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무너지는 한국 문화③> 인사동 문화거리, 대기업이 망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재벌에 무너지는 한국 문화③> 인사동 문화거리, 대기업이 망친다
  • 박세욱 기자
  • 승인 2012.05.26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기업 무분별한 경쟁 인사동 전통문화 훼손 주범
비싼 임대료 떠나는 전통문화, 상업주의가 부추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세욱 기자]

서울 4대 명소 중 한 곳인 인사동은 전통적인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 문화 거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골목마다 전통찻집과 음식점, 묵향이 풍기는 필방과 고미술상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한국의 멋을 체험하기 위해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내·외국인 관광객 평균 10만명 이상이 이곳 인사동을 찾는다. 특히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인 만큼 한국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손꼽힌다.

하지만 최근 인사동 거리의 모습은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인해 ‘한국의 대표 문화거리’로서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서울시의 문화예술진흥법에 의거 인사동을 문화지구 구역으로 지정했지만 대기업들은 관련법안의 허점을 노려 주변 상권을 잠식하고 있다. 이에 눈 앞의 이익만을 쫓기 위해 인사동을 퇴락의 길로 빠뜨리는 대기업들의 행태들을 짚어봤다.

▲ 하루 평균 10만명 이상이 인사동 문화거리를 찾는다. ⓒ뉴시스

한국 전통이 화장품? 대기업 매장 ‘우후죽순’

한적한 오후 인사동을 찾은 한 시민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인사동 거리는 골동품과 공예품들이 즐비해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때 인사동에 들러 전통물품을 하나씩 사들고 갔다”면서 “그러나 2000년대 전후부터는 느닷없이 오락실이 들어서지 않나, 지금은 외국브랜드 커피숍과 화장품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시민의 이야기처럼 실제 450m 거리의 인사동 문화거리에는 10여개 정도의 대기업 브랜드의 화장품 매장이 들어서 있고 곳곳에는 전통찻집을 대신해 유명 커피 브랜드 체인점이 입점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저가 제품들의 무분별한 난립으로 인해 정체불명의 거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먼저 인사동 네거리 한복판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매장이 자리 잡고 있고 주변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 에이블씨엔씨 ‘미샤’,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올리브영’ 등의 화장품 매장이 입점해 있다.

화장품 매장이 들어선 자리는 이전 대부분이 필방이나 공예품을 팔던 곳이었다. 또한 인사동 입구에서 50m 남짓한 거리에는 SPC의 파리크라상 제과점을 비롯해 신세계가 미국 브랜드를 빌려 운영하는 ‘스타벅스’도 들어서 있다.

이처럼 한국 전통 공예품과 골동품들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곳에 쇼핑거리나 유흥가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의 체인점들이 인사동 거리를 점령하고 있어 이곳이 과연 문화거리인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무엇보다 인사동은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이들의 홍보방식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화장품 매장들은 미니스커트를 착용한 도우미 직원을 활용해 호객 행위를 하는가 하면 마이크 사용, 과도한 홍보부스와 현수막 등으로 인해 전통거리라는 이름을 무색케 한다.

뿐만 아니라 인사동 일대 상인들 사이 문화거리 한복판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자본이 투입되는 건물건립 계획이 알려지면서 전통문화를 훼손시키는 대기업 행태에 혀를 내두른다. 수십년간 장사를 해 온 인사동 토착 상인은 “문화거리로 조성된 인사동은 상업주의만을 앞세운 대기업들로 인해 훼손됐다”면서 “외국인들로서도 화장품과 빵, 그리고 미국브랜드 커피가 과연 한국의 전통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매장을 개장한 것으로 문화거리라는 특색에 맞게 간판을 한글로 바꾸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매장을 오픈 한 것으로 점주가 원하는 곳으로 입점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인사동 거리내 부지를 매입하고 이곳에 건축물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비싼 임대료, 대기업 잠식 원인 지적

더욱이 인사동 거리 활성화로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치솟는 임대료도 문제로 지적된다. 월세 및 보증금이 올라가면서 전통상품을 판매하던 기존 점주들은 인근 골목으로 내몰리거나 인사동을 떠나야 할 지경까지 처해있다. 인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인사동 거리 도로변에 위치한 건물 33㎡(10평)을 기준으로 80년에는 100만원대 하던 임대료가 현재는 900만원대까지 10배 가까이 올랐다.

주요 상권에 따라 상승하는 보증금 역시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서울 대학가 인근 상업지역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판매 매장 증가로 동종 업종이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높아진 것으로 풀이한다. 더 나아가 대기업이 운영하는 건물들이 들어서면 일반적인 프리미엄 효과로 인해 주변 시세가 증가하면서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의 확장을 막고 문화거리 훼손을 막을 대책은 없는 것일까. 서울시는 지난 2002년 4월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 인사동 거리를 첫 문화지구 구역으로 지정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고 문화지구내 비디오물감상실업, 게임제공업, 관광숙박업 등 전통문화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업종의 영업을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조례에 의거 전통문화와 관련성이 없는 업종은 영업할 수 없지만 화장품, 제과점 등은 금지 품목 대상이 아니다. 이들 업체들은 관련 법안의 허점을 파악하고 전통문화 거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이미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에 위기를 느낀 서울시와 종로구는 관련 조례 개정안을 내놓고 인사동에서 95% 이상 판매되던 중국산 저가 제품을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서울시는 올해 2월 인사동 문화지구에서 외국산 제품 판매와 비권장 상업시설의 입점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오는 9월 시의회에 상정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사동에 질 낮은 외국산 기념품이 넘쳐나 문화지구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종로구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개정안이 연내 시의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외국산 제품 판매 금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무분별하게 느는 화장품 가게 및 제과점 안경점 등 비문화 상업시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지난 4년 동안 문화지구에 새로 생긴 화장품 매장만 무려 11곳이고 최근에는 이동통신사 대리점, 학원을 내고 싶다는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면서 “문화지구의 정체성 훼손을 막기 위해 조례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