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과 박정희> “김영삼, 노블레스 오블리주 몸소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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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박정희> “김영삼, 노블레스 오블리주 몸소 실천”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2.05.31 13: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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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청백리’ 김영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당당히 걸어간 김영삼

민주국가 건설을 위해 목숨 걸고 40년을 한 결 같이 당당히 걸어 기어이 정통민주정치를 회복시킨 대통령.
권력남용과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통령.

민주화 투쟁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통령.

김영삼은 재임 5년 동안 주변문제로 상심한 적도 있지만 본인은 취임 전에 약속한 부당한 돈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또 모든 정책이 투명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천했다. 부정부패 없이 상도동 사저로 돌아온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를 추종하는 오랜 동지들의 모임인 민주동지회를 경제적으로 돕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깨끗하고 고고하게 삶을 이어가는 존경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도덕성과 윤리성 그리고 합법성이 그 나라의 문화창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김영삼은 역대 대통령들이 저질러온 부정부패를, 국민들까지도 ‘정당한 관행’처럼 믿는 ‘부정부패의 뿌리’를 단칼에 뿌리 채 뽑아버렸다. 이는 국민 총의에 의해 만들어 진 합법적 정부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김영삼에게는 정당한 헌법에 의한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총칼이나 부당하게 갈취한 돈’의 위력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김영삼의 당당함이 막강한 박정희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단숨에 무너뜨려 영구히 이 나라를 ‘총칼과 부당한 돈’에서 해방시켜 놓았다.

대통령과 골프

문민정부시절 고위 공직자들은 물론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골프를 치고 싶어도 이를 억제하고 골프장 출입을 삼가 하거나 불가피하게 치게 되는 경우에도 눈치껏 조심하며 골프장 출입을 했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아서 그 세계를 잘 모르는데 평소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대통령이 골프를 치지 말라고 하여 못 다닌다”고 은근히 불평하는 말을 가끔 들었다.

김영삼 대통령 퇴임 후, 나는 “재임시절, 왜 골프는 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언제 골프를 치지 말라고 했어, 재임 기간에는 내가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했지, 언제 누구보고 골프를 치지 말라고 했단 말이냐?”고 오히려 반문을 했다.  대통령의 언행과 도덕성, 철학이 국민의 정신문화 창달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실례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금도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조깅과 배드민턴으로 운동을 대신한다.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바둑, 장기, 고스톱도 멀리하고 말이다.

우리는 5천년 문화민족임을 자부한다

민주주의 역사는 일천하다. 1948년에야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민주헌법을 만들어서 10여 년 동안 시행하다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민주헌법 하에 영구집권을 꿈꾸다가 4·19로 무너졌다. 그간의 경험을 살려 진정한 민의에 의한 내각제헌법을 만들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되나 했는데, 본분을 망각한 박정희 일파가 총칼을 앞세워 무려 32년 동안 헌법을 군화 발밑에 깔고 헌법위에서 군림했다. 자신들이 만든 이름만의 헌법조차도 툭하면 총칼을 앞세우고 집권 18년 동안에 무려 네 번이나 고쳤다. 그러다가 10·26과 6·29를 거치면서 32년 만에 하나님의 도움으로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김영삼은 32년 동안의 불법 무법 부정부패로 얼룩진 군부독재의 적폐를 털어내고 정통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기초를 극히 짧은 5년 동안에 완결해 놓고,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해놓고 그는 미국의 조지워싱턴처럼 깨끗하게 모범을 보이고 처음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 전 재산 50억 원 사회 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과 경남 거제도 땅 등 전 재산 5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하고 법적인 절차도 이미 지난해 가을 마무리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사실을 2011년 1월 5일 신년인사차 상도동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재산 환원 여부를 묻자 그동안의 준비과정을 이야기 해줌으로써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다만 상도동 사저는 김영삼민주센터에 소유권을 넘기되 자신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머물기로 했다.

이런 YS의 결정에 대해 손 여사와 자녀들은 “재임시절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실시하면서 재산의 투명한 공개를 강조해 온 정신을 살리자”며 흔쾌히 동의했다.

YS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부소장은 “아버지가 어제 오늘 생각한 게 아니라 문민정부 첫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부터 결심 한 것”이라며 “가족들과 상의했고 전적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김영삼은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킴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해 진정으로 나라와 사회를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모든 정치지도자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보여 주었다.

이 또한 역대 전직 대통령 중 처음 있는 모범사례가 되었다.

현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 331억 원을 출연해 청소년 장학과 복지사업에 쓰도록 훌륭한 모범을 보였는데…, 어느  언론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범사례를 보도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아태평화재단의 건물을 연세대학교에 기증했다고 썼다.

그러나 김대중의 아태평화재단 건물의 연세대학교 기증은, 본래 김대중의 개인 재산이 아닐뿐더러 그 재단형성과정의 의혹이 불거져 문제가 되자 이를 덮기 위해서 기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건물은 마땅히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도서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자기 개인 사물실로 쓰면서 자기의 소유인양 쓰고 있다.

이런 김대중의 불투명한 행위까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순수한 행위와 동열에 놓고 미화하는 것은, 그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왜곡하는 무책임한 보도를 한다는 오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역사에 빛나는 청백리가 많다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청백리 이상으로 깨끗함을 간직하고 백성을 사랑한 최고 권력자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성군이라 일컫는 세종대왕으로 알고 있다. 나는 김영삼이 그에 버금가는 깨끗함을 실천하고 모범을 보인 최고 권력자라고 생각한다.

청백리가 교과서에 올라 후손들에게 교재로 쓰인다면 최고 권력자인 김영삼의 깨끗한 모범도 당연히 교과서에 올려 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투명한 민주화의 토대를 확실하게 만든 모범을 기려 조지워싱턴처럼 ‘민주화의 아버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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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ddjtkfkd 2012-06-15 17:24:07
삼이씨 홍보기사네 웃겨~~투쟁밖에 한게없어 민주화 후퇴시킨 애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