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박석무 “다산의 공정과 청렴, 일류 국가로 나아갈 방법”
[북악포럼] 박석무 “다산의 공정과 청렴, 일류 국가로 나아갈 방법”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5.26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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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81)〉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시사오늘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은 25일 ‘다산 정약용의 개혁사상’을 주제로 강연했다.ⓒ시사오늘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이 배고프지 않으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강하고 평화로운 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지금 대한민국의 고민인 동시에, 약 200년 전 조선의 고민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그 해답을 ‘공렴(公廉)’에서 찾았다. 공정과 청렴, 이 두 가지만 해결해도 일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다산의 사상을 연구해,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르침을 알리고 있다. 이에 <시사오늘>은 25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포럼을 찾은 박 이사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다. 강연 주제는 ‘다산 정약용의 개혁사상’이었다.

 

다산의 일생 4단계


박석무 이사장은 다산 정약용의 일생을 △성장기(~28세) △사환기(28~38세) △유배기(40~57세) △정리기(57~75세) 네 단계로 구분했다. 다산은 75세(1762~1836년)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을 포함한 500여 권이 넘는 저술과 27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다산은 28세에 문과 급제 후 10년 동안 벼슬을 지냈습니다. 18세기 조선 부흥기가 탄생한 시기였죠. 위대한 신하 다산과 위대한 군주 정조가 통치하던 이 시기는 그야말로 가장 찬란했습니다.

세 번째는 18년간의 유배 기간입니다. 39세 때 신유박해가 발생하면서 천주교 신자는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산은 당시 신자가 아니었으므로 죽일 방법이 없었고, 천주교를 선전했다는 죄목으로 귀향을 갔습니다. 이 시기는 유배기인 동시에 저술기입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 가장 많은 책을 남겼습니다. 인간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죠. 절망과 낙망 속에서,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다산은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은 18년간의 정리 기간입니다. 유배기 동안 탄생한 500여 권의 저서를 검토하고, 인생을 정리한 시기입니다.”

박 이사장은 다산의 일대기를 정리하며 ‘장수(長壽)’에 주목했다. 200년 전 기준으로 보면 75세의 일기는 평균 수명의 약 2배를 더 산 것이었다. 만약 다산이 당시 조선의 남자 수명 36~37세에 사망했더라면, 40세부터 유배지에서 탄생한 수많은 저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다산의 문제의식, 부패


다산 정약용의 사상은 ‘부패’에서 출발한다. 천하부이구(天下腐以久), ‘온 세상이 썩은 지 오래’라는 그의 탄식에서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따라서 그의 저서에는 국가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어떻게 부패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박 이사장은 부패를 막으려는 다산의 개혁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다산의 개혁 첫 번째는 ‘생각의 틀을 바꾸자’입니다. 그러면서 공자와 맹자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옛 것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가 아닙니다. 과거 더 개혁적이었던 사고 체계로 바꾸자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의 핵심인 인(仁)은 사람이 하는 일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주자학은 인을 사람의 이치(理)로 해석하며, 관념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글자 그대로 사람(人)이 둘(二)라고 해석하며, 실학적 관점에서 실천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렇듯 다산은 행위를 가미해 사고 체계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두 번째는 ‘법과 제도를 통해 안착시키자’입니다. 다산은 부패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변화가 필수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백성이 가난해서는 아무 변화도 없다고 봤습니다. 이에 마지막으로 ‘기술을 개혁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배고프지 않으려면 생산과 수확이 많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리가 기술의 근본이기 때문에 수학 공부를 강조했습니다.”

 

다산의 소망, ‘공렴’


그렇다면 다산 정약용이 꿈꾸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핵심은 ‘공렴(公廉)’에 있었다. 공정하고 청렴해야만 일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공정하지 못하고 청렴하지 않으면, 늘 약자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렴은 공직자들의 본질적인 의무입니다. 청렴하지 않은 자는 공직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공직에 올라야 나라다운 나라가 됩니다. 3대 개혁을 이뤄 부패에서 벗어나 공렴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 이것이 다산 정약용이 500여 권을 통해 강조한 내용인 동시에, 그가 꿈꾸던 조선의 모습이었습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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