 시대의 정치인들이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말이 아닐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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