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장경태 “청년정치 시작, 평당원 출신 최초 국회의원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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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포럼] 장경태 “청년정치 시작, 평당원 출신 최초 국회의원 돼”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1.06.10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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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83)〉장경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저처럼 ‘빽’없고 돈 없는 청년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이 자리 서”
“청년 후보들과 경쟁하고 싶지는 않아…지역구 출마 後 당선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국회의원은 평당원 출신 최초 국회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시사오늘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국회의원은 평당원 출신 최초 국회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시사오늘

국민대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은 8일부로 종강을 맞았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사회를 보는 서정도 교수가 본관 학술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오늘은 1학기 종강입니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첫 강의부터 남북 및 한미 외교 관계, 독일 정치, 다산 정약용의 정치 등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연사를 모셨습니다. 마지막 강의는 청년 정치를 준비했습니다. 지금 현재 청년 정치의 돌풍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년 정치를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을 모시겠습니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1983년생으로 올해 39세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30대 첫 국회원이 됐다. 

“강의라기보다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뭘 했는지, 저처럼 돈 없고 ‘빽’없이 정치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희망을 놓지 말기를 바라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1. 청년 정치 입문


장경태 의원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당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시사오늘
장경태 의원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당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시사오늘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처음 정치를 하게 된 시점부터 얘기했다. “저는 전남 순천이 고향이고, 서울 시립대를 나왔습니다. 총학생회장도 하고,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 매니패스토 청년협 대표 등을 맡았습니다. 정치는 2006년 혈혈단신으로 대학생 자원봉사단부터 시작했습니다.(서울시장 선거에서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를 도왔다)”

대학은 가세가 기울어 늦게 입학한 경우였다. 막노동을 통해 등록금을 모았다. 하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 알바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저는 대학생이라는 정체성보다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정체성이 더 컸습니다. 하루 3시간 수업을 들으면 아르바이트는 8시간 일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 시간이 더 길다 보니까 대학을 위해 알바를 하는 건지 알바를 하기 위해 대학을 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대학생보단 아르바이트생 정체성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당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5년 서울시당 대변인을 할 때는 “용산 미군기지 탄저균 비판, 메르스 당시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많은 논평을 쓴 기억이 난다”고 한다. 정책엑스포 활동을 거쳐 2016년에는 총선에 첫 도전했다. 청년 부문 경선에서 남자 1위로 통과되면서 비례대표 후순위에 배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 열심히 전국 유세 지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 최고위원 출마, 대통령 선거 지원, 청년정책연구소 부소장, 정발전위원회 활동 등을 두루 거쳤다. 2018년에는 첫 원외 30대 전국 청년위원장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 활동을 계기로 다시금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기회가 주어졌지만, 장 의원은 또 한 번 고사하게 된다. 

“많은 분이 제가 청년위원장이니, 당연히 청년비례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거라고 했지만 저는 청년위원장으로서 다른 청년 후보들과 경쟁하는 것에 굉장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물론 더 유리하긴 하지만, 세대 내 청년들과 경쟁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정에 이르렀지요. 덕분에 우리 당에 90년대 생 최연소 청년비례대표가 나올 수 있게 되었지요.”

대신 장 의원은 지역구 출마로 선회했다. 그 결과 21대 총선서 동대문을에 출마해 오랜만에 30대의 나이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2. 인내와 성공


장경태 의원은 30대 동대문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초선으로서 청년 주거 사다리법 등에 주력 중이다.ⓒ시사오늘
장경태 의원은 30대 동대문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초선으로서 청년 주거 사다리법 등에 주력 중이다.ⓒ시사오늘

“성공은 무엇일까요. 실패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 경우는 성공하고 싶은데 딱히 제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일 당장 뭘 해야 하나, 막막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남들과 경쟁해서 넘버원이 된 적이 없습니다. 10대, 20대 때는 항상 패배, 실패의 길을 걸었습니다.”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은 뚜렷했던 듯하다.

“비록 남들과 경쟁해서 넘버원은 되지 못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은 온리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하다보면 언젠가 온리원이 될 수 있다, 논술강사, 중앙일보 대학생 기자 활동, 국회 인턴, PD 등을 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거쳤습니다. 나중에는 이 모든 경험들이 선거 기획, 정치기사를 볼 때의 안목 등 훌륭한 자산이 돼줬습니다. 인생에 불필요한 경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를 표현하는 대표 수식어가 있다. 평당원 출신의 최초 국회의원. “아무도 못 알아보는 밑바닥부터 인내를 갖고 올라온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런 저를 보고 여러분 중 누군가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 장 의원은 청년 정치인으로서 청년과 여성 정치인 발굴 등 청년정치 사다리법, 무주택 청년을 위한 청년 주거 사다리법 등 입법 활동에 적극 나서는 중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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