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무너지는 한국 문화②> 정부가 도운 GS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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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무너지는 한국 문화②> 정부가 도운 GS의 ´범죄´?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5.25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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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흥인지문 옆 호텔 짓도록 밑밥
문화재청, 10년된 내용으로 엉성허가
GS, 600억 관광호텔 ´웬떡이냐´ 날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2008년 2월10일은 한국 문화역사상 치욕의 날이다.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화마에 휩싸여 한 순간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잿더미로 변해버린 숭례문 앞에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숨진 600년 역사에 가슴 아파 눈물 흘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숭례문 화재 후 정부당국은 각종 방재대책을 세우며 문화재 보호에 열을 올렸고, 매년 2월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 대한 보호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에는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던 숭례문조차 복구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감사원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지난 2009년 숭례문 복구 작업 과정에서 기와지붕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시공하도록 설계해 원형 훼손은 물론 이번에도 화재에 취약한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 이뿐이랴. 사실 문화재 훼손은 최첨단 방재시스템의 부재보다도 안일한 관리가 큰 몫을 차지한다. 또 부실한 관리·감독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자본력의 이권이다. 땅 속에 문화 유적이 수두룩한 사대문 성안은 오늘날 온통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건물의 그림자에 우리의 문화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에 <시사오늘>은 재력에 힘없이 무너지는 한국 문화의 단면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 서울 종로구 소재 보물 제1호 흥인지문. ⓒ시사오늘
<시사오늘>은 지난 99호에서 ‘GS건설 메리어트호텔 공사… 동대문 무너지나?’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1호 흥인지문(동대문)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흥인지문의 안전은 이미 주변 지하철과 지하수, 차량의 진동 등으로 문제시 된 바 있지만 그보다도 인근에서 진행되는 JW메리어트호텔 신축공사가 안전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흥인지문에서 불과 60m 거리에 행해지는 JW메리어트호텔 신축공사는 본지 취재 결과 지난 2006년 서울시가 지정한 종로청계 관광특구에 기인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외국 관광객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청계천변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이와 함께 관광객을 위한 호텔 공급 확대를 강조했다.

시의 이 같은 정책은 GS건설의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국내 건설사들은 주택경기 침체에 대한 타개책으로 호텔 시장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던 터다. 결국 정부당국과 GS건설의 합작으로 흥인지문 지척에서는 지하 암반을 부수는 호텔 공사가 행해지게 됐다.

정부당국과 GS건설의 합작

서울시는 지난 2006년 3월22일 종로 청계천변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종로구 광화문 빌딩에서 숭인동 사거리까지 종로와 청계천변 사이 54만602㎡(16만3817평)를 관광특구로 지정, 구역별 특화 사업을 통해 관광수요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 지난 2006년 서울시가 지정한 종로청계 관광특구 대상지역. (자료제공=서울시)

실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급증했다. 이에 서울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호텔사업에 열을 올렸다. 단기간에 호텔 공급을 늘리기 위해 기존 건축물을 호텔로 전환할 경우 용적률 완화, 재산세 감면기간 연장 등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979만명으로, 2005년 600만명 돌파 이후 5년 만에 외래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됐다.

흥인지문 맞은편 옛 동대문쇼핑센터 주차장 부지에도 이 같은 정책의 일환으로 호텔이 들어서게 됐다. 현재 메리어트호텔 공사가 진행 중인 종로구 종로6가 289-3번지는 당초 시장 건물과 주차장 부지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0년 11월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해당 부지에 관광호텔을 들이기로 했다. 기존의 시장 계획은 폐지하고 주차장은 호텔시설 내 일정범위를 사용하도록 조치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대로변에 지을 수 없었던 숙박시설에서 관광숙박시설을 제외시키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 측은 “지정 당시 토지이용 여건이 변해 인근지역 내 판매시설의 과도한 공급으로 시장은 폐지한다”며 “동대문 상권을 고려할 때 종로청계 관광특구 전략시설인 관광숙박시설(호텔) 입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GS건설(대표 허명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동승(대표 최해석)으로부터 600억원 규모의 동대문 메리어트호텔 시공을 수주해 지난해 11월 착공에 들어갔다. 특히 올 2월부터는 지하 터파기를 위한 발파작업이 행해지면서 공사 소음과 함께 미세한 진동이 흥인지문 앞까지 전해진다.

동대문 옆 신축공사, 안전한가

해당 부지는 당초 시장 건물과 주차장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지난 2003년 판매 및 업무시설로 지하4층 지상7층, 건평 3054.9㎡(926평) 규모의 공사 허가가 난 바 있다. 이후 동승은 해당 부지에 현상변경 신청을 했고, 문화재청은 지하6층 지상 10층, 건평 2290㎡(694평) 규모의 숙박시설을 허가했다. 종로구청 역시 문화재청의 통보 내용에 따라 호텔 건축 허가를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호텔 공사가 흥인지문에 미칠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었는지는 확인해볼 부분이다. 문화재청은 현상변경허가에 앞서 2차례의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실시하고, 지하 굴착 시 특정 공법 시공 등을 조건으로 공사를 허가했다. 그러나 허가 전 흥인지문만의 특성과 주변 환경 요소를 고려한 과학적 검토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11년 1월7일 동승이 최초 허가사항 변경신청서를 접수한 후 문화재위원회는 그해 1·2월 두 번의 심의를 거쳐 보완통보를 해 왔다.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두 번의 심의에서 제시된 보완 사항은 △건물의 높이와 조경 등 주변 경관 보완 △지하 터파기 시 지하수 변동 고려가 전부였다. 터파기 공사의 진동으로 인한 흥인지문의 안전성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동승은 문화재청의 의결사항에 3월7일 보완도서를 제출했고, 문화재청은 다음날인 3월8일 허가통보를 해 왔다. 허가 조건은 △공사로 인한 흥인지문의 훼손 여부 확인을 위해 진동계측기를 설치, 모니터링을 실시할 것 △진동 및 지하수위 계측 결과 이상이 있을 경우 즉시 공사 중지 후 안전점검을 받을 것 등이었다. 즉 공사로 인한 흥인지문 훼손 가능성이 사전에는 체크되지 않은 채 사후 훼손 여부 검토만을 조건으로 허가가 내려진 것이다. 허가 과정에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는 있었지만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이 아닌 원론적 수준의 의견에 불과했다.

▲ 흥인지문 주변 호텔 건립과 관련 지난해 2월 실시된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 심의 의결내용. ⓒ시사오늘

사후약방문 문화재관리

지하철, 지하수 등 흥인지문 주변 환경과 공사장 진동을 감안한 총체적인 영향평가 여부를 묻자 문화재청 측은 2003년 건물의 최초허가 당시 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가 실시한 안전영향성 검토를 제시했다. 당시 한국건설안전기술협회는 안전진단을 통해 지하굴착 시 지반의 붕괴를 방지하면서 굴착하는 슬러리월(Slurry Wall) 공법 등을 제안했고, 문화재청은 해당 공법을 조건으로 호텔 허가를 냈다.

그러나 해당 안전성평가는 당초 허가사항이었던 지하4층 깊이의 건물을 전제로 진행된 것이고, 문화재청이 건물을 지하 6층 깊이로 현상변경 하는 과정에서 추가조사는 없었다. 더욱이 해당 안전성검토는 10년가량 된 내용으로 그간 흥인지문의 노후화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심의는 있었고 흥인지문에 대해 정기적인 점검은 하고 있다”며 “변화가 보일 경우 바로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을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공사를 최종 허가 내준 종로구청도 다를 바 없다. 종로구청은 사업자의 변경허가 신청서를 접수하자마자 별도의 자체분석 없이 문화재청으로 보냈다. 문화재청의 허가 통보 이후에도 흥인지문이 공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은 제기되지 않았다. 종로구청은 ‘지하층 암반 굴착 시 지하철 구조물에 영향이 없도록 하라’는 서울메트로의 의견만을 수용해 지난해 3월21일 공사 허가를 내줬다.

종로구청 문화공보과 관계자는 ‘문화재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어야 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그런 거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변경으로 해당 부지에 호텔이 들어서게 됐고, 그로 인해 더 깊이 지하공사를 하게끔 현상변경이 있었던 만큼 흥인지문 안전에 대한 서울시의 책임 있는 검토도 필요했다. 또 서울시는 120년 역사의 동대문교회를 철거하도록 하면서까지 흥인지문의 경관 등 문화적 가치를 중요시했던 만큼 흥인지문 지척에 숙박시설을 들인 것은 서울시의 문화재 보존 취지에 역행하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나도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하고 흥인지문 주변 지하 공사에 대해서도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과 함께 관리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전에 이의제기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실제 추가 의견이 있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한 문화재 관련업계 인사는 “관광객 수요를 채우기 위해 주변에 호텔건물을 짓기보다 흥인지문 주변 경관에 더 심도있는 관리가 행해진다면 서울시가 추진하는 관광 효과도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5월14일 흥인지문 주변으로 많은 차량이 통행하고 있고, 뒤편으로는 JW메리어트호텔 공사가 진행중이다. ⓒ시사오늘

“흥인지문, 정밀 안전진단 필요”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사실상 흥인지문 안전에 대한 영향평가가 없었지만 그나마 공사가 진행되고 올 2월부터는 발파진동에 대한 평가가 실시되고 있다. 이는 문화재청의 허가 조건에 따라 종로구청과 GS건설 등이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지난 2월 발파진동 영향평가 결과 현장의 진동은 10회 발사 시 최대 속도 0.12cm/sec(1초에 진동의 여파가 미치는 거리)인 것으로 측정됐다. 이는 문화재청이 제시한 발파 진동 기준인 0.15cm/sec 이내 값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흥인지문은 공공기관 발파허용 기준인 0.2cm/sec보다 낮은 0.15cm/sec를 기준으로 계측·관리 중에 있다”며 “발파에 따른 진동측정 결과값이 기준범위 이내로, 현 상태에서 안전성에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GS건설도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문화재청의 소견에 따라 공사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해당 공사는 2013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평가도 공사 현장의 발파 진동에 대한 영향검토일 뿐 흥인지문 주변의 여려 환경요소를 고려한 안전평가는 아니다. 더욱이 측정값은 기준범위와 근접한 수준이고, 흥인지문이 주변 지하수와 교통시설 등으로 지반이 약해져 있는 것까지 고려하면 흥인지문에 대한 보다 면밀하고 장기적인 안전성 검토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진동이 계속될 경우 충격이 흡수되지 않고 불균형 지반 침하를 이뤄 흥인지문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연구소 소장은 “흥인지문의 정밀 구조안전진단을 하고 정밀 진단 결과에 따라 전면 해체 보수를 시행해야 한다”며 “주변 건물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흥인지문 주변 지하수에 의한 흥인지문 상태 조사, 지하철과 자동차 진동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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