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⑪] 탈모와 부작용의 향연, 험난한 항암산
스크롤 이동 상태바
[슬기로운 환자생활⑪] 탈모와 부작용의 향연, 험난한 항암산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6.27 17: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고 긴 6개월의 항암 일정
케모 포트 시술로 항암 준비
구토, 구내염과 탈모 이어져
육신의 황폐화와 정신 투쟁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때는 바야흐로 포도 익는 계절을 지나더니, 농촌 들녘엔 벼이삭이 누렇게 물들어가고 풍성한 결실과 수확을 이루는 시간이 도래했다. 그렇게 바깥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며 평화로워 보였는데, 난 마치 사형수가 마지막 날을 받아 놓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장수가 전쟁터로 나가듯 결연히 항암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나의 항암 스케줄은 먼저 흔히 AC라 부르는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adriamycin)' 3주에 한 번씩 6회 차, 이어 '파클리탁셀(paclitaxel)' 매주 12회 차, 6개월의 일정이었다. 종양내과 측은 내가 적은 나이가 아니나 '삼중음성, 브라카 2 변이'라는 재발 전이율이 높은, 암세포가 활동하기 좋은 상황이기에 회차나 용량에서 강한 처방을 내렸다. 암세포 박멸이라는 기치하에 짜인 종양내과 주치의의 처방을 믿고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자비하며 고약하다고 알려진, 그러나 우군인 항암제에 나의 미래를 맡겼다.

앙상한 가지처럼 내 육신이 황폐해져갔다. ⓒ정명화
앙상한 가지처럼 내 육신이 황폐해져갔다. ⓒ정명화

악명 높은 빨간 약 아드리아마이신

항암제 맞기 전 1차적으로 카테터를 오른쪽 가슴 위에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다. 말하자면 가슴 위를 일부 절개해 관을 삽입한 후 다시 봉합하는 절차다. 여러 중심정맥 카테터 (Central Venous Catheter)중 하나인 케모포트(Chemoport)를 심는데 정맥을 통하여 심장 가까이의 굵은 혈관까지 삽입한 후 정맥으로 항암제를 투여하는 수단이다. 그러면 주기적인 항암제 투여, 수혈, 채혈, 약물 주입을 위해 사용되며 팔이나 다리에 따로 주사를 꽂을 필요가 없다. 또한 몸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다. 

이러한 항암 준비 절차가 끝나고 내가 먼저 맞게 되는 항암제 AC, 주사액의 빛깔이 붉어서 흔히 유방암 환자들에게  '공포의 빨간 약'이라 불린다. 일단 1시간 전 부작용 방지제를 먼저 먹고 나면 케모포트를 통해 AC가 투입된다. 침상에 누워 긴장한 채 수액이랑 항암제가 든 약병을 올려다보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약물 투여 바로 시작 전부터 다 맞을 때까지 얼음을 입에 물고 수시로 생수를 들이켰다. 

환우 카페에서 익힌 나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팁이 주사 맞는 동안 얼음을 물고 있어야 구내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안이 헐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므로 초창기부터 완벽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게 구내염 예방을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와 함께 최대한 생수 많이 마시기는 몸속에 들어간 항암제의 독성을 몸 밖으로 최대한 빨리 배출하기 위해서다. 주사를 맞은 후 하루 이틀 동안은 소변이 붉은색을 띤다.
 
본격적인 구토로 괴로움 최강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의 대표적 부작용은 구토, 구내염과 탈모로 그 중 구토는 개인차가 심하다. 비교적 무난히 넘기는 환자들도 있지만 임신 중 입덧이 심했던 난 일찍이 이 부분에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환우 카페에서 예습한 대로 케모포트를 통해 AC가 체내 정맥으로 투입되자, 약 냄새가 올라오고 난 즉각적으로 오심이 느껴졌다. 2시간 정도 항암제 투여후 더욱 속이 부글거리며 메스꺼웠다.

구강 가글제와 변비 설사약 그리고 구토 방지제까지 부작용 방지약을 한가득 받아 들고 귀갓길에 올랐다. 경우가 다를 수도 있지만 보통 당일 주사실에 입원하여 주사를 다 맞으면 바로 퇴원한다. 그런데 병원으로 멀쩡하게 걸어 들어갔지만 주사 후 기운이 빠지더니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부대꼈다. 휘청거리다 못해 급기야는 도로에 주저앉아 극심한 메스꺼움과 함께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는 식은 땀을 계속 흘리며 밤새 시달리고 뒤척이다 보니 잠들기도 어려웠고, 부작용과 본격적인 사투가 벌어졌다. 멀미나 입덧하듯이 바가지를 곁에 두고 수시로 토악질을 해댔다. 그렇게 처음부터 AC는 날 완전히 정복했다. 처절한 몸부림과 함께 앙상한 가지처럼 내 육신이 황폐해져 갔다.

갈증이 심했고 처음 며칠은 거의 드러누워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라 겨우 생수만 수시로 마시다가, 다만 뭐라도 먹어야 싸워 이겨낼 수 있기에 미리 준비해놓은 물김치와 전복죽으로 조금씩 요기하며 까부라진 채 며칠을 보냈다. 속이 불편해 잘 먹을 수 없어도 다음 회차 항암 치료를 진행하려면 단백질 섭취를 통해 면역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나마 조금씩 죽으로 연명했다. 조금 나아질 때는 추어탕을 먹으며 원기회복을 하려 애썼다.   

예외 없는 탈모 진행

열흘이 지나면서 구토는 오락가락하며 잦아 들기는 했으나 오심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수시로 내 속을 할퀴었다. 설사는 당연한 과정인 듯 연일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변비로 돌아서서 또 괴롭혔다. 여기에 구내염이 슬슬 시작해 탄튬 가글과 함께 미리 준비해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입안에 뿌리니 조금씩 가라앉았다. 구내염 대처를 위해 탄튬 가글이나 죽염 가글, 플로폴리스 치약과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는 강추하는 준비물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 사이 2주 정도 지나면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100% 탈모가 시작된다는 환우 카페 정보를 통해 각오를 단단히 했다. 다른 부작용은 개인차가 있으나 AC를 맞은 환자들에게 탈모는 예외가 없다. 보통 탈모가 시작되면 머리가 아프다고 미리 아예 삭발을 한다는데 난 자신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당하리라 싶어서 지켜봤더니 13일째부터 모발이 빠지기 시작해 비닐봉지에 조금씩 쓸어 담기 시작했고 14일째는 아예 덤성덤성 손에 잡히더니 15일이 지나고 나자 가차없이 다 빠졌다.  

조금도 어긋나지 않은 냉정한 항암제 AC의 탈모 공격으로 내 머리는 완전히 민머리가 되었다. 비구니 승려들보다 못하게 아예 모발 모근 조차 찾아볼 수 없어져 난 무척이나 초라한 상태가 됐다.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시 삭발까지 하며 인권 탄압했던, 당장 역사의 기록 속에서 본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나 자신의 당면한 현실이 참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이에 실루엣만 스칠 뿐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미루어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미리 준비해놓은 천 모자를 썼고, 외출 시엔 가발을 뒤집어쓰고 또 모자를 써서 위장했다. 구토의 신체적 고통과 탈모의 정신적 시각적 충격, 어느 하나 밀리지 않는 항암제 AC의 활동은 그토록 위압적이었다.   

이성의 끈을 붙들고 

긍정의 극강을 달리며 자신을 추스르고 잘 버텨 왔지만 나라고 독불장군인가. 그 당시 '견뎌야 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감정선을 억누른 채 오로지 이성으로만 버텼으나, 덤성덤성 빠진 머리털을 손에 쥐고 민들거리는 두피를 만졌을 때 오는 촉각 앞에선 참담했다. 

한차례 폭풍을 겪고 지나간 지금도 악몽 같던 경험과 기억이 날 때린다. 그 시간을 돌아보는 이 순간 내 가슴속 깊이 쌓여있던 잔잔한 설움이 솟아나 울컥 울음이 터진다. 비통한 감정을 억압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탈모의 반란엔 속절없이 무너졌다.

2주 지나고 3주 차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움직이며 걸으니 어지럽기도 했고 땅에 발을 내디딜 땐 다리가 후들거려 휘청휘청 허공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삶의 연륜이 있어서일까. 지난 어려운 여정을 걸으며 온갖 풍파를 겪어서인지 몸은 말을 안 들어도 위기 상황에서 더욱 차분해지고 전투력이 최고조였다.

암세포와 투쟁에서 그리고 항암제 부작용의 늪에서 이겨내리라 하며 정신승리를 외쳤다. 비록 내 몸은 항암제에 내맡겼지만 최대한 감정적 소용돌이는 배제한 채 냉정하게 이 고약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첫 항암을 치르며 다양한 부작용을 겪는 이 낯설은 상황을 오롯이 받아내고 견뎠다. 몸은 천근만근, 삭발보다 더한 내 머리 상태에 점점 초연해져 갔다.

그런데, 모자나 가발로 머리를 커버하고 보니 눈썹 문신한 자국도 사라지고 있었다. 눈썹이 다 빠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느새 문신 자국마저 없어져 머리칼 없는 모나리자처럼 보였다. 상상해 보라, 그 얼마나 해괴한 모습일지. 무심코 스치는 거울 속 나는 누구인지, 낯선 이방인 같은 내 모습과 현실 앞에 또다시 낙담했다. 이제 시작인데 종착지까지 다음 해 봄은 멀게만 느껴졌다.

9월에 시작한 항암 치료는 다음 해 3월에 가서야만 끝이 나는데 이 혹독한 시간이 지나기는 하는 걸까. 길고도 긴, 까마득한 항암산을 무사히 오를 수 있을까. 자고 일어나면 타임 워프를 하여 내년 3월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 불가능한 꿈을 꿔보기도 했지만 오롯이 나 혼자 겪어 내야 할 과제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 몸에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