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차지철의 월남파병 반대론과 ‘조국수홍’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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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차지철의 월남파병 반대론과 ‘조국수홍’ 논란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9.19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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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공분한 ‘조국 수사’에 대한 경솔한 발언은 삼가 했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홍준표 의원은 온 국민이 공분한 ‘ 조국 수사’에 대한 경솔한 발언은 삼가 했어야 했다. 사진(좌)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일행 사진제공=청와대 사진(우) 홍준표 의원 상징표시 사진제공=홍준표 의원 홈페이지
홍준표 의원은 온 국민이 공분한 ‘ 조국 수사’에 대한 경솔한 발언은 삼가 했어야 했다. 사진(좌)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일행 사진제공=청와대 사진(우) 홍준표 의원 상징표시 사진제공=홍준표 의원 홈페이지

박정희 정부 1기인 3공화국은 ‘조국 근대화’가 시대정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를 위해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두가지 외교로 근대화의 종자돈을 마련했다. 바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와 ‘월남 파병’이다.

일본 국교 정상화는 6ㆍ3 사태와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문 등 숱한 역경을 겪으며 성사됐다. 박정희 대통령과 협상 주역인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은 매국노로 매도되는 정치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촉발되자 계엄령까지 선포됐다.

하지만 이들은 근대화를 위한 ‘돈’이 절실했기에 미국을 우군삼아 일본을 압박해 총 8억 달러에 달하는 대일 청구권을 받아 포항제철소를 비롯한 경제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월남 파병도 못지않았다. 당시 미국은 월남 저주의 덫에 빠져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군 파병을 요청했다. 만일 한국이 이를 거절할 경우 주한 미군 일부 철수 카드가 급부상할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6ㆍ25 국난 위기에서 구원해준 ‘혈맹’ 미국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역시 문제는 ‘여론’이었다. 월남은 집권세력이 부패했고, 민심을 잃었다. 미국도 반전(反戰)여론이 확산돼 존슨 행정부는 정치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도 부패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독재정권을 위해 우리 국군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심지어 여권 내에서 반대파가 나왔다. 소신파 정구영 공화당 의장과 차지철 의원이었다. 정 의장은 본인의 확고한 소신에 따른 반대였지만, 차지철 의원은 박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위장된 반대였다. 

노재현 전 중앙일보 기자가 쓴 <청와대비서실>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증언이 자세히 나온다.

이 전 장관에 따르면 미국은 우리가 요구하는 파병 조건 수준을 깎으려고 했다. 월남 파병으로 경제 도약의 종자돈을 마련하려는 박정희 대통령은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일 국교 정상화 건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월남 파병 문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이동원 전 장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국내에서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당히 높아야 ‘저것 봐라’며 미국을 다그치겠는데, 당시의 최대 현안은 어디까지나 한일 협정 문제였다. 야당도 파병 문제에는 세게 나오질 않았다. ‘미국이 정히 요구해오면 도리가 없다’는 분위기였다.”

대통령과 외교 실무진은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 파병은 해야겠는데 미국이 지갑을 화끈히 열 생각이 없으니 졸지에 ‘을’이 된 셈이었다.

이 전 장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미국은 먼저 군대를 보내놓고 나서 협상을 하자고 재촉했다. 애가 탔다. 궁리 끝에 박 대통령과 상의해 시나리오를 짰다. 차(지철)의원에게 ‘파병 반대파’역할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비록 초선이지만 차 의원은 대통령의 측근이었기에 영향력이 커 적격이었다.”

대통령은 차지철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악역을 맡겼다. 충복인 차지철이 즉각 행동에 옮긴 건 당연지사. 정권 실세인 차지철이 갑자기 ‘파병 반대’를 선창하자 숨을 죽이고 있던 공화당 소장파와 야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뜻밖의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차지철 의원이 파병반대론을 주도하면서 정권 입장에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월남역사 연구에 푹 빠져버려 진짜 파병불가론을 열렬히 주장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 최측근 차지철이 파병 불가 목소리를 더 높이자 동조 세력이 급증했다. 심지어 국회에서 파병동의안 부결까지 예상됐다. 결국 이동원 전 장관이 ‘각하의 뜻’을 내세워 설득에 나서자 차지철의 월남 파병 불가론은 잠잠해졌다. 마침내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가결됐다.

물론 차지철 의원이 파병불가론에 몰입한 것은 후일 역사의 평가를 받겠지만, 월남 파병이 조국 근대화를 위한 발판이 됐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최근 ‘조국수홍’이라는 신조어가 전국을 들썩이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6일 국민의힘 대선주자 TV토론에서 “조국 일가 수사는 과잉 수사였다”라는 발언으로 위기에 빠졌다.

홍 의원의 해당 발언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역선택’ 논란에 힘입어 윤석열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민주당 지지층을 의식한 의도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홍 의원의 돌발 발언이 생중계되자 ‘공정’에 민감한 2030세대의 분노를 일으켰다. 하태경 의원은 홍 의원에게 “‘정경심 사랑해’, ‘조국 지켜라’ 이분들 좋아하는 얘기를 대놓고 한 것에 대해서 놀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의원이 대선 경선에 지나치게 몰입해 민주당 지지층의 표심을 얻고자 한다 해도 ‘조국 수사’에 대한 경솔한 발언은 삼가 했어야 했다. 국민의힘은 정권교체의 원인을 '조국-추미애 논란'에 따른 내로남불에서 찾았는데, 대선 후보까지 지낸 홍준표 의원 주장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월남파병 불가론을 외쳤던 차지철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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