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 후퇴가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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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이재명의 기본소득 공약 후퇴가 반가운 이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7.10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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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필요했지만 현실화 어려워…의견 바꾸는 것도 용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 공약을 뒤로 밀어놓고 성장 정책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 공약을 뒤로 밀어놓고 성장 정책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한발 물러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 지사는 예비 경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간판 정책’인 기본소득을 뒤로 밀어놓고 ‘성장’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소득이 이 지사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모험적인 결정입니다.

이 지사의 ‘우선순위 변경’에, 경쟁 후보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습니다. 박용진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흉볼 거 없다. 그 양반은 한 말이 없지, 한 말을 뒤집은 적은 없다”며 “이 지사는 했던 말을 뒤집으니까 국민들이 할 말이 없다”고 비판했고,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모두가 이 지사 대표 공약을 기본소득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흔들리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윤 전 총장 사례를 보면서, 이 지사와 겹쳐서 생각하게 되는 당원들이 많다”며 “기본소득에 대한 오락가락, 그리고 일부 도덕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 역시 “이 지사는 우리 당의 큰 자산인데, 기본소득에 대해 흔들리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굉장히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가세했습니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공약 후퇴를 ‘말 바꾸기’로 규정하며 공세에 나선 겁니다.

그러나 기자는 오히려 이 지사의 정책 순위 변경이 반갑습니다. 사실 기본소득은 정치권에서 한 번쯤은 이야기해봐야 했던 주제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생산과 소비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반드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었죠.

하지만 한편으로 기본소득 도입은 시기상조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 지사는 증세 없이도 1인당 연 50만 원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월 4만 원이 겨우 넘는 금액입니다. 기본소득의 취지를 전혀 살릴 수 없는 액수죠. 게다가 이 지사가 제시한 장기 목표대로 월 50만 원을 지급하려면 무려 30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시행하는 건 의미가 없고, 장기적으로는 언제쯤 가능할지 가늠이 안 되는 정책인 셈입니다.

때문에 기자는 이 지사가 기본소득을 밀어붙이지 않고 한 발 후퇴한 건 책임 있는 정치인이 보여야 할 자세였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화두를 던졌지만, 토론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는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문제가 발견됐을 때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야말로 ‘불통’으로 비판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기자는 이 지사의 ‘말 바꾸기’를 비판하기보다 화두를 던지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미흡한 점이 있었을 때는 공약을 철회할 줄 아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사가 말한 것처럼,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완결적이지 않기 때문에 토론 과정을 통해서 지적을 받아서 타당하면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哲人)이 아닙니다. 비전과 정책을 가진 ‘준비된’ 정치인이되, 수많은 전문가들과 논쟁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바꿀 줄도 아는 ‘소통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력 대권후보인 이 지사가 자신의 ‘간판 정책’을 후순위로 미룬 건 비판이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할 행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 지사의 ‘공약 후퇴’가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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