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건설사, 너도나도 ‘브랜드 리뉴얼’…“무늬만 바꾸면 무슨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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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건설사, 너도나도 ‘브랜드 리뉴얼’…“무늬만 바꾸면 무슨 의미”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2.03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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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대형 건설사들이 자본력·인지도를 앞세워 시장 내 입지를 확대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중견 건설사들이 너 나 가릴 것 없이 대표 주거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이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불가피한 자구책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실효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3일 신동아건설은 대표 주거 브랜드 '파밀리에'를 리뉴얼하고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번 리뉴얼로 파밀리에는 심볼, 워드마크, 컬러 등이 전면 교체됐다. 앞서 지난달 신영그룹은 창립 34주년을 맞아 CI, BI 등을 개편했다. 해당 조치로 신영의 주거 브랜드인 '지웰' BI에는 'Good Space for Well Life'라는 새 브랜드 슬로건이 반영됐다.

진현기 신동아건설 사장은 "새로운 BI 공개를 기점으로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 제공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 개발해 브랜드 경쟁력 강화, 고객만족도 향상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신영그룹도 "새로운 CI, BI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대내외적 경영 환경에 적응하고 그룹 경영의 새로운 막을 열기 위한 의지를 담았다. 이를 계기로 종합 부동산 그룹으로서 계열사 간 시너지를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지난해 대방건설(디에트르), 한신공영(한신더휴), 동문건설(디 이스트), 한양(수자인) 등 여러 중견 건설사들이 기존 주거 브랜드 BI를 새로 꾸며 선보이거나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중견 건설사들이 연이어 브랜드 리뉴얼에 나서는 주된 이유는 앞서 업체들의 설명에서 보듯 경쟁력 강화다. 최근 수년 간 택지 매물이 급감하면서 먹거리가 줄어든 가운데 전통 텃밭인 중소 규모 정비사업, 지방 분양시장 등에까지 대형 건설사들이 진출하는 흐름이 지속되면서 브랜드 새 단장으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관련 업계와 각 업체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들이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올린 수주 실적은 약 29조 원으로 전년 대비 10조 원 가량 증가했다. 반면, 10위권 외 건설업체 중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1조 원을 넘긴 회사는 1곳(쌍용건설)에 불과했다.

또한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인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0대 건설사들이 전국에 분양한 전체 물량(4만7917가구) 중 53.2%(2만5514가구)가 비수도권에 공급됐다. 이는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는 2022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 대형 건설사들이 지방에 선보이는 1000가구 이상 브랜드 대단지는 전년 대비 44.6% 증가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약시장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전체 1순위 청약 접수 건수(295만5370건) 중 30% 가량(88만2580건)이 5대 건설사에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오피스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동산전문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가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같은 해 1~10월 10대 건설사들이 전국에 공급한 오피스텔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29.8 대 1을 보인 반면, 중견 업체들은 8.5 대 1에 그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해외수주 환경 악화 등으로 수익성 하락을 염려한 대형 건설사들이 지역과 규모, 사업 성격을 가리지 않고 국내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했고, 이로 인해 자본력과 인적 자원, 인지도 등에서 떨어지는 중견 건설사들이 애를 먹었다. 최근 수년 동안 신규 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바람에 더 타격이 컸다"며 "여기에 대형 업체들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론칭했다. 조용했던 삼성물산도 BI를 바꿨다. 중견 업체 입장에선 브랜드 리뉴얼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브랜드 새 단장으로 무늬만 바꾸는 건 위기 타개책이 될 수 없다는 혹평도 나온다. 오너일가 챙기기, 내부거래, 벌떼 입찰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소해야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재 채용·양성, 임직원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인적 자원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들린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상위 50대 건설사가 보유한 기술자 가운데 10대 건설업체 소속 기술자 비중은 2019년 시평 기준 60.72%, 2020년 62.13%, 2021년 63.98% 등으로 늘었다. 그만큼 10위권 밖 업체들의 인적 자원 현황은 악화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브랜드만 바꿔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중견사가 래미안 쓴다고 삼성물산이 되고, 힐스테이트 쓴다고 현대건설 같은 평가를 받겠느냐. 아무 의미가 없다"며 "우린 브랜드 리뉴얼 계획이 없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인재 더 채용하고, 수주활동에 투입하는 게 더 옳다는 판단이다. 지금 중견의 위기는 마케팅이나 인지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형사를 따라잡는 데에 투자할 돈으로 엉뚱한 곳에 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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