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주당과 ‘프레임 정치’…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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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주당과 ‘프레임 정치’…이제 그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7.13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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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다르면 토론해야…‘낙인 찍기’는 국가 발전의 장애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낙인을 찍어 건전한 토론을 막는 정부여당의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낙인을 찍어 건전한 토론을 막는 정부여당의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2017년 7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도 최저임금을 저년 대비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정부여당은 반대 목소리를 ‘기득권의 저항’으로 규정하며 찍어 눌렀습니다.

2020년 7월 30일. 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이른바 ‘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야당에서는 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최악의 전세난’이 찾아올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정부여당은 야당에 ‘1% 부자를 대변한다’는 꼬리표를 붙여 재갈을 물렸습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성가족부와 통일부 폐지론을 설파하고 다닙니다. ‘권력형 성범죄’에 침묵했던 여가부, 북한이 우리 국민을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동안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던 통일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이러자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한 번 ‘낙인’을 꺼내들었습니다. “여가부가 할 일이 없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일베’식 생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정부여당이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은 한결같았습니다. 일단 꺼내놓고, 밀어붙인 후,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 ‘기득권’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임대차 3법 처리부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민식이법’ 처리, 수술실 CCTV 설치, 탈원전 등 거의 모든 정책이 이 패턴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책 추진은 건전한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에 반대하면 ‘악(惡)’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뜻에 반대하면 적폐’라는 강공 드라이브는 신속한 처리에는 도움이 됐을지언정,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발전을 이루는 데는 방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정부여당의 이런 행태는 여가부·통일부 폐지론 앞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자는 여가부와 통일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존속돼야 하는지 폐지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제1야당 대표가 나름대로의 근거를 들어 여가부·통일부 폐지를 말하고 있다면, 정부여당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왜 두 부서가 존치돼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야당 대표가 여가부는 왜 젠더 갈등을 완화하지 못하는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 있었을 때 왜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정부여당은 그에 대해 답을 하면 됩니다. 여가부가 왜 필요한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또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차제에 그 원인을 제거해 소임을 다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정부여당의 임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이 북한에게 피살되는 동안 통일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북한이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 이유에 대해 해명하면 됩니다. 만약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원인이 있다면 그 까닭을 분석하고, 좀 더 실효성 있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제1야당 대표의 문제 제기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올바른 방식이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정부여당이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여가부·통일부에 대한 이 대표의 지적에는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그저 이 대표를 ‘악마화’ 시키는 데 집중할 뿐입니다. 이 대표의 질문에 대해 민주당에서 나온 반응은 “빈곤한 철학뿐 아니라 귀를 닫고 아무 말이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근혜 키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여가부가 할 일이 없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일베식 생각”, “철 지난 작은정부론을 되뇌는 모습을 보니 MB 아바타가 아니었나 싶다”, “이 대표의 어그로 정치가 가관” 정도입니다.

그 어디에도 여가부·통일부 폐지론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논리적·합리적 설명은 없고, ‘박근혜 키즈’, ‘일베’, ‘MB 아바타’, ‘어그로’와 같은 인신공격만 난무합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임대차 3법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적폐’로 낙인찍어 입을 막던 그 모습과 똑같습니다. 이런 정치 속에서 건강한 토론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대표를 ‘박근혜 키즈’, ‘일베’로 몰고 가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을 깎고,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권력형 성범죄’에 침묵하던 여가부, 북한으로부터 자국민을 지키지 못하던 통일부의 ‘무능’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될 겁니다. 이런 식으로는 국민의 권익을 증진시킬 수 없습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토론을 해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토론 대신, 상대에게 낙인을 찍어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뭉개버리려 합니다.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디 ‘프레임 정치’에서 벗어나 생각이 다른 단 한 사람까지의 의견까지도 경청하는 민주적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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