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⑫] 내장산에서 창덕궁 후원까지, 가을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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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⑫] 내장산에서 창덕궁 후원까지, 가을이 깊었다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10.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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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내장산과 양구 파로호의 단풍 절경에 도취
가을, 대학 캠퍼스와 고궁에도 살포시 내려앉다
창덕궁 '연경당 진작례 재현 공연' 등 각종 행사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시간이 한 해의 후반부로 향하고 있다. 계절의 백미 가을, '리처드 클라이더만'의 피아노 연주 '가을의 속삭임'이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절기상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나며 전국은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 단풍을 즐기려는 나들이 인파가 북적거린다. 설악산국립공원에는 단풍의 향연을 만끽하려 비선대까지 수만 명의 탐방객이 몰렸다. 

다만 올 가을은 짧고 한파 영향으로 전국 단풍이 예전처럼 곱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뭇잎이 붉게 물들기도 전에 가을 한파에 말라버린 탓인 게다. 기온이 내려가 나뭇잎에서 엽록소가 빠져나가고 노란색과 붉은색 색소가 보이면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10월 중순까지 예년보다 기온이 높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단풍 특유의 색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설악산 같은 고지대엔 단풍이 들자마자 눈이 내려 나뭇잎이 얼어붙기까지 했다. 

이러한 기후 변화로 한국 가을의 대명사인 곱디고운 단풍이 점점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전만 못하다는 단풍 근황에도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만추의 여정을 떠나보자.

가을 내장산은 정말 예뻤다

붉게 타는 듯한 정열적인 내장산 단풍. ⓒ정명화 자유기고가
붉게 타는 듯한 정열적인 내장산 단풍.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장산 등산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장산 등산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중학교 때 가족들과 처음 간 내장산, 혼미할 정도로 예쁜 단풍 행렬에 감탄을 연발하며 도취했다. 가을이면 그때 그 환상적인 내장산 나들이 풍경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수십 년 만에야 내장산을 찾아 소원 풀이했다. 수많은 인파들 역시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인산인해가 따로 없어 단풍도 단풍이지만 사람 구경도 한몫했다.  

가을철 단풍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옛날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던 내장산이다. 백제 때 영은조사가 세운 내장사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쌓았다는 동구리 골짜기의 내장산성이 있으며, 금선 폭포·용수 폭포·신선문·기름 바위 등도 유명하다. 등산로는 능선 일주 코스와 백양사까지의 도보 코스가 주로 이용된다. 1971년 서쪽의 입암산(笠巖山:654m)과 남쪽 백양사 지구를 합한 총면적 75.8㎢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내장산 우화정 

우화정. ⓒ정명화 자유기고가
우화정.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장산(內藏山) 국립공원 내에 있는 우화정.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昇天)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우화정(羽化亭)’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482년 무렵 내장산성이 있었던 곳으로 승군과 왜적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장소이다. 오늘날에는 당시의 시설은 남아 있지 않고 연못 가운데 자연석과 콘크리트로 바닥을 다지고 흰색 기둥에 파란 지붕을 올린 정자 형태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연못가에는 당단풍, 수양버들, 두릅나무, 산벚, 개나리, 산수유, 복자기 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 가을이면 맑은 연못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비쳐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시인 김남주의 비.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시인 김남주의 비. ⓒ정명화 자유기고가

등산로 사이사이 보이는 목판 위 한 편의 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뒹구는 낙엽 사이 흐르는 시 한수 나직이 읊조려 보면 어떨까. 낙엽 내음과 함께 또 다른 감흥이 몰려올 것이다.

어떤 비는 당돌하게 왔다가
젊은 날의 언덕을 망가뜨려 놓지만
비의 계절에 미쳐 버린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지 않는다(비/김남주)  

강원도 양구 파로호

양구에서 바라본 파로호. ⓒ정명화 자유기고가
양구에서 바라본 파로호. ⓒ정명화 자유기고가

북쪽으로 올라가 본다. 유명세를 자랑하는 설악산 산행을 수차례 다녔지만, 이에 못지않게 파로호의 가을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색다르다. 코발트빛 호수와 함께 어우러진 주변 단풍 든 정경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인적이 드물고 적막해 이곳 가을은 또 다른 황홀경에 빠져 들게 만든다. 정적을 깨고 건너편 산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가 정겹다. 속세를 벗어나 시간이 멈춘 듯, 신선이 따로 없다. 

파로호는 역사적 상처가 깊은 곳이다. 1944년 건설된 화천 댐이 완공되면서 형성된 인공호수.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과 화천읍 인근에 있다. 원래 명칭은 대붕호(大鵬湖), 혹은 화천호(華川湖)였다. 그런데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 5월 인근에서 한국군과 미국군이 중국군을 격파한 곳이라,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 명명해 친필 휘호를 내린 이후, 파로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대학 캠퍼스의 가을 

은행잎 노랗게 물든 연세대 백양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은행잎 노랗게 물든 연세대 백양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울긋불긋 옷 입은 담쟁이 넝쿨이 강의실을 뒤덮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울긋불긋 옷 입은 담쟁이 넝쿨이 강의실을 뒤덮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색창연한 모교 캠퍼스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가을 운치와 젊음의 낭만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교정에서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미풍이 실리는 낙엽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이중주를 이뤄 무척 조화롭다. 따스한 햇볕 아래 벤치 곳곳에 앉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청춘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유유자적 행복에 겹다.

윤동주 시비 주변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서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의 고뇌가 묻어 있는 서시와 함께 거닐었던, 추억이 깃든 캠퍼스 곳곳에 낙엽이 뒹군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소상히 기억하는 이곳, 가을이 되면 친구들과 노닐던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 시간이 흐르고 옛사람은 떠나가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캠퍼스의 가을을 물들이고 있겠지. 세월의 무상함이 몰려와 잠시 허탈해지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일상으로 돌아간다.

만추의 고궁 

창덕궁 전경. ⓒ문화재청 제공
창덕궁 전경. ⓒ문화재청 제공
한 폭의 그림 같은 창덕궁의 가을. ⓒ정명화 자유기고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창덕궁의 가을.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궁의 후원까지 가을은 은밀하게 스며 들어, 신비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궁의 후원까지 가을은 은밀하게 스며 들어, 신비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연의 선물인 울긋불긋 가을 색을 감상하기 위해 잠시 떠나고 싶은 게 가을을 맞는 행락객의 마음이다. 단풍 명소로 유명한 설악산, 내장산 등 멀리 가지 않더라도 서울 근교에서 산책하며 단풍을 봐도 좋지 않겠나.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전환을 앞두고 궁궐과 조선왕릉에서 단풍 절정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 궁능 유적 본부는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궁궐과 조선왕릉의 가을 단풍 시기를 안내하고 다양한 가을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창덕궁 연경당에선 효명세자의 효심을 담은 춤 공연인 ‘연경당 진작례 재현 공연’(11월 4~5일), 국립국악원과 함께하는 ‘창덕궁 풍류’(11월 9~12일) 마당이 펼쳐지고, 덕수궁에선 전통과 현대 미술의 만남인 ‘상상의 정원’(11월 28일까지) 전시가 열린다.

특히 창덕궁의 가을은 화려함과 단아함이 단연 최고이지 싶다. 고궁의 후원까지 가을은 은밀하게 스며들어 신비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신선한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거리며 뜨락에 잎이 떨어져 장관을 이룬다. 후원을 보려면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번잡하지 않고 여유롭고 우아하게 가을의 고즈넉함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설렘까지 안기는 고궁 단풍 나들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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