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㉑] 설원의 부안 개암사와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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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㉑] 설원의 부안 개암사와 내소사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1.0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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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덮인 사찰,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 훌쩍 떠나기 좋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세밑 한파가 기승을 부려 몸과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하더니 전국이 꽁꽁 언 채 2022년을 맞았다. 추운 겨울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새하얀 함박눈이 아닐까. 서해안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설원에 갇힌 사찰은 마치 설국인 듯 환상적이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질 때 언제라도 훌쩍 떠나기 좋다. 자연 품에 안겨 나만의 시간을 갖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정이다.

능가산 개암사 일주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능가산 개암사 일주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개암사의 고즈넉함

서해안 변산반도 부안의 대표적인 사찰을 들라하면 개암사와 내소사일 것이다. 먼저 온통 눈에 에워싸인 부안 능가산 개암사, 634년(무왕 35) 묘련(妙蓮)이 창건한 백제의 고찰이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자연의 품에 안겨 마냥 걷고 싶은 일주문 지나 개암사 가는 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연의 품에 안겨 마냥 걷고 싶은 일주문 지나 개암사 가는 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개암사 대웅보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개암사 대웅보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우금 바위 밑에 자리 잡고 있는 개암사는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변산팔경(邊山八景) 중 하나다. 676년(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우금암(禹金巖) 밑의 굴 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황금전(黃金殿)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에는 청련각(靑蓮閣), 남쪽에는 청허루(淸虛樓), 북쪽에는 팔상전(八相殿), 서쪽에는 응진당(應眞堂)과 명부전(冥府殿)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楞伽經)'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금바위를 포함한 능가산이 개암사를 감싸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우금바위를 포함한 능가산이 개암사를 감싸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개암사를 감싸는 능가산이 역사를 말해준다. 대웅전 앞에 서면 주변 산세는 개암사를 동그랗게 호위한다. 뒤의 우금 바위를 배경으로 한 대웅전은 전체적으로 외관이 장중하고 비율이 안정적이다. 개암사 대웅전은 보물 제29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암사와 함께 대웅전 뒤 능가산 우금바위 일원은 부안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풍광이 매우 좋아 예부터 주민들과 관광객,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우금산성은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주류성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우금바위에 대한 인문학적 기록을 살펴보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우금암도(禹金巖圖)’가 대표적이다. 우금암도는 강세황이 변산반도 일대를 유람하면서 그린 그림으로 그중에 우금바위가 가장 넓은 폭을 차지한다.

속세를 잊게 하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

눈 덮힌 내소사 전나무 숲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눈 덮힌 내소사 전나무 숲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개암사를 둘러본 후 또 다른 부안의 대표 사찰 내소사로 향했다. ‘능가산 내소사(楞伽山來蘇寺)’라고 쓰인 일주문에 들어서니 눈앞에 펼쳐진 설경 속 전나무 숲길이 장관이다.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길은 전나무 사이로 내리는 비, 4월의 신록, 겨울의 눈꽃으로 표현되는 전나무 숲 3경으로, 변산 8경 중 하나에 들 만큼 아름다운 숲길이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600m의 전나무 숲길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사계절 색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긴 전나무 숲의 행렬을 걸어가자니 설원의 사찰을 찾는 나그네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내소사 일주문에서 천왕문 가는 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 일주문에서 천왕문 가는 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 천왕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 천왕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소래사(蘇來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예전에는 선계사(仙谿寺), 실상사(實相寺), 청림사(靑林寺)와 함께 변산의 4대 명찰로 꼽혔으나 다른 절들은 전란에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내소사만이 남아 있다.

장엄한 내소사 대웅보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장엄한 내소사 대웅보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 백미 대웅전

능가산 봉우리가 병풍처럼 뒤를 둘러싼 내소사 경내.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과 청련암이 자리한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291호)을 비롯하여 보물 고려 동종(高麗銅鐘, 보물 227호), 보물 법화 경절 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 삼층석탑이 있으며 내소사 일원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가 쓴 글씨다. 

화려하게 장식된 내소사 대웅전 처마. ⓒ정명화 자유기고가
화려하게 장식된 내소사 대웅전 처마. ⓒ정명화 자유기고가

장엄함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 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유교 건축의 영향으로 자연석 그대로의 주초 위에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내소사 대웅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어졌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정면 3칸 8짝의 꽃살문. 화려하고 섬세하며 연꽃을 하나씩 조각한 빗살문이 굉장히 아름다워 대웅보전의 백미로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대웅보전 팔작지붕의 사뿐히 들어올려진 추녀의 곡선은 한국적인 미의 한 전형이다. 뒷산과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루는 이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여성스럽게 느껴진다.

내소사 대웅보전과 능가산 봉우리는 마치 한몸같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 대웅보전과 능가산 봉우리는 마치 한몸같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법당 내부는 화려한 단청으로 장엄을 더했고, 법당 밖의 것은 단청을 하지 않은 나무 그대로의 배흘림 백골 기둥에 단청하지 않은 꽃살문을 새겨놓았다. 단청만 없다 뿐이지, 모란 연꽃 국화 등으로 가득 수놓인 문살은 그대로 화사한 꽃밭 그 자체이다.

불상 뒤쪽 후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다. 거기에 법당 내부 천장 대들보 양편 우물 반자에는 바라, 해금, 아쟁, 퉁소, 나발, 비파, 거문고 등 10종의 악기를 연주하는 형상이 그려져 화려함의 집합소다.

천년 수령을 자랑하는 내소사 느티나무. ⓒ정명화 자유기고가
천년 수령을 자랑하는 내소사 느티나무.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와 능가산 어울림

병풍처럼 둘러쳐진 능가산의 산세가 기상이 넘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능가산의 산세가 기상이 넘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내소사 뒤 병풍처럼 둘러쳐진 능가산의 산세가 기상이 넘친다. 봉래루(蓬萊褸) 앞의 수백 년은 족히 됨 직한 느티나무의 고목 등걸 사이로 보이는 기와지붕의 화음이 아름답다. 설꽃이 장관인 내소사 경내,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질 지경이다.

동심처럼 즐거운 내소사 설경을 만끽하는 중 빗자루를 든 손길이 눈에 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동심처럼 즐거운 내소사 설경을 만끽하는 중 빗자루를 든 손길이 눈에 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단아한 사찰의 설경은 침묵 속에 고요하다. 그 고요함과 아름다운 풍광은 이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기에 충분한 위로의 시간을 안긴다. 정중동으로 대책 없이 쌓인 눈더미를 치우려는 손길에 감사함을 전한다. 새해가 되면서 항상 화두에 오르는 것이 바로 건강이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난 한 해였다면, 올 해는 코로나 기세가 어떨까. 제약이 많았던 여행을 자유롭게 떠날 위기 탈출의 시간이 올지 의문이다. 봄 햇살 내리쬐는 개암사와 내소사의 고즈넉한 전나무 숲길을 다시 찾아 걷고 싶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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