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서거 6주기 청년 대담] 이동수·조주영 “YS, 지역주의에 가둔 평가 옳지 않다”
[YS 서거 6주기 청년 대담] 이동수·조주영 “YS, 지역주의에 가둔 평가 옳지 않다”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11.09 13: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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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조주영 청년김영삼연구회 대표
“YS·DJ 모두 1987년 대선 지역주의 책임 있어”
“3당 합당이 야합?…당선 후 행보로 평가해야”
“YS 당선…지역주의 정치의 수혜자이자 피해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3일 동작구 김영삼도서관에서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조주영 청년김영삼연구회 대표의 대담이 진행됐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질문 하나를 위해 성사된 대담이었다. 바로 ‘지역주의’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에게 우리나라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역주의 책임을 묻곤 한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김(金)의 분열로 지역주의가 심화됐으며, 1990년 3당 합당으로 호남이 고립됐다는 논리다. 이에 더해 1992년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 이후 당선된 YS가 결과적으로 지역주의 정치의 수혜자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그러나 그를 지역주의에 가둔 평가는 옳은 것일까. YS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지역주의에 동등한 책임을 지는 건 또 맞는 걸까. 그는 진정 분열 정치의 수혜자일까 피해자일까. 30여 년이 흐른 지금, 후대의 재평가는 어디에 더 무게를 둘까.

YS 서거 6주기를 앞두고 <시사오늘>은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두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YS 생전보다 사후가 더 익숙한 청년 세대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YS 일생을 담은 <어른이 정치사>를 출간했다. 조주영 청년김영삼연구회 대표는 10여 명의 청년들과 한문으로 된 YS의 오래전 저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있다.

대담은 3일 동작구 김영삼도서관에서 진행됐다. 6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30분 더 길어져 90분 만에 끝났다.

 

1987년 대선이 지역주의 출발점일까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가 수용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함께 이뤄낸 성과였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해 함께 했던 이들은 대통령 선거 앞에서 하나가 되지 못했다. 결국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YS, 평화민주당 DJ, 신민주공화당 김종필(JP) 등 4명의 다자 구도로 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36.6%의 득표율을 얻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YS(28%)와 DJ(27%)의 득표율을 합하면, 노 전 대통령보다 18.4%포인트 더 높았다.

선거 패배만큼이나 뼈아픈 결과는 지역구도 강화였다. 선거 과정에서 노태우는 대구·경북(TK), YS는 부산·경남(PK), DJ는 호남, JP는 충청을 지역 기반으로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렇게 분열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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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대표는 “결과적으로 분열에 따른 책임은 YS와 DJ 두 사람이 함께 져야 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김 분열로 지역주의가 심화됐다는 평가를 어떻게 보나.

이동수: “지역주의는 YS만의 문제가 아닌, 그 시대의 문제였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3김 정치의 빛이었다면, 지역주의는 그림자였다. 독재 정권과 싸우기 위해서는 기반이 필요했다. 그 시절에는 세대나 이념적인 기반 이전에, 지역이 기반이 됐다.”

조주영: “결과적으로 지역주의가 심화된 것은 맞다. 왜냐하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만약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독재 대 반독재 구도로, 민주화 세력이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 결집해 힘을 발휘했을 거다. 그러나 DJ가 단일화를 거부하면서 양자 구도가 아닌, 다자 구도에서 승리를 거둬야 했다. 잘못된 구도에서 최대한 자신의 지지층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분열에 따른 패배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해 8월 YS의 상도동계는 당 사무총장이었던 故김동영을, DJ의 동교동계는 이용희 전 의원을 내세워 단일화 협상에 들어갔다. 3개월 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YS는 DJ가 제안한 ‘미창당 지구당 분할’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민주당 내 경선 및 단일 후보를 낼 것을 제안했다.

당시 지구당위원장(당협위원장)은 92곳 중 36곳이 공석, 나머지 56곳은 YS측이 30대 26으로 더 많았다. 그러나 DJ는 공석이던 36석을 18대 18이 아닌, 자신에게 10석을 더 준 23대 13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YS에게 불리한 조건을 단일화를 위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DJ는 경선 일정이 미뤄졌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4자 필승론’, 즉 4명의 후보가 나오면 호남과 수도권 지역의 표를 가져간 DJ가 이긴다는 구상이었다.

-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지역주의 심화에 대한 책임을 YS와 DJ에게 똑같은 무게로 지는 게 맞을까.

조주영: “물론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은 DJ에게 있지만, 지역주의 책임은 YS나 DJ나 다를 게 없다. 4자 필승론을 내세우며 DJ가 단일화 요구를 묵살했기 때문에 정권 교체에 실패한 것은 맞지만, 결국 선거 과정에서는 둘 다 표를 위해 지역주의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동수: “본인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DJ를 좋아하면 YS를, YS를 좋아하면 DJ를 비판하는 측면이 있다. 수십 년 동안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과 싸우다, 당장 대통령이 될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쉽게 양보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분열에 따른 책임은 두 사람이 함께 져야 한다.”

 

3당 합당은 호남을 고립시켰을까


1990년 YS는 노태우, JP와 3당 합당을 했다. 그렇게 지금의 보수 세력이 만들어졌다. 민주자유당의 탄생이었다. 그의 결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금까지도 엇갈린다. 군정 종식이란 대의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란 호평과, 대통령 병 즉 정치적 야심이 불러온 ‘기회주의 야합’이라는 혹평이 그것이다.

YS는 2009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합당 당시 정치 상황이 경상도와 전라도가 완전히 쪼개져 있었고, 경상도는 경남과 경북이 갈라져 있었다”며 “합당을 안 하고는 군사 정권을 못 끝내겠다는 판단에, 이를 업고 정권 교체를 하려고 한 것”이라 후술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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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영 대표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역시 봐야 한다”며 당선 이후 YS의 행보를 설명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1990년 3당 합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동수: “정치인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한가지 이유만으로 행보를 결정하지 않는다. 3당 합당도 마찬가지다. 군정 종식을 위한 구국의 결단인 측면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다는 계산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3당 합당이나 1997년 DJP 연합이나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YS의 3당 합당으로 민주주의에 역행했다는 평가는 무리가 있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이후에는 전두환·노태우를 구속했기 때문이다.”

조주영: “3당 합당이 야합이라는 것은 DJ에서 바라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DJ 쪽에서는 3당 합당이 야합이라고 표현하면서, DJP 연합은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정권 교체라 한다. 그러나 3당 합당 전에 YS가 DJ와 접촉하기도 했으나, 그때도 무산됐다.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역시 봐야 한다. YS의 3당 합당이 야합이었다면, 적당히 군부와 타협하며 안위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선 이후 그는 하나회를 청산하고,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1987년 대선 전 YS가 DJ의 ‘지구당 분할’ 요구를 받았듯, 1990년 3당 합당 전에도 DJ의 ‘소선거구제’ 요구를 수용했다.

대선 이듬해인 1988년 13대 총선이 있었다. 두 사람은 대권 패배를 교훈 삼아 야권 통합을 시도했다. 이때 DJ의 요구는 소선거구제로의 전환이었다. 당시 YS의 최측근이었던 김덕룡과 차남 김현철이 YS를 속리산까지 쫓아가 “소선거구제로 총선을 치를 경우 민정당 평민당에 이어 3당이 될 것”이라며 말릴 만큼 그에겐 불리한 조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소선거구제 전환은 이뤄졌으나, YS와 DJ의 통합은 실패했다. 이후 YS는 3당 합당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호남 포위론 논쟁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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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대표는 “3당 합당이나 1997년 DJP 연합이나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3당 합당이 호남을 포위해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어떻게 보나.

조주영: “결과적으로 호남을 포위했기 때문에 호남 포위가 된 것이지, 3당 합당이 호남을 포위하려고 작정하고 한 게 아니었다. 호남을 고립시킬 의도가 있었다는 건 그쪽에서 증명해야 되는 거 아니겠나. 또한 3당 합당은 DJ가 빠졌기 때문에 호남 포위로 보는 거지, JP가 빠졌다면 충청도 포위론이 나왔을 것이고, YS가 빠졌다면 PK 포위론이 나왔을 것이다. 추종하는 지역 지도자가 협상에서 빠졌기 때문에, 그 지역을 버린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동수: “처음부터 호남을 포위하기 위한 목적에서 3당 합당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 결과적으로는 1987년 대선 때 단일화 실패와 마찬가지로, 1990년 3당 합당도 지역주의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YS는 DJ와의 통합을 최우선적으로 뒀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합이 불발되자 군정 종식을 위해 3당 합당을 감행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지역주의 책임을 다른 정치인들과 똑같이 지우는 게 맞는가.

조주영: “정치는 과정만큼이나 결과가 중요하다. YS는 DJ의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협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 DJ가 협상을 거부하면서, YS는 파트너로서의 DJ에 대한 한계를 느꼈을 것 같다.

협상에 한계를 느꼈을 때 방법은 두 가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추진하거나, 원칙을 지키다 몰락하기를 택할 수 있다. 그런데 YS는 몰락하지 않은 정치인이다. 3당 합당이라는 수단을 이용했기에, YS의 정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YS는 지역주의 정치의 수혜자일까


1992년 YS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54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1971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대통령에 첫 도전장을 내민 지 21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선거 3일 전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다. 정주영 측에서 터뜨린 녹취록에는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민정계의 지역적 기반이었던 TK에서는 YS에 대한 반감 여론이 있었다. 이 틈을 정주영이 파고 들었다. 이에 민자당은 TK 민심을 다잡는 선거 전략으로 지역감정 조장을 논의했고, 이를 정주영 측이 몰래 녹취해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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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영 대표는 “YS는 지역주의의 피해자이자 수혜자”라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1992년 YS가 당선되던 해, 부산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내용이 폭로됐다. 결과적으로 YS가 지역주의 정치의 수혜자가 아니었을까.

조주영: “피해자이자 수혜자였다. 직전 1990년 총선에서 TK는 반YS 정서가 강했다. PK는 부마항쟁을 일으킨 주범이자, 언제 또 민주화 노름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군부 세력의 생각이었다. 민주화 세력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표를 받지 못했던 것은 지역주의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TK 민심을 다잡기 위해 영남을 결집시켜 후보가 된 것은 지역주의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이동수: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킨 것은 김기춘으로, 과잉 충성 하다 생긴 문제이지, YS가 지역감정을 조장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정치를 했던 3김은 지역주의의 수혜자인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DJ 역시 전국적으로는 피해자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지역 안에서는 안정적인 표를 확보함으로써 수혜를 받았다.”

당선 후 YS의 행보는 지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나회를 척결하고,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면서 ‘군정 종식’이란 그의 오랜 목표를 이뤄냈다. 양김이 분열하기 전 마지막 연대였던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YS는 DJ 측 동교동계와의 50대 50의 지분 배분을 통해 연대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반군정 세력을 모으기 위해 JP에게 민추협 동참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DJ와의 여러 차례 단일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 ‘결과적 지역주의’를 가져왔다는 평도 무시 못 할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역주의에 편승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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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대표는 “YS가 의도적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YS가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를 하려고 했다고 보나. 군정 종식이란 대의를 좇던 YS가 되레 지역주의에 끌려들어간 측면이 있지 않을까.

이동수: “YS가 의도적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하지 않았다는 데는 공감한다. 집권 이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을 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민주화 진영 내에서 DJ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면서 그에 따른 부산물로 지역주의가 심화된 측면은 있다고 본다. 만일 두 사람의 고향이 같았다면 단지 정치세력 간 갈등으로 비추어졌겠지만, 어찌 됐든 두 지역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아니었나. 민추협 결성 당시 동교동계에 50대 50 지분 배분을 제안한 것 역시 지역주의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정치 세력으로서 동교동계 포용을 위한 방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과정 못지않게 결과도 중요하다. 지역주의를 청산하는 데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S가 갈등‧분열보단 대화‧포용의 인물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조주영: “이 점이 상당히 애매하다. PK는 YS가 3당 합당을 단행한 직후 곧바로 보수 정당으로 표심을 옮겼다. 그래서 3당 합당에 반대해 민주당계 정당으로 옮겨간 노무현은 부산에서 재선을 노렸으나 낙선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YS가 지역주의 수혜를 누린 인물이 맞다.

그러나 YS 성격상 ‘분열의 정치’를 펼칠 인물이 아니다. 민추협 결성과 신민당 창당 과정에서 DJ계 인사들을 얼마나 중용했는가. 당선 후에는 5·18 특별법을 제정해 호남의 한을 풀어줬다.

3당 합당 직후 민정계 김용태 의원을 등용했지만, 이는 계파 안배 차원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YS가 뺄셈의 정치를 추구했다면, 집권 이후에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DJ의 정치적 고향인 호남에 신경 쓸 이유가 없지 않는가. 따라서 결과만을 놓고 본인의 의중을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청년 세대, 지역주의를 넘을 수 있을까


3김 정치의 그림자였던 지역주의, 미래 청년 세대는 이를 넘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보다 더 복잡해진 분열의 시대에 차기 대권 주자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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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영 대표는 “지역주의가 여전히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청년 세대에게 지역주의가 여전히 선거에 중요하게 작용하나.

이동수: “청년 세대에 지역주의는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친다. 단언컨대 0.1%도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대에 나는 영남 출신이니까 호남 사람이랑 상종 안 한다는 청년은 아무도 없다. 호남에서 홍준표 후보의 20대 남성 지지율만 봐도 이재명 후보의 두 배를 넘는다. 청년 세대에게 가장 압도적인 갈등은 젠더 갈등이고, 지역 갈등은 큰 영향력을 차지하지 않는다.”

조주영: “나는 지역주의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2030세대는 아직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청년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에서 호남 후보는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영남 후보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아직 지역주의가 공고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호남 출신 이낙연 후보보다 영남 표를 찢을 수 있는 영남 후보 이재명이 경쟁력 있다고 하지 않나.”

- 2030 표심이 2022년 대선의 승부처라고 보는 시각에 공감하나.

이동수: “물론 2030의 투표율이 낮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보면 4050은 대체로 민주당, 6070은 국민의힘을 찍는다. 반면 2030은 부동층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순간적인 응집력이 크다. 이러한 응집력이 오세훈을 서울 시장으로, 이준석을 당 대표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조주영: “여전히 주류는 40~70대다. 청년 세대가 변화의 조짐을 보일 수는 있어도, 정치 문화를 뒤엎지는 못할 것이다.”

- 지역주의를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동수: “지역주의는 이미 2030에서 끝났다고 본다. 그보다 진보 보수 간의 이념적 양극화나 젠더 갈등이 더 심하다고 본다. 현재는 정치권에서 젠더 갈등을 조장해 확실한 표를 끌어오는 측면이 있다. 이를 요즘 표현으로 ‘코인 탄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되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대상으로만 이들을 이용할 게 아니라, 정책 과정에 참여시켜 현명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조주영: “모든 사회적 갈등은 먹고 살기 힘들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지역주의가 호남에서 심화된 이유는 박정희 정권에서 영남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개발하면서, 호남에서 위기의식이 발현됐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파이를 키워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 지역주의가 곧 오늘날 진보 보수간 진영 갈등으로 발현된 것이 아닐까. 다원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영남에서는 우파만, 호남에서는 좌파만 있을까.

조주영: “대표적으로 박주선, 유성엽 의원은 과거 민주당이었지만, 중도 우파 성향이 강했다. 민주당을 나와서도 만든 정당 이름이 민주평화당이었다. 우파 성향이 있음에도 민주당에서만 활동할 수 있고 민주당에서도 이들을 수용했던 것을 보면, 지역 갈등과 진영 갈등을 동일한 맥락으로 보기 힘든 것 같다.”

이동수: “영호남에서 여전히 지역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호남은 모두 좌파, 영남은 모두 우파라는 인식은 맞지 않다. 소선거구제 하에 1등을 차지하지 못할 뿐, 최근 선거의 2등 결과를 보면 지역주의가 과거에 비해 많이 옅어진 건 확실하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두 사람은 이 시대에 필요한 YS 정신으로 ‘개혁에 대한 용기’와 ‘국민 통합’을 언급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이 시대에 필요한 YS 정신은 무엇인가.

이동수: “대통령은 ‘계절을 바꾸는 사람’이 돼야 한다. YS는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독재에 대한 항거가 마침내 세상을 바꿔 문민 시대를 열었다. 당선 후에는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와 같은 시대적 의제를 제시해왔다.

하지만 오늘날엔 계절을 바꾸기 보다는, 바뀐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꽃을 심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어느 계파 출신인지 따지며 서로 발목 잡기 바쁘다. 차기 대권 주자는 시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YS처럼 개혁할 용기, 상대 진영과 손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조주영: “YS가 1979년 제명 후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 길을 선택할 것’이란 말을 했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임기가 정해져 있다 보니,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할 충동에 빠지기 쉽다.

대표적으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그렇다. 자신의 2030대 남성 지지층 확보를 위해 다른 계층을 먹잇감으로 던져준다. 나경원·주호영을 시대착오적인 꼰대들로 비하하거나,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워 여성을 배척하는 식이다. 그러나 자신의 팬덤을 위해 사회 분열을 초래하는 지도자는 안 된다. YS처럼 국민을 위한 길을 펼쳐나간 사람은 훗날에라도 재평가될 것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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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앙 2021-11-09 20:02:35
이곳 매체에서 지난번 조주영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접한적이 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네요^^

김영삼 전 대통령님의 정신을 이어 받아 차세대 대한민국 리더로 거듭 나시길 응원합니다~!!

-자칭 조주영빠 1호- ^^

정치도사 2021-11-09 16:41:54
김영삼의 정신을 잡아야 차기 대선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