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⑤] 가을 길목 스케치-무소유 법정 스님의 길상사
[일상스케치⑤] 가을 길목 스케치-무소유 법정 스님의 길상사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9.1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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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사찰에서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떠오르다
침묵과 사색의 시간, 속세 번뇌 내려놓고 상념에 젖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벌개미취. ⓒ정명화 자유기고가
벌개미취.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여름의 끝자락이자 가을 초입,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이른 아침 마당에 나가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기운에 계절의 재빠른 손바뀜이 느껴진다. 가을의 전령사 벌개미취가 시골 들녘이나 도회지 공원 여기저기 만개해 화사함을 안긴다. 추색이 아직 도드라지지 않지만 가을이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속세를 벗어난 사찰 안. ⓒ정명화 자유기고가
속세를 벗어난 사찰 안. ⓒ정명화 자유기고가

지난 더운 열기로 심신에 쌓인 피로와 먼지를 털어내고 차분히 정신 무장하기 위해 도심 속 사찰로 가을맞이 나섰다. 속세를 벗어난 사찰 안은 세상의 복잡다난한 일상을 벗어나 오로지 평온만이 머물렀다.

성북동 길상사 입구. ⓒ정명화 자유기고가
성북동 길상사 입구. ⓒ정명화 자유기고가
맑고 향기롭게. ⓒ정명화 자유기고가
맑고 향기롭게. ⓒ정명화 자유기고가

길상사, 맑고 향기롭게

산세 깊은 산사는 아니더라도 고즈넉한 풍경을 맛보려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찾은 것이다. 입구 길상사 안내판에 새겨진 '맑고 향기롭게' 문구가 유독 눈에 띈다. 탁해진 영혼을 씻어내고 향기 나는 인격체로 거듭나길 바라서일까.

길상7층보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길상7층보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극락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극락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주말 오전 예불 시간, 목탁소리가 경내에 영롱하게 울려 퍼졌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바쁜 걸음 쉬어가게 하는 사찰

길상사의 유래를 살펴보면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의 주인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화를 받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시주하면서 아름다운 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7년에 세워졌으니 역사는 짧지만 사찰 체험, 불도 체험, 수련회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일반 대중들을 불교와 가깝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침묵의 집’에서는 참선과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꽃무릇. ⓒ정명화 자유기고가
꽃무릇. ⓒ정명화 자유기고가
수련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수련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경내에는 다양한 꽃들이 자리하며 가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 핀 야생화는 계절마다 변주하며 길상사 안 또 다른 구경거리다. 사찰은 특유의 경건하며 엄숙하고, 때론 더 나아가 분위기가 무거울 수 있는데, 길상사는 구조적으로 전통적 사찰 모양새가 아니고 수목과 화초가 어우러져 비신자들도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세월의 흔적이 역력히 묻어 있는 장의자, 곳곳에 설치하여 잠시 머물다 갈 길손들을 위해 선처한 배려가 돋보인다.

법정 스님 진영각

ⓒ정명화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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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내 법정스님의 처소 진영각. ⓒ정명화 자유기고가
길상사 내 법정 스님의 처소 진영각. ⓒ정명화 자유기고가

길상사는 법정 스님과 연관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무소유의 '법정 스님'은 생전 버리고 떠나야 비로소 새것을 채우고 새 출발 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예전 스님이 기거하던 산자락 작은 오두막 단칸방의 소박한 정경이 떠오른다. 그 당시는 '아무리 혈혈단신이래도 그렇지 어쩜 저리도 단출할까' 하며 사실 그 상황을 받아들여 공감하기 어려웠다.

며칠을 지내더라도 하루하루 필요한 생필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글쎄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더구나 긴 수행을 위해 먼 길 떠나며 등에 진 배낭 한 개가 전부인 이삿짐까지. 많은 세월이 흐른 이제야 그게 충분하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이해할 것 같다. 어느 한곳에 집착하지 않고 가볍게 훨훨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거….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처소 진영각에서 법정 스님이 입적을 했고, 스님이 남긴 소박한 유품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다. 이날은 무슨 연고인지 굳게 입구가 닫혀 있었다.

법정 스님의 유골함이 묻혀 있는 진영각네 뜰. ⓒ정명화 자유기고가
법정 스님의 유골함이 묻혀 있는 진영각네 뜰.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영각 뜰엔 주인장이 떠난 자리에서 쓸쓸히 자리를 지키던 초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작은 정원에 이토록 예쁜 야생초들이 사계절 피어나고 있다. 스님을 닮은 듯 매우 소박하면서도 고고함이 흐른다. 작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명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새삼 감흥이 온다.

곳곳에 차려진 테이블과 의자 하나하나 작품 전시회처럼 꾸며져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곳곳에 차려진 테이블과 의자 하나하나 작품 전시회처럼 꾸며져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켜켜히 쌓인 기왓장은 색다른 멋을 풍기며 운치있는 담장 노릇을 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켜켜이 쌓인 기왓장은 색다른 멋을 풍기며 운치 있는 담장 노릇을 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길상사는 경내 구석구석 차려진 건축물 자태가 마치 작품처럼 아름답고, 그로 인해 전체적인 풍광 자체가 굉장히 멋스럽고 매력적이다. 어느 한곳도 흐트러진 데 없이 잘 정돈되게 관리 중이라, 흡사 문화재 집결지같이 구미를 당겨 한 번씩 즐겨 찾곤 한다.

침묵의 집

돌계단은 또다른 근사한 예술품같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돌계단은 또 다른 근사한 예술품 같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침묵의 집이 던지는 메시지에 숙연해졌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침묵의 집이 던지는 메시지에 숙연해졌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영각 근처 침묵의 집. 침묵의 집이 상징하고 던지는 메시지에 숙연해졌다. 사람들이 세상에다 쏟아내는 언어의 홍수 속에 과연 얼마나 진실되고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쭙잖은 웅변보다 침묵이 더한 힘을 발휘하고 삶에의 울림이 진하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임에도 범인들은 실천하기 어렵다. 그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내 목소리 내겠다고 상황을 시끄럽게 만들어 때론 일을 그르치기만 할 뿐이다.

능소화. ⓒ정명화 자유기고가
능소화.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담벼락에 걸터앉은 담쟁이엔 이른 가을 향기가 배어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초가을의 정치 물씬 풍기는 길상사를 둘러보며 갖가지 번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내일을 위한 내실을 기할 충전의 시간이 되었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다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자연의 초록 물결이 붉은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날씨가 스잔해질수록 쓸쓸함과 외로움도 진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알찬 삶의 족적을 남기기 위해 깊이 묵상하고 사색할 때다. 고난의 순간이 오더라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심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곱게 익어 가리라.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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