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⑭] 불꽃처럼 살다 천상의 별이 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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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환자생활⑭] 불꽃처럼 살다 천상의 별이 된 친구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7.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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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방적 양측 유방 전절제 결정
대학 절친들이 암 환우로 같이 투병
올 초 한 친구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
슬픔과 비통함에 허무, 우울 모드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모든 치료가 마무리되자 브라카 암 유전자 양성인 나에게 유방외과 주치의는 예방적 전절제를 권유했다. 선뜻 결단을 내리기 어려워 미루고 미루다 어쩔 수 없이 그 안을 받아들였다. 재발률을 5%로 확연히 낮춘다니 위험 부담을 안고라도 다시 수술대에 오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술, 항암과 방사선에 이르는 표준 치료가 끝난 지 6개월 이상 지났고, 민 머리였던 두피에 머리칼이 조금씩 자라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던 시점이었다.

열정적으로 살다 아름다운 석양처럼 저물어간 친구, 애석하고 안타깝다. ⓒ정명화
열정적으로 살다 아름다운 석양처럼 저물어간 친구, 애석하고 안타깝다. ⓒ정명화

팔순 은사님의 제자 사랑

피치 못 할 도전에 가까운 재수술을 앞두고 입원 준비물을 챙기던 중, 팔순을 넘긴 대학시절 교수님이 떠올랐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대학과 전공까지 바꿔 졸업 후 학부 교수님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 거기다 학창 시절 두드러지던  학생도 아니라 그 많은 제자 중 교수님이 날 모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소상하게 기억하더라는 친구의 전언에 화들짝 놀랬다. 평소 교수님 스타일이 제자들의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관심이 많을 정도로 제자 사랑이 각별하단 얘기였다.

하긴 대학 4학년 때 이 교수님의 배려로 성적과 무관한 장학금까지 받았다. 그 당시 엄청난 장마로 고향 동네인 섬진강이 범람하여 집과 공장이 온통 물에 잠기면서 부모님이 사업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교수님께 SOS를 쳤던 모양이다. 지금처럼 학자금 융자 제도가 있던 시절도 아니라, 집안 사정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해 특별 장학금 수여 대상이 되었고 한 학기 등록금을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그 시절 교수님과 부모님 만남 등 에피소드도 떠올랐고 오랫동안 무심해 죄송했던 난, 4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소박한 감사 인사를 하게 됐다. 그 후 친구를 통해 나의 투병 소식을 전해 들은 교수님으로부터 긴 손 편지와 함께 정성 가득 선물 보따리를 받았다. 기쁜 마음에 선물을 휴대폰으로 찍어 대학교 친구들 단체 대화방에 올려 자랑까지 했다. 아마도 그렇게 따뜻한 교수님 선물을 받은 건 동기들 중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할 것이다. 그날 낮에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느라 피곤한 상태였는데, 난 무척 고무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일찍 잠이 들었다.

절친의 부고 소식

다음 날 새벽 세 시경 잠에서 깨어 혹시나 하고 휴대폰 문자를 확인해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잠든 사이 한 친구로부터 온 청천벽력 같이 놀랍고 슬픈 소식이 날 기다렸다. 대학 시절 단짝이던 친구의 부음인 것이다. 졸업 후 유학으로 도미해 미국에서 거주 중이었던 친구였다.

우리는 갖가지 이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부모님과의 사별은 대개 예상하고 있지만, 동시대를 함께 한 친한 친구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면 어떨까. 아마도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은 엄청나고 또 다른 커다란 상처가 될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나이대가 되면서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투병과 본인상 소식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2012년 가을 큰아들 결혼식에 해외 거주 중인 친구들까지 많은 친구들이 참석했고, 그 후 다시 세 친구랑 넷이서 다른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 나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에 친구들 모습을 담았다. 귀가해 편집하던 중 한 친구의 얼굴이 예사롭지 않게 눈에 띄었다. 혈색이 맑지 않고 어두워서 왜 그럴까 하며 의구심이 들었다. 여름도 아니고 얼굴이 그을린 듯 검어 운동을 많이 해서 인가하고 갸우뚱하면서도 무심코 그냥 넘겼다.

그리곤 그 친구한테 연초에 별 일 없냐고 안부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별 일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는 거였다.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1970년대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여주인공의 사인이었던, 골수이식 수술 운운하며 알려졌던 흔히들 알고 있는 ‘백혈병’으로 충격적이었다.

언젠가부터 미열이 있었다는데 감기려니 하고 지나쳤고, 회사 연말 정기검진에서 발견된 것이다. 안타까워하며 친구들과 기도하면서  그 친구의 투병과정을 걱정스레 지켜봤다. 평생 항암제를 먹으며 부작용에 시달리는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다행히 다급한 생명 위협 상태는 아니었다.

제비도 아니고 친구 따라 강남 갔나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2013년 1월 초에 암 발병한 친구에 이어 3년 후인 2016년, 미국에 거주 중이던 또 다른 친구의 림프종 진단 소식을 접하게 됐다. 거기다 뚜렷한 치료제가 정확히 없는 희귀 암이라니 더욱 기막힐 노릇이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미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유능한 친구였다. 귀국해 치료를 받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임상 시험을 진행하며 힘든 투병과정을 견디고 있었다. 만약 이 친구가 잘못된다면 굉장히 허무할 것 같아 오랫동안 가슴이 짓눌리듯 괴로웠다.

그러다 2019년 봄, 나까지 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참 특이한 인연이다. 학창 시절 4 총사였던 우리 중 셋이 암 환우가 된 것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 미공개 상태로 있다 마침내 두 친구에게도 알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나도 암환자가 됐노라고…. 따라 할 게 없어서 암 까지 따라 하냐는 걱정 가득한 친구의 반응이 돌아왔다. 다른 친구들의 응원과 함께 우리 셋은 각자 투병을 하며 서로 격려를 했다.

나랑 한 친구는 치료법이 있어 그나마 암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한데, 미국 친구는 앞날을 낙관적으로 기약할 수 없는 상태라 자신의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혹시나 하며 기적과 의학 기술의 발전을 믿었고 기대했다. 같이 으쌰으쌰 파이팅을 기원했지만 결국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남은 자녀들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왔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장례도 조촐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허망하게 친구를 떠나보내고 겨울비까지 며칠 동안 주룩주룩, 난 끝없는 늪으로 빠져들었다. 청춘의 한 시대를 같이 향유하며 좋아했던 친구를 보내고 한동안 심하게 앓았다.

우리의 젊은 날은 가고

살아가면서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멀리 타국에 떨어져 사니 자주 만나기는 힘들었지만, 업무상 귀국길에 한 번씩 얼굴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외롭고 힘들 때 많이 그리워하며 보고 싶었던 친구였다. 언젠간 만날 수 있을 거라 고대하며 지내온 시간과 달리 이제 이 생애에선 아예 볼 수 없게 됐으니, 삶과 죽음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 이상이다.

우수에 젖어 음악을 들으며 20대로 돌아가 반추해보니 지난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파릇파릇하던 신입생부터 함께 한 시간들이 펼쳐졌다. 학교 앞 독수리 다방에서 닐 다이아몬드의 ‘Solitary man’, 그룹 퀸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열광했던 순간들. 그리고 좋아하던 양희은의 주옥같은 곡들, 특히 교정에서 노래 ‘한 사람’과 ‘행복의 나라로’를 듀엣으로 부르며 즐거워했던 청춘시절 우리의 시간, 시간들….

연고전을 통해 동대문 운동장과 장충 체육관, 신촌뿐 아니라 이대 앞 그리고 광화문 종로 명동까지 접수하여 젊음의 혈기를 뿜어내던 우리의 지난 흔적들, 발자취…. 방학이면 친구네 전남 광주 무등산과 하동 쌍계사, 남해, 부산을 거쳐서 청주 속리산, 강릉 경포대, 설악산, 울릉도까지 같이 전국을 누비며 다니던 많은 시간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발병 몇 해 전부터 병원 방문이 잦다며 건강상 애로사항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어도, 워낙 밝고 활기 넘치며 긍정적이던 친구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해부턴가 귀국 시 다소 야윈 듯한 모습에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서일까 하며 의심스러웠어도, 그게 건강의 적신호였는지 몰랐다. 어쩜 서서히 면역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얀 목련처럼 아름다웠으나 길지 않은 삶

연초에 친구들이랑 지인들한테 기프트 카드를 보냈다더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던 거였다. 주변을 챙기고 배려심이 많았던 친구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며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수술 일정을 받아 놓은 상태였는데, 친구는 이 세상과 하직한 것이다. 다음 치료 일정을 앞두고 있던 내가 지나치게 우울해하며 낙심할까 봐  친구들이 날 염려하며 용기를 북돋우고 기운 차리길 격려했다. 떠난 친구가 자신은 심각한 상태에서도 날 많이 걱정했으니 나라도 힘내서 이겨내야 한다고 위로하며 독려했으나 그게 쉽지 않았다.

먼저냐 나중이냐의 문제지 언젠가 누구나 한 번은 가는 인생의 종착역이지만, 뜨거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함께 한 친구와의 작별은 억장이 무너지듯 먹먹했고 ‘인생이 참 허무하구나’ 하며 오랫동안 비탄에 젖어 탄식케 했다. 불꽃처럼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친구, 너무나 애통하고 안타깝다.

한동안 양희은의 ‘하얀 목련’을 들으며 친구와 함께 한 지난 시절을 추억하고 눈물 젖었다. 하얀 목련처럼 아름다웠으나 길지 않았던 삶, 친구여! 잘 가시게….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 중 발췌>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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