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야 대선주자, 과거 아닌 미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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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야 대선주자, 과거 아닌 미래 보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7.20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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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찾아온 정초선거 기회, 놓치지 않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제20대 대선은 정초선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만, 여야 대선주자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제20대 대선은 정초선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만, 여야 대선주자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1958년 5월 2일 열린 제4대 총선.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127석을 얻으며 과반을 차지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79석으로 전체 의석(233석)의 34%를 얻는 데 그쳤다. 표면적으로 보면 여당이 승리한, 별다를 것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정치학적으로 이 선거는 큰 의미를 갖는다. 향후 선거의 기준을 제시한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였기 때문이다. 정초선거란 미래의 정치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선거를 뜻하는 용어다.

제4대 총선에서 자유당은 수도 서울에서 16개 의석 중 겨우 1개를 얻는 데 그치며 참패(慘敗)를 당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시작된 여촌야도(與村野都)는 한동안 대한민국 선거를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됐다.

여촌야도가 종말을 고한 것은 산업화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나타나면서다. 시골 인구가 줄고 대도시 인구가 팽창한 것은 촌(村)을 기반으로 하던 여당의 존립 기반을 흔들었다. 이러자 박정희 정권은 여촌야도를 대체할 새로운 프레임을 찾기 시작했다. 지역주의가 태동한 배경이다.

박정희 정권이 씨앗을 뿌리고, 이후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성장시킨 지역주의는 빠른 속도로 여촌야도를 대체해나갔다. 그리고 1987년 12월, ‘4자 필승론’을 주창한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후보가 독자 출마를 결행함으로써 제13대 대선은 지역주의를 완벽하게 정착시킨 정초선거로 역사에 남는다.

사회적 격변(激變)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해오던 지역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사태를 계기로 조금씩 허물어졌다.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영남에서 선전한 것을 시작으로, 제7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을 석권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제21대 총선에서는 동서로 분리되는 구도가 뚜렷이 나타났으나, 실제 투표율을 분석해보면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지역주의는 분명 완화되는 기미가 보였다. 요컨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선거를 좌지우지해왔던 지역주의는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다가오는 제20대 대선이 새로운 정초선거가 될 가능성을 보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제20대 대선에 임하는 여야 차기 대권주자들은 좀 더 미래지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이념과 지역에 따라 국민을 갈라치기하던 전통적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정책 선거’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이 어떤 자세로 선거를 치르느냐에 따라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프레임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여야 대권주자들의 행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여야 대선주자 지지율 1, 2위 후보가 벌인 친일 건국논란이나, 여권 주자들은 호남으로, 야권 주자들은 대구·경북으로 달려가 지역의 ‘아들·딸·사위·며느리’를 자처하는 모습은 구태(舊態) 그 자체다. 여야를 막론하고 매일같이 터지는 네거티브는 정치 혐오를 유발한다. 정책 선거의 희망을 줬던 기본소득 논쟁이 종결된 후, 우리 정치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정치인들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1987년 정초선거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를 괴롭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 지형이 재편되면서 우리 정치는 30여 년 만에 새로운 토대를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부디 정치인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는 진정한 ‘새정치’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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