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물타기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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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물타기 공화국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10.01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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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킨도너츠와 화천대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미묘한 타이밍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SPC그룹과 노동조합 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된 가운데 던킨도너츠 안양공장에서 위생 불량 이슈가 터진 것이다. 제보자는 해당 공장 설비 청소가 1년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공개한 영상에는 기름때에 찌든 기계, 도넛 반죽에 섞인 시커먼 기름, 생산 공간 곳곳에 생긴 곰팡이 등이 담겼다. 제보자는 "식품 위생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식품 기업에서 비위생적인 공정을 통해 생산한 식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부도덕한 기업을 고발하고자 제보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자 던킨도너츠를 운영하는 SPC그룹 산하 비알코리아는 문제가 된 제보 영상에 대한 조작이 의심된다며 "공장 내 CCTV를 확인한 결과 지난 7월 한 현장 직원이 아무도 없는 라인에서 소형 카메라를 사용해 몰래 촬영하는 모습이 발견됐다"는 입장과 함께 CCTV 영상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한 직원이 설비에 묻은 기름을 의도적으로 반죽 위에 떨어뜨리는 것 같은 모습, 반죽에 떨어지도록 기름때를 고무주걱으로 긁는 듯한 모습들이 담겼다. 해당 직원은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소속 던킨도너츠지회장으로 알려졌다.

두 자극적인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로 인해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고 있다. 노조가 개입된 제보인지, 제보 영상이 조작된 것인지는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건 해당 던킨도너츠 제조시설이 실제로 비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걸 당국(식품의약품안전처)이 적발했다는 것, 그리고 SPC그룹과 노조의 갈등이 폭력, 교통사고 등에 이어 소비자 건강에 직접 위해를 끼칠 지경까지 과격해졌다는 데에 있다.

당사자인 노사야 그렇다고 쳐도 정치권마저 이 같은 본질 흐리기에 동조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번 위생 이슈를 터뜨린 한 의원실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SPC그룹의 물타기 수사 의뢰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냈다. 노사 간 갈등을 위생 문제로 비화시키는 데에 일조한 정치인이 '물타기'를 운운하다니, 도대체 누가 '물타기'를 하는 것인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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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타이밍에 벌어진 기가 막힌 일이 하나 더 있다. 주요 정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면서 온나라가 본격 대선정국화되는 길목에서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평가되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에 연루된 것이다. 이른바 화천대유 사태다. 이 사건은 일반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익 배분 구조인 만큼 의혹 제기 초기부터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수사가 진행될수록 위법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점차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하지만 진실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정치권은 너 나 가릴 것 없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물타기' 시도를 하고 있다. 사건 연루자들이 여야 곳곳에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대장동 사태 국정조사, 특별검사 요청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물타기'로 규정하며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연결고리' 찾기에만 집중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정쟁화하는 데에 혈안이 된 모양새다. 

국민 눈높이에서는 거대양당 모두 '물타기'를 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민주당은 대장동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고발 사주 사건을 운운하며 진실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 수용 가능성을 무조건 일축하고 있다.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각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채택도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불필요한 '피켓 논란'을 일으키며 민생 문제를 살펴야 할 국감 첫날(10월 1일)부터 파행을 야기했다. 한 최고위원은 뇌물성과 불법성을 운운하며 제 식구 챙기기에 몰두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천대유 사태의 본질은 '몸통이 누구냐'가 아니다. 몸통은 수사든,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낱낱이 밝히면 된다. 중요한 건 '국민의힘 게이트'인가, '이재명 게이트'인가가 아니라 '공정'이다. 이 사건은 온통 '불공정'스럽다. 대장지구 사업 공모가 나기 불과 일주일 전 급하게 설립된 자산관리업체가 어떻게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 적은 지분을 갖고 수천억에 이르는 배당금과 불로소득을 챙기는 구조가 왜 만들어졌는지,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공익이 무슨 이유로 특정 법조 카르텔의 사익이 됐는지 등 모든 의심과 질문에 대한 답변이 '공정에 반한다'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처럼 '공정'이 본질인 사건의 끝이 정해져 있다. '그래도 합법'이라는 것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발(發) 투기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정과 결과가 공정하진 않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 식으로 LH 투기 사태는 어물쩍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현직 정치인들은 여전히 소속 정당에서 정치활동 중이고, LH에 대한 혁신도 이뤄지지 않았다. 법망의 허술함으로 인해 사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입법적으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마땅한데 아무것도 안 됐다. '물타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을 보니, 화천대유 사태의 끝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물타기' 전략의 주된 목적은 논점을 흐려 여론을 조작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동시에 갈등을 부추겨 편을 가르는 데에 있다. 이는 기득권 집단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주로 쓰는 수단으로, 특정 사건·사안에 대한 후속 조치와 개혁·혁신도 물타기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사회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조국'이라는 프레임으로 '광화문 대 서초동'이라는 갈등 구도를 형성한 뒤 물타기식으로 이뤄진 검찰개혁이 그랬다. 검찰 권력 오남용이 개혁 명분이었는데 오히려 검찰 권력을 더 키웠고, 심지어 그 권력이 살아있는 권력에 장악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는가. 

기업도, 노조도, 정치권도 모두 물타기 판이다. 그야말로 '물타기 공화국'이다. 점점 밋밋해지는 물살에 사회발전이 역행하고 있다. 미묘한 타이밍에 진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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