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②] 울 밑에 선 봉숭아-국민 정서와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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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②] 울 밑에 선 봉숭아-국민 정서와 동행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8.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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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연정, 봉숭아 학당 등…우리 주변의 애잔함과 그리움을 전하다
일제강점기 억압된 한국인의 설움을 상징, 홍난파 ‘봉선화’로 거듭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나이 들수록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현재는 과거의 그림자'라 하듯 우리의 삶은 지난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모든 인생이 축적된 경험을 반추하여 현재에 대입해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때론 어떤 작고 보잘것없는 이미지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삶의 한 영역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의미 있고 상징적인 대상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 '봉숭아'라 하겠다.

오래전 종영한 TvN 예능 프로 '삼시세끼'를 즐겨 봤다. 특별한 것 없이 하루 삼시 세끼 해 먹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즐거움과 평온한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어느 날 어촌 편중 세끼 식구들이 제기를 차며 즐겁게 게임을 하더니 이어 또 참바다 유해진이 공기까지 꺼내 들었다. 남자치곤 꽤 능숙하고 노련한 공기놀이를 하니, '참바다 씨는 공기도 잘하네…'라고 자막에 나왔다.

그 유쾌한 분위기속에서 공기를 하며 유해진이 하는 말이 "우리 엄만 공기를 참 곱게 하셨어. 그래서 공기를 하면 엄마 생각이 나." 하는데 갑자기 뭉클하며 콧등이 시큰해지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회차가 끝나도록 난 베갯잇을 푹 적시며 회한에 젖었다. 삼시 세끼 같이 유쾌한 프로그램에서 울다니…. 유해진의 '공기를 하면 엄마 생각이 난다'는 대목에서 나의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농촌 들녘과 돌담 옆 곱게 핀 봉숭아. ⓒ정명화 자유기고가

봉숭아꽃 물들이기와 엄마 생각

나는 더운 뙤약볕아래 피어 있는 봉숭아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봉숭아는 한 여름의 중심에서 꽃을 피우는, 시골집 마당 여기저기 그리고 도회지 가정집에서 동네 골목 귀퉁이까지, 맨드라미 채송화 등과 함께 모든 화단에 빠지지 않고 쉬이 볼 수 있는 꽃이다. 엄마가 정원에 많은 꽃을 심어 봄부터 꽃 행진이 이어지던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 유독 봉숭아를 보면 그때가 떠오르며 그 시절이 그립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 연정' 중. ⓒ정명화 자유기고가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 연정' 중. ⓒ정명화 자유기고가

봉숭아꽃이 울긋불긋 곱게 물들면, 엄마는 바구니에 가득 따곤 손톱에 꽃물 들일 준비를 했다. 그때 필요한 백반을 약국에 가서 사오는 일은 나의 몫이다. 백반과 아주까리 잎이랑 몇 가지 재료를 갖춰 봉숭아꽃을 작은 절구에 찧었다. 이어 엄마, 나 그리고 이웃 이모나 언니들이랑 모여 그날은 저녁 내내 봉숭아꽃 물들이기 거사를 치렀다.

손톱에 올려진 으깬 봉숭아꽃이 제대로 물들게 아주까리 잎으로 둘둘 말아 무명실로 묶어서 고정하면 일은 끝난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까지 똑바로 자는 게 관건이다. 난 잠자리에서 편하게 몸부림을 치지 못하고 두 손을 모시고 반듯이 자야 한다는 점이 귀찮고 신경 쓰여 이 행사가 불편했다. 하룻밤만 잘 넘기면 손톱 물이 곱게 들어 손이 예뻐지는 거라 참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꽃물은 점점 옅어져 갔고, 이젠 빛바랜 사진 속 어린 시절 내 모습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봉숭아 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봉숭아. ⓒ정명화 자유기고가

존재의 처량함과 역사적 상징성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

봉숭아는 꽃 물들이기와 함께 홍난파 선생이 화음을 붙인 '울 밑에 선 봉선화야' 곡으로 더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억압된 한국인의 설움을 봉선화에 투입시킨, 꽃이 처량하게 보이는 이유는 가슴속에 감춰진 민족감정의 울분이 투영된 것이다. 그렇기에 슬픈 선율과 함께 묘사된 봉숭아꽃이 유독 애처롭게 느껴진다. 

노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후 우리 민족에겐 수많은 화려한 꽃들에 비해 작고 평범해 보이는 봉숭아꽃이 애잔하면서도 친근하고 더욱 가까워졌다. 또한 '봉선화 연정'이란 대중가요나 '봉숭아 학당'같은 용어로 쓰이기도 하면서 우리 주변에 쉽게 만날 수 있어 국민 정서와 맞닿아 있는 꽃이 됐다.

길가에 핀 봉숭아꽃 무리들을 보며 곁을 지나노라면, '울밑에선 봉선화야' 노래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어 흥얼거리게 된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을 보며 울 밑에 피어있던 봉숭아도 만세를 부르며 같이 기뻐하지 않았을까. 반면 현 시국에 와선 정치권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연일 친일이다 반일이다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봉숭아는 그저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봉숭아는 역사 속 스토리와 연결되며 더욱 가치있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박하고 여린 꽃 하나에 의미를 부여 하자 커다란 존재가 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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