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현아의 SH가 기대되는 이유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자수첩] 김현아의 SH가 기대되는 이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7.29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질 좋은 주택’…공공주택 ‘질적 개선’ 공약에 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현아 SH 사장 후보자는 공공주택 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오늘 김유종
김현아 SH 사장 후보자는 공공주택 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오늘 김유종

여러분은 혹시 엘사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많은 분들이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요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말이 ‘LH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임대주택을 향한 모멸적 표현인 셈이죠.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사는 곳을 계급 구도로 만들어 서열화하는 태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천민자본주의적 행태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별, 나이, 재산, 직업 등에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책적 측면에서, 이 단어들은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공공주택사업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위적 명령과는 별개로, 국가가 공급하는 주택이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니까요.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주택의 절대적 수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주택보급률이 높아지면 집값은 자연스럽게 조정될 거라고 믿었죠. 그래서 정부는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맞춘 공급 전략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주택보급률이 100을 넘어섰음에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공급하는 주택과 국민들이 살고 싶어 하는 주택이 불일치했던 까닭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직장에서 가깝고, 주변 환경이 쾌적한 위치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또 집 밖에서 미리 에어컨을 켜둘 수 있고, 집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부를 수 있는 ‘스마트 아파트’를 원하죠.

하지만 국가가 공급하는 주택은 이런 편의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러다 보니 공공주택을 아무리 공급해도 집값은 그대로였습니다. 시장의 수요는 ‘질 좋은 아파트’인데 공급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니 가격이 떨어질 리 없었죠. 가격은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때만 하락합니다.

오히려 주택 시장이 ‘질 좋은 민영’과 ‘질 나쁜 공공’으로 이분화되자, 공공주택을 기피하는 풍토까지 생겨났습니다. 값싸게 주택의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한 정부 정책이 아파트를 서열화하는 부작용을 낳은 셈입니다.

기자가 김현아 SH사장 후보자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인 김 후보자는 오래 전부터 주택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아래는 김 후보자가 지난해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공공재개발, 공공재건축을 통해 공급되는 물량은 중상위 주택보다는 중하위 주택의 가격을 낮춘, 품질이 낮은 주택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가격 안정 효과가 있겠지만 중산층이 실질적으로 살고 싶은 주택의 안정 효과는 요원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지난 2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렇게 밝혔습니다.

“공공주택의 양적 확보를 넘어 질적 개선에 주력하겠다. 주거복지 시대가 도래해 이제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서 주택 품질도 중요하다. 시대에 걸맞은 품질 혁신과 공간 복지 실현에 앞장서겠다.”

요컨대 ‘질’은 고려하지 않고 ‘양’만 늘리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겁니다. 단순히 공공주택을 몇 백만 호 공급해 집값을 잡겠다는 종전 방식과는 차별화된 노선이죠.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공공주거정책이 잘 돼 있는 곳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주소를 통해 거주자의 사회적 신분을 알게 되면 안 된다’는 원칙하에 명망 있는 건축가들의 손을 빌려 임대주택을 건설했습니다. 덕분에 비엔나는 상대적으로 ‘집 걱정 없는 대도시’가 될 수 있었고,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죠.

사는 곳으로 계급을 나누고 누군가를 차별하는 건 반드시 사라져야 할 행동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당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현실을 개탄하고 나무라기만 하는 건 공무원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에 발을 딛고,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죠. 기자가 ‘김현아의 SH’에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