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人] 이완구, YS 권유로 정치 시작…충청 대망론 불 지핀 ‘포스트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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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人] 이완구, YS 권유로 정치 시작…충청 대망론 불 지핀 ‘포스트 JP’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1.10.16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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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생활 중 향년 71세의 나이로 하늘의 별 돼… “너무 슬프고 슬프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병으로 지난 14일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 장례시장에 마련됐다.©연합뉴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병으로 지난 14일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 장례시장에 마련됐다.©연합뉴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 14일 별세했다. 항년 71세. 혈액암이 재발해 투병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국가를 위해 기여할 나이에 일찍 떠나 안타깝다.”서울 서초구 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는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충청 대망론하면 고인의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다. 충청 거목으로 성장하며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렸다. JP는 이 전 총리를 가리켜 "번개가 치고 나면 먹구름이 올지 천둥이 올지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그만큼 아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계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권유로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충남 홍성 청양에 출마했다. JP의 자민련이 충청권을 싹쓸이할 때였다. 신한국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충남에서 당선됐다. 이후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겨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16대 재선에도 성공했다. 한나라당(신한국당 후신)으로 다시 온 것은 2002년 대선을 앞둘 때였다. 

친박(박근혜)계가 된 것은 2009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충남지사이던 이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다. 대통령이던 MB(이명박)는 세종시 수정안을 방침으로 정했고, 단식투쟁을 벌이던 이 전 총리는 이에 반발하며 지사직을 사퇴했다. 

2012년 불행하게도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골수이식을 받고 회복돼 2013년 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해 당선됐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임 후 2015년 43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 통틀어 유일한 정치인 총리였다. 

하지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성완종 리스트’ 연루 혐의로 취임한지 63일 만에 내려왔다.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해 4월 27일 이임식에서 이 전 총리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한다”는 말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후 2년여간의 재판을 거쳐 2017년 12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50년생,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재학시절 행정고시에 합격해 이른 나이에 공직에 입문했다. 승승장구하며 최연소 경찰서장, 최연소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을 역임했다. 

빈소에는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너무 슬프고 너무나 슬프다”고 적었다.

고인이 남긴 마지가 말은 “우리 국민 모두 행복했으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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