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김성재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락도 포용…그게 DJ리더십”
[북악포럼] 김성재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락도 포용…그게 DJ리더십”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1.11.25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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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93)〉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
“관용과 포용의 리더십…대한민국 미래로 나아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1966-6대 국회의원 시절 대정부 발언ⓒ김대중 평화센터
김대중 납치사건은 1973년 일본의 한 호텔에서 일어났다. 사진은 1966-6대 국회의원 시절 대정부 발언 당시ⓒ김대중 평화센터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다. 이 시기 DJ(김대중)는 YS(김영삼)와 함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명성을 떨칠 때였다. 운 좋게 YS가 주도한 40대 기수론의 바람을 타고 1971년 신민당 대선주자로 선출돼 박정희 정권을 위협할 만한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YS 와 DJ 등 젊은 야당 지도자들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YS와 DJ 모두 해외에 있을 때였다. YS는 위험을 무릎 쓰고, 한국으로 긴급히 돌아와 투쟁을 주도했다. DJ는 망명을 선택했다. 

암튼 이런 체제 속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터진 거였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괴한들에 의해 납치돼 한국으로 연행된 사건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관여한 이가 박정희 정권의 핵심에 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시간이 흘러 1997년 DJ는 대통령이 됐고, 국민의정부가 개막했다. 재조사가 들어갈까, ‘김대중 납치사건’에 개입한 ‘이후락’으로서는 전전긍긍할 일이었다.

 

DJ와 이후락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국민대북악정치포럼 홈페이지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국민대북악정치포럼 홈페이지 

 

“처음 공개하는데 여기에 기자가 있다면 행운일지 모르겠네요. 언론으로 보면 특종입니다. 특종.”

지난 23일 국민대학교 북악정치포럼 강연자로 나선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은 다소 흥분된 어조로 이 같이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하다, 김대중 납치사건’의 비화에 대해 얘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국민의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과 한국유엔봉사단 총재로 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당선되자, 이후락이 해외에 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후락한테 해외 나가지 말고 국민들과 함께 편히 살라고 한 겁니다. 덕분에 이후락은 편히 살다가 별세했지요.”

이 이야기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요.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화해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의 승자가 되는 거지요.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분이었어요.”

DJ는 1980년 내란음모사건 주동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아 감옥에 있을 때도 아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담긴 편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용과 포용의 리더십 


국민대 북악포럼에서 만난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시사오늘
국민대 북악포럼에서 만난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시사오늘

김 전 장관은 DJ야말로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말은 쉽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큰 산, 큰 물 같은 분이었어요. 큰 물은 물방울 하나도 품지 않는 게 없잖아요?”

‘이후락’을 포용한 것처럼 DJ는 자신을 탄압한 이들도 끌어안는 관용의 리더십을 보였다. 

DJ는 과거 청산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께서는 과거 정권 인재들을 전부 포용했어요. 그래서 재야 사람들은 대통령을 엄청 비판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대통령께서 과거 사람들을 기용한 건 국민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민주화 운동가 출신들은 국정 경험이 없잖아요? 국정 운영은 국민을 위한 일이니 대통령 사람들이 아닌 과거 정부 인재들이더라도 필요한 적재적소에 일을 맡겨 국민께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국민통합, 화해의 국정 철학을 실천했다는 얘기였다. 김 전 장관의 설명처럼 DJ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전두환을 사면했고, 박정희 정권 인사들을 기용했다. 

“자기를 죽이려 한 탄압자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그들과 평화적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도 할 수 있었고, 외환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던 거지요. 또 그랬기에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게 사실은 평화의 실체죠.”

 

‘평화의 실체’


“다시 말하면, 대통령께서는 과거 문제를 정의 차원에서, 법 차원에서 풀지 않은 거예요. 폭력이 악순환 되는 것을 경계한 거였어요. 정의란 이름으로 보복하면 안 된다고 본 겁니다. 대신 용서와 화해로써 이겨내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 거지요.”

특히 우리나라는 동족 상잔의 아픔 등 한이 많은 나라다. 

“한이 많기에 이 한을 풀려면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본 거지요.”

김 전 장관은 이밖에도 DJ의 민주주의 리더십, 대화화 타협의 리더십, 국민을 믿는 신뢰와 용기의 리더십, 철저한 준비와 기록하는 리더십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이렇게 얘기했어요”라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나는 역사 안에서 절대로 국민은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사실 이렇게 민주화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한 것은 나 자신의 용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다. 그러나 국민을 믿는 신념이 있었기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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