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⑨] 진주성 촉석루와 논개…개천 예술제와 유등 축제
[일상스케치⑨] 진주성 촉석루와 논개…개천 예술제와 유등 축제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10.10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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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과 유적의 의미 되새겨
임진왜란 진주대첩, 논개와 김시민
전통을 계승 보존한 남강 유등축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향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 곁을 떠나 인근 경남 진주에서 중학교 3년을 보냈다. 그 전에도 친척집 방문하러 다니곤 해 진주는 익숙하고 인연이 깊다. 진주하면 떠오르는 유적과 역사적인 인물이 있는데, 바로 촉석루와 논개 그리고 진주 목사 김시민이다.

진주 남강 바위 벼랑 위에 높이 솟은 아름다운 누각 촉석루. ⓒ연합뉴스
진주 남강 바위 벼랑 위에 높이 솟은 아름다운 누각 촉석루. ⓒ연합뉴스
촉석루 내부. ⓒ정명화 자유기고가
촉석루 내부.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주 유적 촉석루와 의기 논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부 경남의 대표 유적인 촉석루는 진주 남강 바위 벼랑 위에 높이 솟은 매우 아름다운 누각이다. 전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시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수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듭했다. 임진왜란(1592년) 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1618년 예전의 것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했으나, 안타깝게도 1950년 6·25 전쟁 때 다시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 고적 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을 거두어 복원한 것으로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 밑 남강 바로 옆 논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촉석루 밑 남강 바로 옆 논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논개가 왜장을 유인해 같이 몸을 던진 의암. ⓒ정명화 자유기고가
논개가 왜장을 유인해 같이 몸을 던진 의암. ⓒ정명화 자유기고가

촉석루와 함께 진주를 상징하는 논개는 진주목(晉州牧)의 관기(官妓)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

논개의 영정과 신위가 있는 사당인 의기사. ⓒ정명화 자유기고가
논개의 영정과 신위가 있는 사당인 의기사. ⓒ정명화 자유기고가
평화로운 진주성 내부. ⓒ정명화 자유기고가
평화로운 진주성 내부.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주성과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

촉석루와 논개 사당 등을 품고 있는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해 삼국 시대부터 조성된 성이다. 고려시대 말기인 1377년 빈번한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토성으로 쌓았는데, 1379년(고려 우왕 5) 돌로 쌓는 도중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임진왜란 후에야 남북으로 내성을 쌓아 마무리했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 지방을 지키는 길목이어서 진주성을 두고 조선과 왜의 다툼이 매우 치열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이룬 곳이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김시민 장군 전공비,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선조 25년(1592년)  왜군 2만이 침략해 오자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1554∼1592)과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가 진주성을 지키면서 3,800여 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합쳐 왜군을 물리쳤는데, 이것이 진주 대첩이다.

하지만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는 민. 관. 군 7만여 명이 왜군 10만여 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국하는 비운을 겪었고, 가족들까지 모두 남강에 투신했다고 전해진다.

1592년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김시민 장군의 전공을 기록해 놓은 김시민 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는 현재 진주성 내의 계사순의단(옛날에 충민사가 있었던 자리) 옆에 비각을 마련하여 보존하고 있다.

진주 남강 유등 축제.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주 남강 유등 축제.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주 개천 예술제

매년 가을 진주성에서는 개천 예술제가 개최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정부수립 이후 1949년에 시작된 것으로 약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축제다. 50여 년 전 중학교 때 친구들이 개천 예술 문학제에 참석해 입상한 모습도 선명히 떠오른다.

축제엔 다양한 예술문화행사, 문학모임과 함께 농악경연대회, 전국 궁도대회, 장사 씨름대회 등의 민속경연이 실시된다. 특히 유등놀이와 진주 소싸움, 진주농악과 줄다리기 등도 볼 만하다.

10월 축제를 주관하는 진주시와 단체는 올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시민과 관광객 안전을 위해 11~12월로 연기, 분산해 개최한다고 밝혔다. 2021년 제70회가 되는 개천예술제는 11월 7일부터 11월 14일까지 8일간 열기로 했다. 이어 진주남강유등축제는 12월 4일부터 12월 31일까지 28일간,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은 12월 4일부터 12월 12일까지 9일간 개최한다.

남강 유등축제

그 중 유등축제는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행사로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이 2만의 왜군을 맞아 싸울 때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 신호로 횃불과 함께 등불을 띄운 데서 비롯되었다. 또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막는 군사전술과 진주성의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도 쓰였다.

그 후 2차 진주대첩에서 순절한 7만 명의 민관군과 애국혼을 기리고 전통을 계승, 보존하기 위해 오랜 세월 유등 풍습이 이어져 1949년부터 유등놀이로 정착됐고, 2010년과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선정했다.

등(燈)이 주제인 만큼 주요 행사가 야간에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 아군 및 왜군 복장을 갖추고 등(아군 등, 왜군 등)과 불화살, 물대포, 조총, 횃불 등으로 진주성 대첩을 재현하고 있다. 가족, 단체의 소망을 적어 하늘로 날리는 풍등(風燈) 날리기 등의 행사도 열린다. 촉석루와 진주교, 유등이 어우러진 남강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고, 유등축제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어우러지므로 깊어가는 가을밤을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은 역사를 어떻게 인식할까. 단언컨대 '과거' 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다. 그 과거라는 역사 속 인물, 특히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의인의 존재는 충분히 기리고 숭배 받을 만하다. 촉석루와 의암, 그리고 논개와 김시민의 흔적을 다시 보며 새삼 지난 역사적 인물의 공적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유등 축제의 기원이 임진왜란 당시 전통의 계승과 보존에서 비롯됐다니 더욱 의의가 크고 감동이 몰려온다. 도심 속 한 폭의 고전 그림 같은 진주성을 둘러보고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일상의 시름이 사라지고 유유히 흐르는 남강 물길처럼 평온하고 상쾌했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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