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원서를 읽지 못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는 영어원서를 읽지 못한다”
  • 박세욱 기자
  • 승인 2010.02.22 1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재호 작가의 실패한 유학스토리
최근 한국사회의 최대 화두는 ‘유학’이다. 유학열풍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Ivy League)'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머리를 동여매고 공부에 열중하는 광경들을 흔히 본다. 그렇다면 유학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할까.

최근 <Crazy 유학 Story>(크레이지 유학 스토리)를 써 화재가 된 작가 유재호씨는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유 씨는 주위를 둘러보면 실패한 유학생들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유학 성공이 불과 1% 뿐이라고 전한다. 그는 누구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 성공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미국 유학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 씨는 중학교 3학년 시절 무슨 전염병에 걸린 듯 유학을 결정했다. 그는 유학을 통해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았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유학생활은 주변에서 말로만 듣던 성공담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미국아이들과 경쟁하며 부회장까지 맡고 성실히 공부하던 그가 마약, 카지노 등의 미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혼란과 실패를 반복하고 유학 실패란 쓴잔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자신의 유학실패 경험을 토대로 <Crazy 유학 Story>라는 책을 펼쳐낸 그를 시사오늘에서 만났다.
 

"평범한 유학생이 본 미국은 너무나 달랐다"

 
-<Crazy 유학 Story>를 지필하게 된 계기(배경)는 무엇입니까.
“얼마 전 논란이 됐던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 유출 사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 광풍과 미국 유학에 대한 환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매년 부푼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그 생활이 생각처럼 환상적일까요? 주위에 유학관련 서적은 많지만 이는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입학 등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유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은 그런 유학생의 성공담들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도 그들의 경험과는 차이가 있었고 그런 내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처럼 아이비리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처럼 강하지 못한 나를 채찍질했습니다.
 
하지만 명문대보다는 주립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훨씬 많고 그 외에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는 학생들도 상당수입니다. 실제 유학생활과 그들의 성공스토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궁금해 합니다. ‘one of those' 가 아닌 'almighty' 이기 때문에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들. 물론 누구나 평범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특출난 한 사람이고 싶어 하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평범한 유학생의 생활을 모르고서 성공한 사람만 롤 모델로 삼고 미국에 대한 환상, 유학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해봅니다. 나는 미국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실제 미국생활을 말해주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즉,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을 위한 기록임과 동시에 지침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젊은 나이에 책을 출간했는데, 어려웠던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나이 때문에 어려웠던 적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짧은 경력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에세이는 유명하거나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쓴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출판사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20여 군데의 출판사에서 한 말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억대 연봉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비리그를 졸업하지도 않은 사람의 유학 경험담을 누가 읽겠냐고…’ 결국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심했고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좋은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꾸밈없는 글이 독자들에게 유학의 실체를 더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입니까.
“책을 쓰면서 스토리 속에서 유학에 관한 팁을 주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저자 ‘Spencer Johnson’의 강연회에서 그가 했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팁을 대놓고 주기보다는 스토리를 통해서 교훈을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대놓고 주는 팁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토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어 갈 수 있게끔 글 하나하나를 구성했습니다. 또한 너무 팁 위주로 흘러가 스토리 라인을 방해하지 않도록 밸런스에 신경 썼습니다. 유학서에는 웬만하면 팁이 많이 들어가야 학부모의 구매욕을 당긴다고 간단한 유학 팁을 꼭 넣어야 된다는 편집자의 유혹을 뿌리치고 소설과 같은 구성으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많은 좋은 팁들이 스토리를 위해서 희생되었지만 그게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려고 내가 추구하는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유학, 공부보다 중요한 건 현지 문화적응이다"
 
-앞으로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나 현재 유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학원 강사로 일할 때 유학에 관련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우리 애가 이번에 유학을 가는데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되죠?’였습니다. 하지만 유학에 막상 가면 학교 공부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화적응입니다.
 
공부는 웬만한 한국학생이라면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미국에서 성적 안 나오는 친구는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다른 문화를 접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움을 보입니다. 처음 미국에 가서 미국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을 때 제일 큰 문제가 문화적 차이였습니다.
 
겨우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다 싶으면 제가 전혀 모르는 주제에 관해 떠들어 대는 그들을 보며 좌절했습니다.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유행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친구들이 개그콘서트의 유행어에 대해서 한참 떠들고 있는데 개그콘서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대화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듯이 말입니다.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팁을 주자면 그들이 보는 영화, TV 쇼, 드라마, 노래…. 이런 것들을 시간 날 때마다 달달 외울 정도로 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겨울 수도 있습니다. 웃음코드도 정서도 틀려서 잘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대신 한국 TV쇼,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있어 장애물 역할을 했고 결국 정신은 한국에 머무른 채 몸만 미국에 있는 반쪽짜리 유학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한 번 갔으면 웬만하면 방학 동안 한국에 나오지 않을 각오로 미국행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한국과 미국을 1년에 반반씩 살며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유학생활을 보내는 반쪽짜리 유학을 할 것인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이 책 외에 집필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소설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 가장 영감을 많이 얻은 작가는 해리포터작가 조앤 롤링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느꼈지만 명소설가들은 정말 천재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루고 싶은 주제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 하나를 말하자면 정신병을 주제로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현대에는 정신병이 감기처럼 흔한 병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에서는 편견을 갖고 정신병 환자들을 바라봅니다.
 
이런 편견들을 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에 대한 정보 전달이 중요한데요, 스토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정신병을 다루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전달력에는 읽기 쉬운 재미있는 스토리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내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커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한국 학교에서는 커닝은 유행처럼 가볍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았습니다. 한 대 쥐어박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미국 선생님들은 커닝은 범죄와도 같다며 나에게 벌로 정학을 내렸습니다.
 
그때 그토록 싫어했던 교장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네는 인생을 살면서 쉬운 길만 찾아왔네. 하지만 인생은 쉬운 길로만 갈 수는 없어. 어려운 길로 뛰어들어 도전하는 삶이 진정한 삶이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름길을 찾아가려는 유혹을 느낄 때마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에서 수많은 사고를 치고 실패한 유학 생활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원칙에 충실한 삶이라는 값진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새치기, 신호위반, 표절 등의 행동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범죄라고 배워왔던 행위들이 한국에서는 만연한 것에 놀랐고, 이 모든 것들이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새싹들이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떤 분야에서든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