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⑧] 차가운 수술장으로
스크롤 이동 상태바
[슬기로운 환자생활⑧] 차가운 수술장으로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6.06 08:0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격 치료 시작 수술 카운트 다운
병원에서 이색적인 62세 생일 보내
비교적 담담하나 암수술 부담 느껴
조직 검사 결과 다른 암 발견, 멘붕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어떤 섭리가 작용한 것일까. 내 몸의 암이라는 존재,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런데 암 수술을 기다리며 이상하리만치 평강이 유지되는 나날이었다.

처음 거의 4cm에 가까운 겨드랑이 멍울을 발견하곤 5개월 만에 이뤄지는 수술이니, 그사이 종괴가 커질까 우려가 깊어질 수 있으나 심리적으로 거의 초월적인 상태였다. 되도록이면 유쾌한 기분을 유지하려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 등을 시청하며 박장대소하고, 내가 암환자임을 잊어버릴 만큼 평범한 일상을 누렸다.

나는 홀로 뚜벅뚜벅 길고 긴 미지의 길에 고독을 친구삼아 떠난 수도자 같았다. ⓒ정명화
나는 홀로 뚜벅뚜벅 길고 긴 미지의 길에 고독을 친구삼아 떠난 수도자 같았다. ⓒ정명화

준비는 철저하게 마음은 유쾌하게

일단 항암 치료보다 수술 먼저 한다니 비교적 느긋한 측면도 있었다. 가끔씩 다가오는 불안과 초조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수술 일정을 받아 들고 차분히 준비단계에 돌입했다. 환우 카페에는 입원 준비물을 검색하면 계절별로 조목조목 리스트가 올라와 있어 마련하는데 도움이 컸다.

입원 준비물 챙기는 일 외에 앞으로 수술하고 항암, 방사선 치료까지 치료기간이 길어지면 당분간 못 볼 손주들이 제일 보고 싶었다. 마침 큰며느리가 애들 하루 봐줄 수 있냐고 해서 기꺼이 수락했다. 곧 내 생일이라 미리 간단히 기념 파티까지 하며 예쁜 손주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며느리는 다음 주에도 봐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자식들한테 비밀로 부쳤던지라 정말 취소할 수 없는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그날은 어렵겠다며 피해 나갔다. 바로 내 수술날이었다.

7월 하순 생일이 입원일인 기막힌 타이밍, 거부할 수 없는 일정에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씩씩하게 준비물을 가득 담은 캐리어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던 중 둘째 네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일 축하하며 선선해지면 자리를 마련하겠다’라고, 난 ‘전화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혹시라도 애들이 알게 될까 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마치 완전 범죄가 성공한 것 같은 쾌감에 야호 하면서 말이다.

수술 전야제

입원 수속 후 수술 이틀 전이라 간단한 검사 외에 시간이 여유로웠다. 지금 같은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기에, 연락 가능한 휴대폰을 소지하고 수시로 자유로운 주변 산책이 가능해, 환자복을 입은 채 남편과 병원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무더운 여름밤의 열기 속에서 간간히 부는 산들바람과 함께 길거리 소공연과 음악회를 관람하며 인상적이고 이색적인 62세 생일 밤을 보냈다.

겨드랑이 림프 절제술을 앞두고 있었지만 뇌수술까지 받은 엄마의 투병과정을 지켜봤기에 비교적 가볍게 다가왔다. 또 유방암 환자들은 유방 전절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부분절제라 상대적으로 심적 부담이 덜했다. 그러나 수술 당일  순서가 다가오고 수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평정심이 깨졌다. 부위가 크고 작든 간에 암 수술은 암 수술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10여년 된 입안 멍울이 있어서, 두 번째 진료 때 같이 수술해달라고 유방외과 주치의한테 요청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이비인후과 협진을 의뢰해 진료랑 CT를 찍고 양측 의료진이 수술 일정을 조율, 겨드랑이에 이어 입안 혹까지 한 수술대에서 제거하기로 예정되었다.

S대학병원은 병실 구조상 입원실 별관에서 본관 수술장까지 거리가 먼데, 직원이 끄는 휠체어를 타고 머리엔 수술용 캡을 쓴 채 이동한다. 수술한다는 걸 공공연히 알리듯 일반인들과 외래 환자들 속을 누비며 지나는데 그 과정이 곤혹스럽다. 지금처럼 마스크가 상용화된 것도 아니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어도 통과하는 시간이 짧지만 길게 느껴졌다.

수술실 입구엔 다른 수술 환자들도 대기하고, 보호자들은 문밖에서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 차례가 되자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숨 천천히 들이쉬세요’ 하는 마취과 의사의 육성을 끝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회복실에서 깨어났다. ‘진통제 놔줘요!’ 하는 절규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두어 번 진통제를 투여 받곤 웬만큼 참을 수 있는 상태라 조금씩 움직이며 일주일가량 머물렀다. 유명 종합병원은 병실이 부족해 최소한의 처치가 끝나면 바로 퇴원시킨다.

십 년 된 입안 혹, 너마저 암이라니

퇴원 후 첫 외래는 수술 경과와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다. 나의 유방외과 주치의, 몇 번 진료를 받아보니 특징이 있었다. 아주 담담하고 차분히 환자를 응대하는 스타일이다. 최대한 자극을 하지 않으려는 듯, 특유의 인토네이션이 거의 없는 억양과 간단명료한 팩트 전달. 심각한 사안도 별일 아닌 듯 부담스럽지 않게 느끼도록 한다.

나는 수술 후 총체적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니 더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겨드랑이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흠…”

모니터를 자세히 보며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를 살피던 주치의, 어느 한곳에 시선이 고정되며 살짝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이비인후과에서 수술한 입안 혹도 암이네요….”

“그런데 겨드랑이 전이암과 비교해보니 전혀 다른 조직입니다.”

“네??? 아이고 머리 아파라.”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오래된 녀석도 암이라니 다시 한 번 멘붕에 빠졌다. 10여 년 전 입안 볼 쪽에 뭔가가 만져져 치과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침샘이 막혀서 생긴 혹인데 굳이 제거를 안 해도 괜찮겠다는 의료진의 판단이라, 그대로 뒀더니 언젠가부터 악성으로 변한 것이다. 결국 오진에 가까운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이에 의한 것이 아닌 원발암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전혀 예상 밖의 소식에 한 여름 내 마음에 찬 서리가 내렸다.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할까, 예기치 못한 결과는 날 다시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시 수술대에 올라

유방외과 주치의 진료이후 만난 이비인후과 의사는

“그 입안 혹이 암입니다…. 그런데… 절제 라인에 암세포가 발견됐어요.”

“그건 또 뭔가요? 그럼요?”

"회의 후 어떻게 할지 알려드릴게요."

일주일 후 다시 진행된 이비인후과 진료에서

“협의 결과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으나 환자가 원한다면 추가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암 종양과 조직 주변을 넓게 절제하는데, 처음 입안 혹 같은 경우는 양성으로 추정하고 갑작스레 진행되어 조직 검사 없이 멍울 제거에만 치중해 나타난 결과였다. 결국 난 수술 절단면 암세포 제거를 위해 이번엔 부분 마취로 다시 수술대로 올라갔다.

다행히 조직검사에서 더 이상 암세포가 나오지 않아, 이비인후과 주치의는 앞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낙관적인 예후를 전망했다. 하여튼 얼마나 아찔했던지, 이제라도 수술을 같이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양성이라 여겨 그대로 두어 나중에 전이됐더라면, 그땐 정말 대책이 안 서고 상당히 심각해진다.

따라서 다른 추가 치료 없이 정기검진만 하는 된다는 처방을 받았다. 인터넷에 집중 검색해보니 전이 없는 두경부암인 경우, 멍울만 확실히 제거하고 나면 차후 전이 확률은 매우 낮아 생명에 크게 지장이 없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다만 전이된 경우 수술도 매우 복잡하고 방사선과 항암 치료가 계속되며 심지어 미래를 장담키 어려운 사태와 직면할 수 있다.

잠재성 유방암과 침샘암

두경부암은 뇌와 안구에 발생하는 종양을 제외하고, 얼굴, 코, 목, 입안, 후두, 인두, 침샘 및 갑상선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을 말한다. 두경부암 중 구강에 생기는 암을 구강암, 소리를 내는 기관인 후두에 생기는 암을 후두암이라고 하며, 인두에 생기는 암을 인두암이라고 한다. 갑상선암은 포괄적 의미의 두경부암에 포함된다.

암환자들은 치료중이거나 이후 정밀 검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므로 종종 다른 암을 조기 발견하곤 한다. 유방암 정기 검사 중 난소암을 발견한다든지, 환우 카페엔 유방암 외에 갑상선암과 폐암이나 신장암 등 중복암 환자도 제법 눈에 띈다. 하지만 나 역시 두 개의 중복 암환자라니…. 어찌 이럴 수가 싶었다. 그저 내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심각성을 완화시키며 셀프컨트롤 중이다.

‘코리안 갓 탤런트’ 준우승자 최성봉이 대장암 3기와 전립선암, 갑상선 저하증 및 갑상선암 진단으로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수차례 수술을 받았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 소식에 안타까우면서도 나보다 더 심각한 사례를 보게 되면 인간은 위안을 갖는다. 행불행을 느끼는 것도 상대적이고, 자신 앞에 놓인 난관도 상대적 강도에 따라 수용하고 자위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본성 같다.

이렇게 나는 유방외과 외에 이비인후과 진료가 추가됐다. 둘 다 암 환자로 말이다. 새로운 암이 다행히 전이 없이 상태가 나쁘지 않다니 또 다른 어퍼컷에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한번 강펀치를 맞은 후라 두 번째는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맷집이 두둑해진 건지 차츰 둔감해져 갔다.

이게 끝이겠지, 더 이상의 충격적인 반전은 없기를 기원하며 매일 최선을 다하여 지냈다. 홀로 뚜벅뚜벅 길고 긴 미지의 길에 고독을 친구삼아 떠난 수도자 같다고 할까.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선현의 명언을 되새기며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Light 2021-06-08 11:27:12
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