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세종의 집현전과 여의도연구원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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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세종의 집현전과 여의도연구원 개혁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6.27 17:0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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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없는 정권교체는 허상일 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인재 없는 정권교체는 허상일 뿐 사진제공=뉴시스
인재 없는 정권교체는 허상일 뿐 사진제공=뉴시스

집현전(集賢殿)은 한민족 최고의 군주 세종의 싱크탱크다. 세종은 집현전을 인재양성과 학문연구의 메카로 삼았다. 세종의 치세는 집현전을 통해 구상됐고, 실현됐다. 세종이 집현전이였고, 집현전이 세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조부 태조는 역성혁명으로, 부친 태종은 왕자의 난으로 조선의 지식인들과 대척점에 섰다. 물론 정도전, 하륜과 같은 혁명파 사대부들이 동참했지만 정몽주, 이색과 같은 주류 지식인의 외면을 당했다. 하지만 세종은 집현전을 적극 활용해 재야에 흩어진 인재들의 동참과 지지를 얻어 태종의 유혈통치를 마감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왕과 세자가 유교적 학식과 교양을 기본으로 갖추지 못하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경연과 서연을 중요시했다. 집현전은 군주와 예비군주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다.

집현전은 왕과 세자의 성리학 교육을 제1의 업무로 삼았다. 즉 경연과 서연을 활성화했다, 경연은 왕을. 서연은 세자를 대상으로 경서와 사서를 강론해 성리학적 군주로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원래 집현전은 고려 때부터 존재했던 기관인데 태조 이성계는 이를 존치했고, 세종이 확대해 싱크탱크로 적극 활용했다. 역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대제학과 부제학 등이 집현전의 직제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조선을 넘어 한민족의 문화 황금기를 펼쳤다. 한민족의 최대 자랑인 훈민정음의 산실이 집현전이다. 또한 대표적인 편찬사업으로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고려사(高麗史)>, <농사직설(農事直說)>,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삼강행실(三綱行實)> 등이 있다. 조선이 문화국가로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집현전이 그 중심에 있었다. 

집현전 학사는 세종의 총애를 받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다. 조선의 인재들은 누구나 집현전에 들어가길 원했다. 정인지, 신숙주, 성상문, 박팽년, 최항 등 당대의 인재들은 모두 집현전을 거쳤다. 후일 이들은 세조의 계유정란을 계기로 ‘동지에서 적’이 되는 역사의 소용돌이의 희생양이 된다.

임금의 총애는 곧 권력을 뜻한다. 집현전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특히 세종 말년 후일 문종이 되는 세자가 섭정을 시작하면서 정치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이 고기를 맛보기 시작한 셈이다.

문종이 단명하고 단종이 즉위하자 조선은 정치적 격동기가 시작됐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 등 세력가들의 각축전이 펼쳐졌고, 집현전 학자들도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다. 특히 정인지와 신숙주는 수양대군을 적극 지지해 계유정란의 주축세력이 됐다,

결국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집권했다. 성상문, 박팽년 같은 양심있는 집현전 학사들은 이를 용서치 않았고, 세조를 암살하는 단종복위운동에 나섰다가 사육신이 된다. 역사는 이들의 충절은 인정했지만, 단종복위는 허용치 않았다. 역사의 흐름을 뒤집기에는 부족했다고 할까?

<세조실록> 2년 6월 6일 기사에 따르면, “(세조가) 명하기를, 집현전(集賢殿)을 파하고, 경연(經筵)을 정지하며, 거기에 소장했던 서책은 모두 예문관(藝文館)에서 관장하게 하라”고 전한다.

집현전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세종과 함께 한글을 창제하며 찬란한 한민족의 문화를 꽃피웠던 집현전은 정치적 격동기의 희생양이 됐다. 군주와 인재양성과 학문연구라는 기본 업무를 저버리고 정치게임에 개입한 결과로 해석된다.

여의도연구원은 국민의힘의 싱크탱크다, 국내 최초의 정당 정책 연구원이기도 하다. 지난 1995년 문을 연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26년 간 대한민국 보수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두 차례의 이회창 낙선과 박 대통령 탄핵과 4연속 전국단위 선거 패배 등의 부끄러운 역사도 함께했다. 최근엔 존재감이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보수 정당 최초의 30대 당수 이준석 체제가 출범했다. 취임 초, 광주와 봉하마을 방문, 당 대변인 배틀경연 등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벤트로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2030세대의 국민의힘 입당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꼰대 정당’의 대명사 국민의힘으로선 빅뉴스가 아닐 수 었다, 이준석 대표의 오랜 예능 출연으로 축적된 팬심 자극 노하우가 주효했다고 분석도 있다.

하지만 보수 지지층이 이준석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닥치고 정권교체’다. 의정경험이 없던, 가벼운 언동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던,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필승의 대선후보를 만들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의 집현전’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최초의 정당 정책 연구원인 여의도연구원을 ‘정권교체의 인재 산실’로 개혁해야 한다. 

세종이 조선의 인재 산실 집현전을 키워 선대의 유혈통치를 마감하고 새로운 조선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듯이, ‘닥치고 정권교체’라는 보수지지층의 숙원을 실현할 인재의 산실 여의도연구원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인재 없는 정권교체는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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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6-28 00:12:22
무속은 은.주시대 始原유교의 하늘숭배,산천숭배,조상숭배, 주역(점)등에서 파생된 유교의 지류.
역사적 순서로 보면 황하문명에서 은.주시대의 시원유교[始原유교:공자님 이전 하느님(天)과 여러 神明을 숭배]에서, 한국 고조선의 기자조선으로 始原유교유입, 기자조선(始原유교) 마지막왕 기준의 후손이 삼한건설, 삼한(始原유교)의 영토에서 백제(마한).가야(변한).신라(진한)가 성립됨.@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

윤진한 2021-06-28 00:13:00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

윤진한 2021-06-28 00:13:33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