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무너지는 한국 문화①> 홍석현 회장, ´창의궁 터´ 파헤쳐 문화재 보존단체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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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무너지는 한국 문화①> 홍석현 회장, ´창의궁 터´ 파헤쳐 문화재 보존단체 신축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5.21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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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통의동은 효자동, 통인동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옛길이 남아 있다. 특히 통의동 35번지와 그 일대는 영조의 잠저(潛邸)였던 ‘창의궁’ 터로, 땅 아래에는 조선왕조 유물이 가득해 좀처럼 지하층 공사가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최근 통의동 일대에 지하층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설 건물은 문화재유산 보존단체인 ‘아름지기’ 사옥이다. 아름지기의 대표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 신연균씨. 해당 부지 역시 홍석현 회장 소유지이다. 바로 조선왕조의 역사가 기린 창의궁 터에 이례적인 지하층 공사가 허용된 이유로 의심되는 부분이다.

창의궁 터에 이례적 지하층 공사

▲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뉴시스
서울 통의동 35-32번지, 이곳은 최근 문제가 됐던 홍석현 회장과 청와대의 ‘땅 교환’에서 홍 회장이 청와대로부터 받은 땅이다. 청와대는 당초 홍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삼청동 땅 1544㎡(468평)과 건평294㎡(89평) 규모의 집을 소유하는 대신 홍 회장에게 통의동 땅 613.5㎡(186평)을 제공했다. 청와대 측은 청와대와 근접한 삼청동 부지와 집을 경호 등의 문제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청동의 땅과 집은 홍 회장이 자산관리공사 공매에서 40억1000만 원에 매입했던 것이고, 청와대가 홍 회장에게 제공한 통의동 부지의 시세는 65억~93억 원 수준이어서 문제시 된 바 있다. 또 청와대는 홍 회장이 이 집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사실을 미리 알았음에도 늑장 대응으로 리모델링 비용 등 추가 매입비용을 허비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통의통 35-32번지 창의궁 터는 이러한 범상치 않은 과정을 통해 2011년 2월11일 홍 회장의 소유가 됐다. 이후 발굴조사와 매장문화재 검토회의 등을 거쳐 지하층 신축 허가를 받았고, 올 3월부터 아름지기 신축공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이 일대가 사실상 지하층 공사 허가가 나지 않던 곳이라는 것.

지난 2008년에도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통의동 35번지 일대에 몇몇 건축주가 건물구조변경 신청을 했다. 이 곳들은 아름지기 공사터보다 경복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발굴조사에서 창의궁터 유구가 발견, 건물은 지상공사만 진행됐다. 당시 건물구조변경 신청을 했던 한 건축주는 “뭐가 많이 나와서 다시 덮고 위로 건물을 올렸다”며 “이 근방은 다른 곳들도 다 못하게 돼 있다. 지금 저곳(창의궁 터)만 지층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근방 음식점과 갤러리 등 건물주와 관계자들을 만나본 결과 모두 지층의 유구ㆍ유물 발견으로 지하층 공사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5년간 통의동 일대에서 지하층 신축허가 신청이 있던 곳은 4곳, 그 중 유구ㆍ유물가 발견되지 않은 1곳을 제외하면 아름지기 공사터만 유일하게 지하층 공사가 허용된 것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2008년 당시 발굴조사가 진행된 현장에도 가 봤지만 아름지기 공사터는 그보다 유적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름지기 공사터만 지하 공사가 허용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지적했다.

▲ 지난 3월 아름지기 터 발굴 현장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펜스나 어떤 표시도 없이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었다. 아름지기 공사터의 발굴조사와 문화재 평가는 지난해 12월 끝난 바 있어 무려 3개월간을 그대로 방치된 것이다.  왼쪽 위가 방치된 공사터 입구다. ⓒ시사오늘

문화재 평가, 신뢰해도 될까

아름지기 공사터의 지하층 공사 허가 과정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아름지기 공사터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발굴된 문화재에 대해 세 차례의 전문가 검토회의와 문화재 평가회의를 거쳐 ‘지하 유구를 일부 복원ㆍ이전 하라’는 문화재청의 조치 방안이 떨어졌다.

아름지기 공사터에서는 일제강점기 건물지 유구ㆍ유물과 함께 조선중ㆍ후기 건물지 유구가 발굴됐다. 또 도기호, 백자호, 백자병 등의 유물도 함께 나왔다. 당시 문화재위원회의 매장문화재의 검토 회의록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조사지역은 창의궁 영역으로 추정”된다며 “부속되어 종사하는 중인이나 서인 정도가 사용한 공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3차 회의에서는 “창의궁 영역으로 추정되나, 건물지의 상부가 많이 교란ㆍ훼손되고 중복이 심해 정확한 구조와 성격이 파악되지 않는다”며 “현지보존의 경우보다 일정부분(담장부)을 이전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 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해당 전문가들의 심의 결과를 반영, 담장 유구를 건물 외부에 이전 복원하고 담장의 흔적을 표식화하는 방안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상 홍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 발굴된 유구 등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도 화성의 한 창고에 보관중이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바로 발굴 유적을 검토한 전문가들이다. 3번의 검토회의와 평가회의에는 모두 4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Y대학 문화재대학원 A교수(고고학), K대학 건축대학원 B교수(근대건축), 발굴회사 소속 전문가 C씨와 D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발굴회사 소속 전문가들은 유적을 평가하는 곳에 가지 않는 것이 관례다. 영리목적의 기업 관계자가 참여할 경우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씨가 속해 있는 한울문화재연구원은 아름지기 공사터의 문화재 검토시기인 지난해 말, 중앙일보사와 친인척 관계인 삼성그룹의 계열사 공사에서 발굴 수주를 받기 위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사동 초입 옛 민자당사 부지(광훈동 155-2)에 삼성화재가 진행 중인 공사에서 한울문화재연구원은 현재 발굴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 지난 3월 아름지기 공사터 발굴 현장이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위) 아래사진은  한 켠으로 몰아 논 도자기 편과 기와 편들, 방치된 유물ㆍ유구의 사진 ⓒ시사오늘

이밖에 심의위원으로 참여한 B교수는 아름지기에서 강의를 하며 자문을 해주는 등 아름지기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기도 하다. 문화재청에서 선정하는 심의위원들이 홍석현 회장 측과 묘하게 엮인 것은 과연 우연일까.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부 기업(삼성화재)과 발굴기업(한울문화재연구원) 수주 등 문제가 있지만 수주 건은 그(평가) 이후 발생한 문제”라며 “발굴회사가 영리목적으로 하는 만큼 유물평가에서 상피기관이라 판단될 수 있지만, 전문가 선정은 규정에 따랐고 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과 달리 삼성화재의 발굴허가는 올 2월에 났고, 지난해 말은 발굴회사들이 수주를 위해 영업활동을 하던 시기다. 발굴허가가 있기 불과 며칠 전부터 섭외활동이 시작됐을 것이라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은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유적지 파헤치고 ‘문화재 보존단체’ 아름지기 신축

종로구청의 책임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의 유적 조치 통보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공사 허가를 내준 곳은 종로구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로구청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문화재청의 통보를 수렴, 허가를 내렸다”며 “문화재청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 지난 2일 아름지기 터 공사현장에 적혀있는 공사 개요에는 공사명, 설계자, 시공사 등 모든 사항이 기재돼 있지만 건축주의 이름은 지워져 있다. 건축주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다. ⓒ시사오늘
이에 황평우 소장은 “문화재청은 공정하고 명확한 조사를 했어야 했고, 종로구청은 문화재청의 허가 이후에도 다른 시민들은 허가를 못 받고 아름지기 공사터만 허가받은 것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문화재청에 요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옛 조선왕조의 창의궁 터에 새로 세워질 문화재유산 보존단체 아름지기. ‘문화재 보존단체’라기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홍석현 회장의 부인 신연균 씨가 대표로 있는 아름지기는 2008년 운영위원회 임원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삼성가 여인’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현재는 운영위원회 구성을 공개하지 않는 상태다.

문화계에서는 이 단체가 실질적인 문화재 보존단체라기보다 삼성가 부인들의 친목단체 정도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창의궁터의 보존보다 사옥 건립을 위한 이전 복원을 택한 것도 곱게 보이지는 않을 터. 한 문화계 인사는 “귀족부인들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사교모임일 뿐”이라며 “유구를 옮겨가면서 그 자리에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 도대체 단체 설립 취지에 맞기는 하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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