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굳게 다문 장관의 입술
[기자수첩] 굳게 다문 장관의 입술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10.06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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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욱, 기부 이행 여부 묻자 침묵하다 "내게 맡겨달라"
고위공직자 말의 무게 무거워, 재산 사회환원 약속 지켜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 5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의원들이 대선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 이른바 화천대유 사태에 대한 질의에만 집중하면서 '대장동 국감'으로 변질됐고, 이 과정에서 여야 간 힘겨루기가 과격해져 수차례 감사가 중단된 것이다. 국감의 의미가 퇴색됐고,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감의 의미를 퇴색시킨 건 의원들만이 아니었다. 이날 국토위 국감에 출석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답변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모습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여야 의원들은 노 장관을 향해 대장동 사건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반복했다. 노 장관은 제대로 된 답변을 거의 내놓지 못했다. 대부분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 "여야가 상반된 해석으로 말을 하고 있으니 내 의견을 밝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이었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더불어민주당)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국민의힘)을 공격하는 민감한 질문인 만큼, 노 장관 입장에선 어떤 식으로 답변하든 남은 임기 동안, 그리고 임기 이후 행보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신분임을 감안하면, 특히 이번 의혹 관련 주무부처 중 하나인 국토부의 수장이라면 사회적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내놓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날 개최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서 화천대유 사태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정도로 과도한 기대이익이 나오는 개발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탈법 요인이 있다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긴 하나, 홍 부총리가 최장수 기재부 장관, 1000일 부총리라는 기록을 세운 건 이 같은 공직자의 소신이 있어서로 보인다. '10전10퇴'라는 오명 속에도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일갈을 지속하지 않았는가. 반면, 노 장관은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물음에 사실상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공직자로서도, 국토부 수장으로서도 실망스러운 침묵이었다.

지난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왼쪽)이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 ⓒ 시사오늘
지난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왼쪽)이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 ⓒ 시사오늘

대장동 의혹 관련 답변은 그렇다고 치자. 노 장관의 진짜 실망스러운 모습은 국토위 국감 말미에 나왔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노 장관이 2011년 공무원 특별공급을 통해 세종 지역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실거주를 하지 않고 전세를 놓다가 4년 후 이를 판매한 '갭투기' 의혹을 거론했다. 이 의원은 "노 장관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세종시 아파트 시세차익, 특별공급에 따른 지방세 특례로 감면받은 세금 등 2억3000만 원 가량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기부했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노 장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마스크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이 의원이 갭투기 의혹을 계속 언급하자 "이 문제는 그만 좀…"이라며 어물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재차 "장관 본인 의사가 있으니 했어야 한다. 당시 여당 의원들도 권유한 부분이다. 시세차익을 기부하겠느냐. 언제까지 하겠느냐. 시일을 밝혀달라"고 질의했고, 노 장관은 그제서야 "나에게 맡겨달라. 기부할 의사가 있다. 양심을 믿고 맡겨주면 감사하겠다"고 답변했다.

엄밀히 말하면 노 장관은 기부하겠다고 약조한 적은 없다. 지난 5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그는 "여러 사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거주는 못하고 매각을 했다. 경위와 상관없이 송구하다. 기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노 장관의 '기부에 대해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이 그의 청문회 통과에 과연 긍정적으로 작용했을까, 부정적으로 작용했을까. 물론, 야당인 국민의힘, 정의당 소속 국토위원들의 동의는 얻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노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는 국토위에서 채택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아마 '기부에 대해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 말 때문에 청문회 당시 세종시 투기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십중포화가 멈추지 않았는가. 노 장관이 기부를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반년 가량이 흐른 지금 사회환원은 이행하지 않고 어물대다 '양심'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억울할 소지는 있으리라.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기부 약속은 지켜진 일이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기부를 아예 않거나, 약속한 금액 대비 현저히 적은 기부금을 낸 공직자가 대부분이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을 당시 대형로펌으로부터 받은 수임·자문료 16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한 황교안 전 총리가 그랬고, 지난해 사회적 질타를 받은 가족 펀드를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조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그랬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도 청와대 대변인 시절 투기 논란이 불거진 흑석동 부동산 차익 모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절반 수준만 한국장학재단에 넘겼다. 유인촌 전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재산 사회환원을 약속한 것에 대해 2010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 부분(기부)은 내가 죽기 전에 하면 된다. 날짜를 얘기하긴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부를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자가 뱉은 말의 무게는, 약속에 대한 책임은 무겁다. 늘상 가벼웠다고 해도 무거워야 한다. 고위공직자는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타의 모범을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신뢰다. 신뢰와 신용이 구축된 사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머무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활동과 일상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오늘날, 신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고위공직자의 약속의 무게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특히 그 말로, 약속으로, 공약으로 어떤 식으로든 수혜를 입은 고위공직자는 더더욱 그렇다. 청와대는 노 장관에 대해 "기재부 재임 시절 온화한 성품과 꼼꼼한 업무처리 능력으로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웠으며, '닮고 싶은 상사'에 3차례 선정됐다"고 소개한 바 있다. 양심을 믿고 맡겨달라고 했다. 기부 여부를 감시하기 어려우니 믿어볼 수밖에. 마스크 속 굳게 다문 입술이 아닌 노 장관의 양심을 믿어본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유통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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