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기린아 덫에 빠진 로베스피에르와 이준석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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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기린아 덫에 빠진 로베스피에르와 이준석 돌풍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5.30 17: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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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대표 되려면 ‘가상의 기린아’ 넘어 ‘시대의 기린아’ 돼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이준석이 국민이 원하는 제1야당 대표가 되고자 한다면 ‘정치 기린아’를 넘어 ‘시대의 기린아’가 돼야한다. 사진(좌) 프랑스 파리 개선문 사진(우)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사진제공=뉴시스
이준석이 국민이 원하는 제1야당 대표가 되고자 한다면 ‘정치 기린아’를 넘어 ‘시대의 기린아’가 돼야한다. 사진(좌) 프랑스 파리 개선문 사진(우)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사진제공=뉴시스

기린아(麒麟兒)는 머리가 총명하고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를 말한다. 동양에서는 봉황과 함께 기린이 출현하면 난세에 성왕(聖王)이 나올 길조로 반겼다. 지난해 일본에서 방영된 아케치 미츠히데의 일대기인 대하사극 ‘기린이 온다 (麒麟がくる)’도 전국시대의 난세를 평정할 기린을 고대하는 백성의 염원을 담았다.

하지만 역사 속 기린아들은 젊은 혈기에 국민과 시대가 요청하는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역사와 자신을 자해하는 과오를 저지르는 ‘기린아의 덫’에 빠지곤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근대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기린아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이다.

불과 31세 젊은 변호사에 불과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대혁명의 광풍이 불기 직전인 1789년 삼부회 의원에 당선됐다.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다. 라이벌 영국에 눌려 유렵의 영원한 2등국가 프랑스는 ‘구체제의 모순’이 곪아 터진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에게 혁명은 인생로또였다. 혁명이 터지자 자코뱅(Jacobins)당에 들어갔다. 자코뱅당은 프랑스 대혁명을 급진적으로 주도했던 정파다. 프랑스대혁명의 최대 실수인 ‘공포정치’는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이 만든 비극이었다.

당초 소수 민주파에 속해 있던 로베스피에르는 1791년 루이 16세의 망명미수사건이 터져 자코뱅당이 사실상 와해되연서 급부상한다. 위기에 빠진 혁명세력은 그를 파리코뮌의 대표로 추대했고, 국민공회에서는 1위로 당선됐다. 불과 34세의 나이에 프랑스 최대 정파의 지도자가 됐다. 국민은 젊은 지도자의 출현에 열광했고, 프랑스를 망친 구시대의 모순을 일소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로베스피에르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정치적 경륜이 너무 없었다. 국민의 염원을 잘못 해석했다. 프랑스 왕정 복고를 원하는 反혁명파의 숙청은 옳았지만, 동지인 당내 반대파를 혁명의 걸림돌로 여겨 공포정치를 추진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이끌던 산악파는 루이16세의 처형을 단행했다. 당내 반대파도 처절하게 제거했다. 젊은 혈기에 자신의 결단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의 앞길에 거칠 것이 없었다. 노장파를 구체제의 모순으로 여겼고, 무조건 단두대로 보냈다. 혁명파의 통합은 실종됐고, 분열과 증오만 증폭됐다.

프랑스 혁명 과정을 주시하던 영국과 프로이센과 같은 주변국들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혁명의 여파를 염려해 대(對)프랑스동맹을 결성했다. 특히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모국인 오스트리아는 처절한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 정치를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혁명자로 몰려 단두대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 국민이 원하던 혁명이 아니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혁명과 국민의 혁명은 전혀 달랐다.

결국 부르주아 공화파가 이끄는 반대세력의 반격을 받고, 자신이 애용하던 단두대에 의해 처형됐다. 불과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린아는 자신이 놓은 ‘기린아의 덫’에 빠져 자신의 명을 재촉한 셈이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혁명 이념을 실현시켜줄 지도자를 원했던 국민과 시대의 염원을 외면한 탓이다.

국민의힘에 ‘이준석 광풍’이 불고 있다. 미래통합당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불과 26세 나이였던 지난 2011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에 의해 전격 발탁돼 보수정치권의 기린아가 됐다.  하버드 출신에 벤처기업을 이끌던 이준석의 남다른 이력은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또한 보수 정치권에서 보기드문 20대 젊은 정치인의 출현에 열광했고, 그는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정치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자신을 발탁하고 총애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적극 주장했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유승민 전 의원을 쫓아 바른정당과 바른미래당을 전전하다 복당했다. 총선에서도 3차례나 낙선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10년의 정치경력에 의정생활은 전무하다. 20대에 정치를 시작했지만 구시대 정치인 못지않은 정치이력도 눈여겨 볼 만하다. 탈당과 복당, 3차례의 낙선 등등.

중고신인 이준석은 잦은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남다른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종종 톡톡 튀는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처신을 도마 위에 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준석에게 재도약의 기회가 왔다. 정권탈환이 지상목표인 국민의힘에게 새로운 선장이 필요한 시기다. 보수대통합을 통한 정권탈환에 성공할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할 당 대표를 선춯해야 하는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이 분 것이다. 경쟁자들은 그가 특정 정치인과의 친분 등을 이유로 공정한 대선경선 관리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그가 가진 청년과 개혁 이미지는 최근 문재인 정권에 실망해 4·7 선거 파란을 일으킨 2030세대의 표심을 가져와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보수 정치권의 열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권도 세대교체 돌풍이 자신들에게 여파를 미칠지 여부에 긴장하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36세 청년 제1야당 대표 출현 여부에 ‘기대 半, 우려 半’의 시각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준석이 제1야당 대표가 되고자 한다면 ‘가상의 기린아’를 넘어 ‘시대의 기린아’가 돼야 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대 사명을 외면한 로베스피에르가 빠진 ‘기린아의 덫’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이 원하는 당 대표를 해야 한다는 사명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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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펑펑 2021-05-30 20:19:43
의리도 정체성도 없는 자신 유리한 쪽으로만 옮겨 다니는 이준석이 당대표 대열에 있는 것만으로도 야당의 불명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