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⑮] 사찰 탐방-양산 통도사와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일상스케치⑮] 사찰 탐방-양산 통도사와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11.21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도사 8경 중 으뜸인 무풍한송로 비경
선사들 지혜로 수백년 지켜온 소나무길
삼보사찰인 통도사,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화재 보고로 새로운 수장고 건립 추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찬 바람과 이른 첫눈에 벌써 겨울인가 하며 계절이 급하게도 서둔다 싶었다. 그렇게 가을이 저만치 밀려 가나 했더니 미련이 남았는지 떠나지 못하고 며칠째 주변을 서성거린다. 자연의 변덕이 심하다 못해 남녘 지방 한낮엔 마치 따스한 봄날처럼 햇살이 내리쬔다. 시골집 마당 언저리에 길게 드리운 가을의 치맛자락 끝을 부여잡고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문득 산사의 가을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영축총림. ⓒ정명화 자유기고가
영축총림. ⓒ정명화 자유기고가

구례 화엄사, 합천 해인사에 이어 세 번째 사찰 탐방지로 영축산 자락에 있는 양산 통도사로 떠나본다. 통도사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둔 우리나라 삼보 사찰 가운데 불보종찰로 손꼽힌다. 그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영축총림은 통도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총림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한다. 원래 뜻은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해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통도사의 백미 무풍한송로

통도사 입구부터 줄지어 선 소나무들이 숲길을 이룬 무풍한송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통도사 입구부터 줄지어 선 소나무들이 숲길을 이룬 무풍한송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장관을 펼치는 소나무들의 행진. ⓒ정명화 자유기고가
장관을 펼치는 소나무들의 행진. ⓒ정명화 자유기고가

본격적인 통도사 진입 전, 영축산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무풍한송로. 통도사를 찾은 탐방객들은 맨 먼저 이 소나무들의 영접을 받는다. 통도사 입구부터 줄지어 선 소나무들이 숲길을 이룬 무풍한송로는 통도사 8경 중 첫 번째로 꼽힌다.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자연스레 엉커서 도열해 있다. 바람이 춤춘다는 무풍교(舞風橋)에서 역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원 입구 선자(扇子) 바위까지 1.5km 오솔길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 주말, 가을의 끝자락에 사찰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 들어섰다. 보통 때도 통도사 무풍한송로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소나무에 실려오는 바람과 소나무 향에 취해 걷는다. 심호흡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솔향이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듯하다. 불교신자이던 아니던 모든 사람들이 소나무 숲에서 힐링을 하고 돌아간다. 이 길은 2018년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수백년의 모진 풍파를 견뎌 온 노송의 기개와 품격. ⓒ정명화 자유기고가
수백년의 모진 풍파를 견뎌 온 노송의 기개와 품격. ⓒ정명화 자유기고가

선사들의 지혜로 살아남은 숲

수백 년 동안 의연하게 이 길을 지켜온 소나무들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 사람들이 전국의 좋은 소나무들을 거의 다 베어갔다고 한다. 통도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때 구하와 경봉 스님이 지혜를 냈다. “어차피 베어갈 거면 통도사 저 안쪽에서부터 베어 가라.”

영축산 중턱 소나무부터 먼저 베어가라고 한 것. 산문 입구 소나무는 산 위쪽의 소나무를 다 베어 가고 난 뒤에 베어가라고 한 것이다. 옛날 절 아래 마을에서도 수구막이 소나무는 절대로 베지 못하도록 했다. 마을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런 기지를 발휘해 통도사 산문 입구의 소나무는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게 됐다.

무풍한송로 끝지점에서 내를 사이에 두고 갈라졌던 차도와 잠시 만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무풍한송로 끝지점에서 내를 사이에 두고 갈라졌던 차도와 잠시 만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무풍한송로 내 건너편으로는 차도가 있다. 차를 이용해 통도사로 들어가는 길이 있지만 이 멋진 길을 놓아두고 그런 선택을 한다면 피치 못한 경우가 아니고선 비추다. 영축산문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곤 이 길의 시작부터 들어서는게 최선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중간에 소박한 약수터와 정자도 있어 잠시 피곤한 발을 쉴 수도 있다. 걸어서 20~30분 정도 소요된다.

긴 역사를 지켜온 고목들의 모습에 경의를 느낀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긴 역사를 지켜온 고목들의 모습에 경의를 느낀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영축산 통도사

영축산 통도사 일주문. 이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며, 기둥 좌우의 불지종가 국지대찰은 해강 김규진 작품. ⓒ정명화 자유기고가
영축산 통도사 일주문. 이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며, 기둥 좌우의 불지종가 국지대찰은 해강 김규진 작품. ⓒ정명화 자유기고가

긴 무풍한송로를 걸어 들어가면 그제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통도사.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 율사가 창건한 천 년 고찰로 해인사,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 사찰로 불린다. 낙동강과 동해를 끼고 있는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산세가 비슷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통도사의 이름은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금강 계단을 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불이문 입구.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이문 입구. ⓒ정명화 자유기고가

통도사는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로 앞뒤 폭이 좁고 중앙이 집중된 형태다. 오른쪽에는 영축산이 위치하였고 왼쪽에는 계곡이 바짝 붙어있어 규모에 비해 사찰 부지로는 비좁은 편에 속한다.

삼층석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삼층석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삼층석탑, 2층 기단위에 3층 탑을 올린 보물 1471호다.
 
통도사 상징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통도사 대웅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통도사 대웅전(大雄殿)은 상로전(上爐殿) 영역의 중심건물이자 사찰을 대표하는 목조건축물로 국보 제290호다. 통도사의 상징인 금강계단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세문을 통과하면 만나게 된다.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 대웅전, 서쭉은 대방광전, 북쪽은 적멸보궁이라는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사리탑이 보인다. 자장율사가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어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으며, 646년(선덕여왕 15)에 처음 지은 후 수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 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우운대사(友雲大師)가 고쳐지었다.

대웅전 남쪽 금강계단 현판이 걸려있다.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대웅전 남쪽 금강계단 현판이 걸려있다.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통도사는 국보 1건, 보물 26건 및 도지정문화재 62건 등을 포함해 문화재 약 3만여 점을 소장한 한국 불교 문화재의 보고다. 1999년 개관한 한국 최초의 불교 전문 박물관인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있어 그동안 문화재 수장과 관리에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유물로 이미 공간적인 한계에 다다랐을 뿐만 아니라, 시설이 낡아 체계적인 유물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와 새로운 수장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에 새로운 수장고가 지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양산시와 통도사는 문화재청 국비와 도비·시비를 합쳐진 예산 총 105억 원 시업비로 지하 1층 지상 1층, 1134평 규모의 수장고 건립 공사를 본격 시행한다고 16일 밝혔다.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통도사 수장고는, 단순히 유물을 수장·보관하는 폐쇄적인 수장고가 아닌,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방문객이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수장고’ 형식으로 지어지게 될 예정이라 기대가 크다.

왼편에 보이는 성보박물관. 1987년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찰 박물관이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왼편에 보이는 성보박물관. 1987년에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찰 박물관이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속세로 들다

속세로 돌아 가는 길목의 무풍한송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속세로 돌아 가는 길목의 무풍한송로. ⓒ정명화 자유기고가

통도사 방문을 끝내고 다시 무풍한송로를 통해 세상으로 나간다. 소나무 숲 맑은 개천이 메말라 있는 마음을 적셔 준다. 오가며 제법 긴 시간 소요되었지만 돌아가는 길이 그다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시멘트가 아닌 자연의 마사토 흙길로 이루어져 그런 것 같다. 거기다 완전 평지로 전혀 오르막길이 없이 이어져 산책로로 최고였다. 다만 영광의 상처처럼 운동화에 뿌연 흙먼지 자국이 가득했다.

질주하듯 목적지를 향해 올라갈 때는 놓쳤던 것을 내려갈 때는 새로운 풍광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다 여유롭게 타박타박 걷다보니 길 숲 사이사이 불교 말씀이나 시가 새겨진 비문들을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욕심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몸뚱이보다 더한 짐이 없고 고요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 - 법화경 중에서-

세속의 백팔번뇌로 인해 흐트러진 심경에서 벗어나 해탈, 열반의 경지로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선과 수행을 한들 범인으로선 도달할 수 없는 지나친 욕심일까. 속세로 향하는 중생의 발걸음에 불경의 가르침이 경건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