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⑦] 암…주홍글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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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환자생활⑦] 암…주홍글씨인가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5.30 11: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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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발병 사실 초기 비밀로 부쳐
환우 카페 통해 동병상련 나눠
죄도 아닌데 대개 공개 망설여
편견과 이해 부족해 상처 받기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병은 자랑하고 널리 알려야 빨리 낫는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암 진단을 받은 후 몇 달 동안 남편 외에 한 친구에게만 상황을 알렸을 뿐, 나의 병적 현주소를 가족이나 친인척 특히 아이들에게는 일체 함구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심적으로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때 내가 극심한 갱년기 우울증을 앓았기에, 고생이 심했던 아이들에게 또 다시 불안감을 조성치 않으려는 마음이 앞섰다.

나는 치료의 선행조건이 신뢰할 만한 최고 의료진과 의학 정보, 신앙적 버팀목, 그리고 필요할 때 보호자가 있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행히 검진과 치료과정에 남편이 동행할 수 있는 여건이었고, 처음엔 충격을 받았어도 시간이 지나며 이겨낼 자신감과 의지가 넘쳐났다. 낙담해 주저앉아 있기 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정면 돌파하려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동지인 환우 카페 ‘유방암 이야기’

진단을 받고 회원 수 10만 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유방암 이야기’와 암 환우 카페에 가입했다. 비록 정확히 유방암이라는 진단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유방암일 확률이 높아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잠자는 시간외엔 거의 유방암 카페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며 환우들의 글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취합했다. 암 관련 서적, 환우 카페와 인터넷 자료를 샅샅이 뒤져 유방암을 집중적으로 공부해 가며 점점 메커니즘을 알게 되니, 암 진단으로 오는 막연한 불안감보다 편안해지고 냉정을 찾아갔다. 특히 환우 카페는 정보의 보고이자 동병상련의 전우애로 뭉쳐진 곳이라 무엇보다 든든한 보호벽이 됐다.

삶에의 열망은 무의식의 바닥 더 아래,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암 진단을 받은 어두운 현실이었지만, 환우들과 교감하며 혼자만의 문제에서 제삼자적 시점으로 바라보고 이성적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다.

암 환자들은 견고한 바위처럼 편견에 찬 현실의 벽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정명화
암 환자들은 견고한 바위처럼 편견에 찬 현실의 벽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정명화

암밍 아웃

‘암밍 아웃’이란 암환우들간의 용어가 있다. 이는 커밍아웃처럼 암환자임을 주변에 알린다는 의미로, 많은 환우들이 쉽게 암밍 아웃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족이나 주변에서 걱정할까 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다. 일반적인 질환은 스스럼없이 공개하게 마련이지만 유독 암 환자는 선뜻 주변에 알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환우 카페엔 암 투병 사실을 어느 선까지 공개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질의가 종종 올라온다. 수많은 댓글들이 공개를 비추천한다. 그건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내용을 알리면서 상처를 받은 경험들이 있어서였다. 그렇잖아도 이미 암 진단으로 예민한 환자들에게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배려심 부족한 한마디는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나마 가족들에겐 공개할 수밖에 없는데, 결혼한 환우나 혼자 독립해 사는 싱글들은 친정 부모님이 충격 받을까 봐 비밀로 부치는 경우가 많다. 시댁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상 며느리라는 자리가 복잡하고 어려운 위치라, 우호적이지 않은 다양한 반응과 직면하곤 해 알리지 않을 수 있다. 자녀들의 경우는 더욱 조심스럽다. 특히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환우들은 더 고민하게 된다.

투병기를 쓰는 문제도 처음엔 공개 여부를 놓고 고심이 깊었다. 가장 프라이빗한 문제를 대놓고 세상에 알려도 될까 하는 내적 갈등이 심했다. 장고 끝에 그 어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유의미하다고 판단해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좋은 추억거리도 아니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 복기하는 게 나에겐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컸다. 암이란 수술, 항암 그리고 방사선 치료까지 표준 치료가 일단락 지어져도 평생 관리해야 할 질병이라, 끝난 게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이젠 위기 상황은 넘겼으니 괜찮겠지 여겼는데 그건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마주하게 된 불편한 경험이 날 짓누르고, 고통의 교착상태에 빠져 착잡했던 심경을 재경험하곤 한다.

Why me

대다수의 암 환자는 진단 직후 “그럴 리가 없는데…”, “왜 하필 나야” 등의 첫 반응을 보인다.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으로 충격의 강도를 나타낸다. 임상종양학회지(JCO)에 실린 논문을 보면 환자, 가족의 정서적인 반응으로는 ‘참담함’이 가장 많았다. 이어 ‘우울과 슬픔’, ‘좌절감’, ‘상실감’ 등이 뒤를 이었다. 보편적으로 ‘왜 내가 암이 걸렸을까’ 하며 원망하고 좌절하는 게 당연한 감정이다.

그러한 충격과 참담함을 안고 환우 카페엔 다양한 투병기가 올라온다. 20대 미혼부터 임신부와 어린 자녀를 둔 30~40대, 그리고 50대 60대 심지어는 70대 고령층도. 어느 누군들 애석치 않은 사연이 있을까마는, 특히 젊은 엄마 환우들의 경우는 더 안타까워 ‘왜 그녀들에게’ 하는 탄식이 타인인 나조차도 절로 나온다.

그들의 애로사항에 비해 나는 자녀 양육의 부담도 없고 내 치료에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이라, 나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도리어 어린 자녀들을 둔 엄마 환우나 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엔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고 절로 눈가가 촉촉해진다. 영유아기 아이를 두고 세상을 하직한 환우의 비보가 가끔 올라오는데, 그런 날엔 카페가 온통 애도의 분위기로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홀로 남은 남편이 아이들을 양육하며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할 처지는 누구라도 통탄케 된다.

이렇듯 생과 사의 갈림길 위에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라도 살고 싶다는 절절한 바람과 외침들을 수시로 목격하곤 한다. 수많은 기막힌 인생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환우들끼리 응원하며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어려운 치료과정을 견뎌 나간다. 애석한 점은 병마와 싸우는 것 외에도 세상의 암환자에 대한 시각, 편견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암 진단, 죄가 아니다

암에 걸린 게 죄인가. 무슨 잘못이라고 세상의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받아야 하나. 암 환자들 앞엔 일부 견고한 바위 같은 냉정한 현실의 벽이 엄연히 존재한다.

대다수 환자는 암 진단과 동시에 가정생활,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일시 중단한다. 치료에 전념해 건강을 되찾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가 않아 좌절할 때가 많다. 우리 사회 제도와 분위기가 암 경험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인색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 보니 암 투병 사실이 꼬리표처럼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며 재취업 등 새 출발에 제동이 걸리곤 한다. 때론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거나 가정 파탄의 위기를 겪는 일도 생긴다.

환자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괴로운데, 사회의 벽과 싸워야 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인생은 누구나 유한하고, 암이라는 예상치 못한 질환 앞에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 말이다.

패싱 케어

그렇다고 굳건히 두터운 장막을 치고 웅크린 채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낼 게 아니라,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변에서도 잘못된 시각보다는 환자의 말과 심리 상태에 공감하는 태도가 스트레스 및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

암이 찾아오면 환자나 가족 모두 마음이 급해지고 이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암 치료 과정은 단 한 번 치료로 끝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치료가 끝난 후에도 암이 재발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나 불안으로 이후 생활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방암은 특히 10년 이상이 지나도 재발, 전이가 일어남에 평생 관리하며 긴 싸움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다려주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패싱 케어 (Passing care)라고 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힘든 사람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돌봄의 자세라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난관에 처한 환자들 스스로가 긍정적인 사고로 힘과 용기를 내야겠지만 주변에서도 지혜롭게 돕는 게 중요하다. 신앙적인 기도와 간구는 다른 형태의 고차원적 패싱 케어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여명을 앞둔 어둠이 가장 짙을 뿐이니 곧 빛이 서서히 스며들지 않을까.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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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2021-06-08 20:09:36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