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者之 ‘天下之大本’ 아니고 ‘財閥之資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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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者之 ‘天下之大本’ 아니고 ‘財閥之資本’
  • 신상인 기자
  • 승인 2012.07.06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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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재벌, 대기업들이 국내ㆍ외 농업에 눈을 돌리고…
대기업 농업법인 소유로 미래 사업부지 사전확보 전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신상인 기자]

재벌과 대기업들이 농업을 핑계 삼아 자본 증식과 사업 다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인력을 갖추고, 곡물 산업을 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가 하면 농업회사 법인을 이용해 미래 사업자본 확대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기존 식자재 관련 기업들이 영농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에는 중공업기업과 화학기업, 건설업체들까지도 농업을 통해 곡물 산업에 진출하려는 모습이다. 

해외 發, 곡물 중심의 식량이 미래의 무기?

러시아 동쪽의 유일한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 이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방대한 규모의 ‘현대미하일로프카농장’이 있다. 이곳은 여의도 면적의 23배에 달하는 6700ha의 규모다.

현대미하일로프카농장의 주인은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9년 러시아 연해주에 건설한 ‘현대하롤농장’(1만ha)에 이어 이곳에 추가로 농장을 세웠다. 두 농장에서는 콩과 옥수수, 밀, 귀리 등 해마다 1만6000t의 곡물이 생산하고 있다.

삼성물산 역시 4월 미국 시카고 현지법인인 aT그레인컴퍼니를 통해 곡물 사업에 진출했다. aT그레인컴퍼니는 삼성물산 외에도 ㈜한진, 농수산물유통공사, ㈜STX가 공동 참여했다.

삼성물산은 aT그레인컴퍼니를 통해 지난해에만 10만t이 넘는 콩과 옥수수를 국내로 들여왔다. 오는 2015년까지 215만t 이상의 곡물을 들여올 예정이며, 콩과 옥수수 외에도 밀과 보리 등으로 곡물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해외 농업 추진에 나선 대우인터내셔널은 영농사업과 도정사업에 까지 진출했다.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의 팜오일(야자유) 농장 개발업체를 인수하고, 3만6000ha 규모의 농장을 개발 중이다.

‘쌀농사 천국’으로 불리는 캄보디아에서도 2만6000ha 규모의 농장을 조성하고 있어 2013년부터 14만t 이상의 곡물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LG상사가 인도네시아에 1만6000ha 규모의 팜오일 농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STX그룹 산하의 해운사 STX팬오션은 미국 서부 롱뷰항에 연간 800만t 이상의 곡물을 처리할 수 있는 해외곡물터미널을 건설 중에 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이처럼 해외 영농산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곡물사업의 성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소가 지난해 7월 발간한 ‘해외곡물 자원 확보 동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73개 기업이 해외 18개국에 진출해 2만3567ha의 농지를 경작 중이다.

직접적인 배경은 2008년 국내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던 ‘곡물파동’이다. 2007년 하반기부터 곡물 저장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보도와 통계로 인해 쌀과 콩, 옥수수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이로 인해 국내 옥수수와 대두 수입량이 줄면서 국내 사료값이 폭등했다. 이 결과로 축산농가와 식품가공업체들에 큰 타격을 주는가 하면, 곡물 외에 다른 원자재의 가격 상승을 불러와 제조업체들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에선 농사 이외의 ‘농업법인’ 이용 사업부지 확보까지…

한가지가 더 있다. 대기업들이 최근 농업법인을 설립하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농업회사법인 지분에 대한 일반회사 법인들의 취득 기준이 완화됐기 때문. 농업회사 법인은 일반법인이 취득할 수 없는 농지를 소유할 수가 있어 장기적인 입장에서는 사업부지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의 잇따른 농업회사 법인 설립은 수익성 보다는 주력계열사들의 사업과 연계성을 두고 장기적인 입장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농업회사 법인 11곳이 국내 대기업집단 계열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현대차그룹의 현대서산농장이다.

서산농장은 지난 1986년부터 시험영농을 시작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법인 중 하나다. 현재는 친환경 쌀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고 사료 대신 여물을 먹여 키운 한우는 백화점에 납품을 하고 있다. 지난해 서산농장은 388억 원의 매출에 17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SK임업도 국내 대기업집단의 대표적인 농업회사로 꼽힌다. SK임업은 호두농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경수와 자작수액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지난해 376억 원의 매출과 6억500만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흑자 기업이다.

LG그룹은 곤지암 예원이라는 묘목 생산 농업회사 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구매대행 계열사인 서브원이 지분 90%를 보유한 이 회사는 지난 2010년 설립됐다. LG그룹 2대 회장이었던 구자경 명예회장도 경영에서 물러난 후, 충남 천안 연암대학에서 버섯과 특수작물 재배에 집중하고 있다.

뷰티기업으로 잘 알려진 아모레퍼시픽그룹은 계열사인 태평양물산을 통해 제주도에서 녹차밭을 경작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녹차잎들은 아모레퍼시픽이 제조하는 ‘설록차’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한편 최근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는 대기업집단도 늘어나고 있다. 한화그룹도 지난해 말 농업회사를 차렸다. 한화도시개발이 9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곡물재배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농업회사 3개를 보유하고 있다. 농업회사 법인 새만금팜과 농업회사 법인 세이프슈어, 농업회사 법인 동부팜이다.

KT&G는 지난해 말 인삼과 한약재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농업회사 법인 예본농원을 설립했다. 이랜드도 농축산물 유통업을 영위하는 농업회사 법인 맛누리를 지난해 차리고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이 같은 결과가 굳어지면 도시보다 심각한 농촌의 양극화를 우려 할 수도 있다는 게 사회 일반의 시각이다.

여기에 국내에선 대기업·재벌중심의 기업화까지 이루어지고, 해외 법인에서 곡물 수입까지 이루어 진다면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은 온데간데 없게 된다. 재벌 만이 제 살찌우기에 농심(農心)을 이용할 뿐이다.

게다가 앞으로의 미래는 먹거리를 자급하느냐 아니면 의존하느냐 하는 ‘식량 안보’ 위기상황까지 예상된다. 농업은 결코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되는 핵심산업인 동시에 대기업·재벌의 수익꺼리로 전횡되서는 안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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